5. 28. ~6. 8. KCDF갤러리
윤상현의 기형도감 器形圖鑑
정형과 비정형 사이
전시 전경 사진. KCDF갤러리 제공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나는 ‘근대주의’를 문명의 필연적 과정으로 서술하는 서구주의자들의 주장에 항상 의문이 들었다. 마치 서양적 근대의 세례를 받은 것만 이 현대성을 담보한 보편 문명이라는 시각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이런 서구지향적 문명관은 오랜 토착 문명을 전근대로 폄하하고 스스로 열등감에 휩싸이게 만든다. 그러던 중에 나는 문득 우리의 도자예술이야말로 ‘서구근대주의’를 일찌감치 넘어서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우리의 도예 전통은 일본과 서구 등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신라 토기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기법과 독자적인 발전 루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에게 도예는 ‘비근대성’과 ‘포스트모더니티’를 동시에 성취한, 우리의 빛나는 문화적 상징 중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많은 현대 도예가들은 전통 도자에서 영감을 받아 형태를 재해석하거나, 비례를 변조하거나, 기능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조선백자가 지닌 형태와 미감으로부터 출발한 윤상현 역시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선배들이 완성한 다양한 형태와 기법을 그만의 감각에 따라 재해석하고 있다. 동료들이 그를 ‘도예가들의 물레 선생님’이라고 부를 만큼 그는 능수능란하게 물레를 찬다. 그는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물레 위에서 순응과 역행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새롭고 독창적인 형태를 만들어낸다. 섬세한 힘 조절을 통해 형태적 균형과 구조적 긴장이 공존하기도 하고, 대칭을 벗어난 곡면의 자유분방한 매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천년 세월 동안 축적된 도자 전통의 기법과 형태 연구의 깊은 기반 위에서 자신만의 ‘기형 도감’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아주 작은 종지부터 접시, 사발, 대접 등 그가 만든 생활 자기들은 가볍고, 얇으면서도 도자 용기Vessel가 품은 풍만한 공간감과 따뜻한 질감을 가지고 있다. 식기장에 중첩해 놓거나, 펼쳐서 상차림을 할 때도 섬세한 균형미가 돋보인다. 작가가 ‘만드는 것’과 사용 자가 ‘쓰는 것’ 사이의 깊은 교감이 이어진다. 특히 그가 디자인한 「도자 소반」 시리즈는 기능성과 조형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훌륭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전통 나무 소반을 도자기로 재해석한 윤상현표 도자 소반은 상부의 상과 하부의 받침 부분이 분리되어, 붙여 놓으면 소반이고 떼어 놓으면 두 개의 그릇이 되는, 아름답고도 쓸모 있는 <소반+식기>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었다. 전통을 재해석하고 쓰임새를 확장한 매우 성공적인 사례이다.

윤상현이 보여주는 백자 미학의 정수는 한국 도자기의 대표적인 기형인 사발碗 , 병甁 , 항아리壺를 작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데 있다.
완벽하지 않은 비대칭성과 손맛이 특징인 조선백자 사발은 그에 의해 완형碗形으로 재탄생한다. 둥글고 큰 입구가 자연스럽게 휘어지기도 하고, 깎아서 모아 붙인 굽의 형태는 안으로 모아지기도 한다. 또한 기벽을 더 얇게 만들어서 단순하면서도 미니멀한 형태를 완성한다. 좁은 목과 긴 몸체를 가진 병甁의 형태는 목과 몸통의 연결이 자연스럽고 전체적인 비례가 안정감을 준다. 그가 만든 달항아리는 일그러진 자연스러움 보다 더 크고 둥근 보름달 같은 풍만감을 가득 담고 있다. 너무 무겁거나 답답해 보이지 않는 부드러운 볼륨감은 윤상현이 제시하는 달항아리의 새로운 매력이다.

사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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