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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월호 | 작가 리뷰 ]

김대훈_ 흙, 물, 불 그리고 언어유희
  • 홍지수 미술학박사, 미술평론
  • 등록 2025-12-31 13: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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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훈 《No Reason》

11. 11. ~11. 29. 오매갤러리



드로잉을 위한 화면의 연속

김대훈의 작업은 형태보다는 회화와 번조에 방점이 있다. 그의 작업은 물감 대신 물질을 거듭된 뿌리기dripping와 흘리기pouring, 그 위를 가로지르는 힘찬 붓질 이후 전사지로 오리고 붙인 이미지와 텍스트 조합이 형성하는 깊고 두터운 ‘중층구조multilayer’가 가장 눈에 들어오는 시각적 특징이다. 빛바랜 듯한 텍스트와 이미지 그리고 작가의 몸에서 분출된 힘과 움직임의 궤적이 흙으로 만든 화면, 덩어리를 화면 삼아 불로 안착시킨 도자 회화가 김대훈의 작업이다. 

회화는 복잡한 단계를 거쳐도 흙으로 빚은 형태는 단순하다. 판성형한 판재를 정·직사각형으로 자른 후 그 위에 그림을 그리면 평면이고, 6장의 흙 판 꼭짓점과 빗변을 직각으로 맞물려 세우면 육면체 즉, 입체다. 육면체는 원통과 함께 예술, 디자인, 건축을 아우르는 기초 디자인의 조형 언어로,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사물의 익숙한 형태다. 김대훈은 정육면체Prism, 직육면체Cube를 합盒 , 의자stool, 화기花器로 제작한다. 기물을 적층해 쌓으면 파티션, 설치 등으로도 형식이 달라진다. 도판도 액자에 끼우면 회화가 되고 건물의 외벽에 걸면 도벽이 된다. 이처럼 공예와 순수예술, 일상과 상상을 횡단하는 매체 트랜스포머적 요소는 김대훈 작업의 개방성이고 사유와 표현의 자유로운 횡단을 상징한다.



육면체는 시공간 속에서 다양한 재질과 빛, 시각 주체의 시선에 따라 입체감과 구조적 특징, 이미지를 달리한다. 모든 면에서 같은 면적을 볼 수 있는 정육면체와 달리 직육면체는 좌우 측면, 정면, 상부 면의 크기가 다를 수 있다. 시각 주체가 사물을 어떤 방향으로 어떤 위치에 놓고 바라보는지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 지난해 청주 네오아트센터의 개인전 《No Reason》의 설치 「무 제」(2023)는 작가가 육면체를 가지고 어떠한 다양한 시각성의 조합을 만드는지 엿볼 수 있는 좋은 예시다. 그는 4단 선반 칸 칸 마다 형태, 크기, 표현, 질감, 색채 다른 14개의 정육면체와 직육면체 함을 놓았다. 형태와 크기 유사성, 어울림에 따라 작가가 그룹핑한 조합은 가변적으로 자의적이다. 어떤 조합으로 전시장 벽에 혹은 중앙에 선반을 세워 놓는 지에 따라 주체는 정면으로 혹은 주위를 돌면서 위치와 방향을 달리하며 다른 것을 볼 것이다. 존 버거John Berger가 『본 다는 것의 의미 About Looking』에서 제기한 것처럼 우리가 세상을 “본다”라는 행위를 둘러싼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것이다. 이것은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시각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조각 혹은 설치 이지만 기물의 쓰임을 배제한 것도 아니며, 작가가 자신의 공간 혹은 경험 속에서 가장 일상적인 사물의 풍경을 재현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작품의 의도를 굳이 공예와 예술을 횡단하거나 하나로 만들려는 의도를 읽기보다 그가 평소 작업하는 방식처럼 툭툭 던지듯 무심코 놀 듯 관객에게 던지는 화법이자 언어유희처럼 보는 것이 좋겠다.



존재와 부존재의 공간: 사각형과 육면체

직육면체·정육면체 함은 사용 가능한 공예기면서 자아가 머무르는 실존의 공간 즉, 존재의 사유를 표방하는 장場이자 영토다. 관객이 없는 텅 빈 연극 무대 위에 홀로 선 배우처럼 집, 의자, 돌, 부처의 두상, 목마 등의 사물을 홀로 두었다. 사물의 부피만큼 남은 빈의 공간은 늘 존재의 외로움과 고독, 실존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허虛를 상징한다. 육면체는 함, 상자로, 의자, 집, 자동차로 작품마다 형태를 달리한다. 그러나 사람이 보이지 않는 빈 공간은 모두 ‘부재不在’의 상징이다. 그가 화면에 그리고 혹은 오브제로 만드는 소재(집, 의자, 상자, 선반, 목마 장난감, 돌, 사과 그리고 수북이 눌러 담은 고봉밥 등) 또한 모두 작가와 관련된 과거의 기억이나 개인과의 관계 에피소드에서 왔다. 가스통 바슐 라르Gaston Bachelard가 『공간의 시학 La poetique de l’espace, 1958』에서 말한 것처럼, 기억에서 추출한 모든 형태는 그와 연결된 기억과 꿈을 담는 내면의 공간이자 상상력의 원천이다. 그는 자신의 기억에서 추출한 형태들을 화면에 그리거나, 상자 안에 담거나 그 위에 올려 둔다. 방치가 아니라 소중히 담거나 고이 올려 둔 느낌이 있다. 시절 지난 신문이나 미술 잡지에서 오려낸 텍스트, 사진, 일기나 메모, 누군가와 주고받은 편지 등을 콜라주했다. 작가의 내러티브와 관련된 날짜 혹은 이미지 등 작가와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이미지들이다. 원본을 전사지로 옮기면서 일부는 지워지고 문맥은 잘리고 초점이 흐려졌다. 우주를 떠다니는 먼지들처럼 이미지들이 깊고 두터운 바탕 혹은 검은 필획 위에서 유령처럼 표면을 유영한다. 사라짐을 붙잡으려 하고 그리워하기에 거듭 그리고 불러내는데, 왜 그들은 도리어 실체로부터 멀어지고 빛바래고 흐릿해지기만 하는 걸까.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5년 12월 호를 참조 바랍니다. 정기구독(온라인 정기구독 포함)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모든 과월호 PDF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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