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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월호 | 칼럼/학술 ]

[김대환 교수의 문화재 기행 58] 신라금관! 정말로 사슴뿔과 나뭇가지의 조형에 불과한 것일까?
  • 김대환 동곡뮤지엄 관장, 문화유산 평론가
  • 등록 2025-12-30 16: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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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천년고도인 경주는 성공적인 APEC 정상회의 개최로 인해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특히, 신라시대의 금관 6점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동시에 볼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하여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라시대 금관이 집중 조명되는 긍정적인 현상이 일어났다.   


호림금관


현존하는 신라금관은 모두 7점으로 일제강점기인 1921년 금관총금관(이사지왕금관)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사진 왼쪽부터 제작된 순서로 (호림금관, 교동금관, 황남대총금관, 이사지왕금관, 서봉총금관, 금령총금관, 천마총금관)이다. 

그러나 신라금관이 발견된 지 104년이나 지났지만 신라금관이 무엇을 상징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미비하여 일제강점기 제국주의 일본학자가 주장하던 사슴뿔과 나뭇가지 장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잘못된 식민사관을 그대로 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이 문제를 제기하고 학술논문과 신문칼럼, 저서 등을 통해서 신라금관은 사슴뿔이나 나뭇가지가 아닌 ‘용의 뿔’을 형상화시킨 것이라 주장해 왔다.1)


교동금관


사진8)에서 보면 강원도 진전사지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동 용머리 장식’인데 뿔이 이마에서 나와서 삼지창처럼 뻗어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신라 교동금관의 금관 세움 장식과 일치한다. 더 이상 긴 설명이 필요 없이 신라시대 유물로 증명이 된다. 신라금관의 세움 장식이 ‘Y’ 모양에서 ‘出’ 모양으로 변하기 때문에 出 형태의 장식도 용의 뿔에 해당한다. 나뭇가지가 아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해 오는 신라금관이 ‘사슴 뿔, 나뭇가지’라는 이론은 104년이 지난 현재도 그대로 사용되는 서글픈 현실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북방민족의 사슴뿔’과 ‘신단수의 나뭇가지’는 전혀 실증유물이나 문헌의 기록에도 없는 추론에 불과하다. 단지 우리 민족의 창조성과 독창성, 대륙의 기질을 감추고 비하시키기 위한 식민사관에 불과하다.     

신라를 포함한 삼국시대의 용은 여러 유물에서 찾을 수 있는데 뿔을 확인해 보면 모두 이마나 미간에서 솟아 나와 두 갈래 혹은 세 갈래로 갈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용과는 다른 모습으로 당시의 용은 뿔이 한 곳에서 솟은 단각수였다. 신라금관은 용의 뿔을 형상화한 왕의 영체靈體로 왕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용의 혈통을 계승한 천손이며 금관은 왕이 현세에서 천상의 존재로 변신하는 제의적 신물로 신성함 그 자체였다. 『삼국유사』 혁거세조에 “알에서 태어나 용이 되어 하늘로 올랐다”는 왕계 설화와 『삼국사기』 지증왕조의 “왕이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니 신하들이 그 뼈를 모셨다.”는 기록은 용은 왕의 신성성과 불사의 존재로 인식된 것이다. 따라서 신라금관은 당시의 유물과 문헌에 모두 등장하는 용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으며 용의 신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인 머리 위의 뿔을 형상화시킨 것이다.  


사진8) 신라 교동금관과 신라 금동용머리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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