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7. ~6. 13. 갤러리 비선재

「202412-6」 높이41×배지름39.1×굽지름14.7cm | 백토, 덤벙시유, 장작가마 소성
달 아래 흰 그릇
달 아래 흰 그릇 - 백자와 달항아리의 역사
조선 후기에 제작된 백자 달항아리는 한국 도자사의 정수로 꼽히며, 단순한 공예품을 넘어 미학적,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이 항아리는 흙과 물, 불이라는 자연의 세 요소가 조화를 이루며 빚어낸 결과물로, 조형적 완벽성을 지양하고 자연스러운 비정형성과 불균형을 미덕으로 삼는다. 두 개의 반구가 만나 하나의 구를 이룬 형태는 비대칭 속의 조화와 우연 속의 질서를 반영하며, 이는 조 선 후기에 이르러 전통적 유교 이념과 불교의 공空 사상이 결합한 미의식의 구현이다. 그런데 달항아리라는 고요하고 아늑한 그 이름은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 1905- 1944) 선생이 지었다. ‘우현又玄’이 “현지우현玄之又玄, 중묘지문衆妙之門”, 즉 “신비하고 또 신비하여 모든 오묘함의 문이 된다.”1)라는 『노자 老子』의 첫 문장에서 온 것을 보면, 달항아리가 노장사상과도 강한 인연을 갖는 것이 분명하다.
달항아리의 중심은 ‘빔’과 ‘결여’와 ‘무無’의 미학이다. 중심이 비어 있음으로써 오히려 충만해지는 구조는 형상 이전의 존재, 즉 무형의 형상을 형상화하려는 시도이며, 이는 동아시아 사유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무중생유無中生有 의 조형적 구현이다. 당연히 『노자』의 유무상생有無相生이나 허실묘합虛實妙合의 원리와 통한다. 또한 백자의 유백색은 절제와 침묵, 순결과 사색을 상징하는 색으로, 조선 지식인 계층의 심미적 취향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백자는 도구적 기능보다 정신적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강조하며, 내면을 담는 그릇이자 존재론적 상징물로 작용한다.
달항아리는 단지 조형의 산물이 아니라, 시대정신의 응축된 결과이기도 하다. 그것은 궁중과 사대부 문화를 관통한 심미적 이상이며, 동시에 무욕無 欲과 정밀靜謐, 그리고 고요와 겸허를 아우르는, 정신성의 물질적 구현이었다. 이렇듯 백자 달항아리는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정신사와 연결되며, 도자기라는 물질을 매개로 형이상학적 명징함을 성취하고자 했던 예술적 시도였다. 강민수는 그 명징함을 다시 성취하려는 선인들의 후예 중 한 작가이다.

「202502-5」 높이65.5×배지름64×굽지름23.2cm | 백토, 덤벙시유, 장작가마 소성
지금과 달항아리 - 감각 그릇, 사유 공간
강민수는 이러한 전통적 형상을 단순히 반복하거나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백자 달항아리를 현대의 감각적 언어와 철학적 기호로 확장한다. 작가의 작업은 사기장이자 수행자, 미술가이자 사상가의 태도를 지닌다. 백토를 직접 구하고 만지며 보듬고, 장작가마에서 고온의 불을 견디며 희로애락을 함께하여 소성한 작가의 백자는 흙이 시련의 시간을 견디는 과정으로 읽힌다. 시련의 시간은 예술적 의례儀禮 과정이기에 불가피하다. 동시에 그것은 무한의 악樂의 세계이기도 하다.
작가는 전통을 마주하면서도 지금 일어날 고요한 반향을 알고 있다. 그의 항아리는 단순히 시각적 형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음률을 지닌 형체로 감각된다. 불꽃에 의해 생성된 기공, 표면 위의 미세한 음영, 곡선이 주는 촉감적 리듬은 마치 하나의 음악처럼 작용하며, 관람자에게 공감각적이면서도 시적 경험을 유도한다. 가마의 그 타는 뜨거움, 항아리가 탁탁 터지는 소리, 갈라지는 긴장, 손에 느껴지는 흙의 부드러움, 하얀 유약의 겸허함, 그 모든 감각이 달항아리로 태어난다. 존재는 개체가 아니라 맥락이며 종합이며 관계라는 사실이 작가의 행위로 재인식된다.
여기서 주목할 개념이 동아시아 음악의 십이율十二律이다. 십이율은 고대 중국과 한국의 음률 체계로, 자연의 질서와 계절의 순환, 인체의 호흡과 연결되는 구조적 조화의 체계이다.2) 강민수의 백자는 이 십이율처럼 각각의 그릇이 하나의 음이며, 그 전체는 하나의 음계로 구성된 백자의 교향악交響樂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교향곡이라 쓰지 않고 교향악이라 쓰는 이유가 있다. 서로 교차하여 울리는 음악이라는 뜻 외에 서로 공명하는 즐거움이라는 뜻도 내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그릇은 고유한 주파수와 공명을 지니며, 전시 공간은 하나의 울림통이 되어 관람자의 몸과 정신을 진동할 것이다.

그릇은 시다 - 에드거 앨런 포의 시적 은유
문학적 감수성으로 접근했을 때, 강민수의 달항아리는 단지 미술작품을 넘어 언어 이전의 시詩에 가까운 성격을 띤다. 미국의 낭만주의 시인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시 『헬렌에게 To Helen』에서 여인을 고요한 그릇, 이상적 미의 상징으로 그려내며, 인간 내면의 아름다움을 담는 사물의 은유로 활용한다. 그는 “그녀의 고요한 이마에 는 유리처럼 반짝이는 평화가 비치고, 그녀는 마치 오래된 향유병처럼 고귀한 향을 머금는다.”고 쓴다. 이 묘사는 곧 그릇—특히 백자와 같은—이 가진 정적인 아름다움, 내부를 감추는 침묵, 향유된 시간의 함축성을 상징한다. 또한 포의 산문 『가구 철학 The Philoso phy of Furniture』에서는 도자기와 가구를 단순한 실용품이 아닌 감성의 물화物化로 보았다.3) 이 위대한 시인은 장식과 물질이 인간의 정서와 내면을 반영할 수 있다고 보았고, 도자기는 그중 가장 섬세한 감각의 매개체로 파악했다. 이런 의미에서 강민수의 백자는 단순한 조형물을 넘어서, 감정과 감각이 잠재된 존재의 그릇이자 하나의 시적 사물poetic things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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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老子』 제1장: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故常無欲, 以觀其妙; 常有欲, 以觀其徼.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2) 이혜구, 『한국음악연구』, (서울: 민속원, 2005), pp. 145–148.
사진. 갤러리 비선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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