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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월호 | 전시리뷰 ]

[큐레이터의 전시 읽기] <흙의 변이 Nature Made>
  • 편집부
  • 등록 2022-10-06 12:19:14
  • 수정 2024-08-14 11: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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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전시 읽기 | CURATOR’S EXHIBITION CHOICE]

 

꿈틀거리는 理想 솟아오르는 異常

글. 문유진 독립큐레이터 사진_김경태

 



<흙의 변이 Nature Made>
6.28.~8.13. 우란문화재단 우란1경
서울 성동구 연무장7길 11,1층
T.02.465.1418 H.www.wooranfdn.org



나는 두 달에 한 번씩 봐야 할 전시 목록을 갱신한다.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인정받아 독보적인 지위에 오른 작가의 개인전, 최신 유행과 대중의 요구에 잘 응답하며 인기를 쌓아가는 작가들의 단체전, 미술시장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작품들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사립 미술관의 소장품전, 미술사적 의의와 동시대 현상 연구를 바탕으로 예술 활동의 현황과 방향을 고찰하는 국공립 미술관의 대규모 기획전 등 수많은 전시 소식을 스크롤 해 넘기면서 결국 수첩에 옮겨 적는 전시 제목은 서너 개 남짓이다.

동시대 미술을 연구하고 글을 쓰는 기획자 입장에서 내가 ‘볼 것’ 목록에 남기는 전시는 대체로 세 가지 정도의 기준에 부합한다. 가장 흔하게는 개인적인 학문적·예술적 관심사와 관련 있는 주제나 작품을 다루고 있는 경우이고, 가끔은 전시나 작품의 일부 이미지, 개념, 관련 인물이 어떤 이유에서든 그저 마음을 당기는 경우도 있다. 또 드물기는 하지만 참신하고 진정성 있는 기획이 눈에 띄기도 하는데, 사실은 이 경우가 가장 가슴이 뛴다. <흙의 변이 Nature Made>(우란문화재단, 2022. 6. 28.~8. 13.)는 바로 이 세 번째 이유로 목록에 넣어둔 전시다. 짧은 전시 소식만 읽고도 기획에 많은 공을 들인 전시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스타 작가도 유행하는 스타일도 없고 규모도 작지만 진지한 태도와 고민이 배어 있는 듯했다. 게다가 동시대 도자 작가 3인의 실험적 신작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도 충분했다.


옹甕 빼기 옹기
<흙의 변이>는 우란문화재단이 소장한 김창호 작가의 옹기에서 출발한다. 전시는 “옹기를 주제로 삼되, 장인과 대화를 나누며” 옹기의 속성과 잠재력을 함께 고민해 보려는 의도로 기획됐다. 이를 위해 기획팀은 옹기의 양식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진지한 재료 연구”를 통해 도자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김경찬과 정김도원을 참여 작가로 선정했다.1 세 작가는 3개월에 걸쳐 서로의 작업실을 오가며 각자의 관심사와 기존 작업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전시는 작가들이 그 과정에서 주고받은 영감을 다시 자신의 작업에서 숙성시킨 결과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소개한다.
국가무형문화재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옹기장 이수자가 된 김창호는 정통 옹기를 통달한 후 작가로서 독자적인 조형을 발전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 작은 구멍만 흔적처럼 남긴 구연을 가진 ‘질그릇’들은 마치 ‘바바파파Barbapapa’의 몸처럼, 형태가 확정되지 않은 채 계속 움직이는 회색빛 몸을 갖고 있다. 작가는 장독의 형식과 기능을 제거하는 대신,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옹甕’의 핵심을 건져낸다. 예를 들어, 움푹움푹 파인 크고 작은 홈은 장독으로 쓰이는 옹기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발효의 에너지와 좋은 옹기를 만드는 데 옹기장이 쏟아야 하는 엄청난 시간과 움직임을 표상한다. 이 ‘점’들은 “옹기 안에서 발효를 돕는 미생물이
터지듯이 생성”되는 순간이자 선대 “옹기장들의 발자취”이다.2 거무스름한 색도 마찬가지로 본래는 옹기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옹기장들이 장작가마 번조 시 기물에 연기를 먹이던 기법을 적용해 얻어낸 빛깔이다. 작가는 그 검은 살갗을 더욱 생동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질그릇」 연작(2022)에서 그는 화장토를 바르고 빗자루로 휙 닦아내 표면에 자연스러운 흔적을 남겼다. 이는 옹기장이 잿물을 손으로 바르고 닦아내는 제스처를 은유하는 것이자, 작품을 제작하는 동안 작가의 몸과 주변에 퍼지는 에너지의 자취로 볼 수 있다.
한편, ‘육지’와 동떨어진 문화적 자연적 조건에서 발달한 제주 옹기를 탐구하는 김경찬은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제주의 토양과 지형을 작업으로 옮겨낸다. 화산재 성분으로 인해 점력이 약한 제주 토양의 특성상, 작가는 도자 작업에 사용할 수 있는 제주 점토를 구하기 위한 조사와 흙의 속성을 이해하기 위한 실험에만 3년을 쏟았다. 그렇게 확보한 귀한 원토는 다른 흙을 섞지 않고 직접 수비해 동시대의 삶과 미적 기준에 부응하는 옹기 제작에 쓴다. 특히 이번 전시에 출품한 「COSMO- Orumm」(2022)은 제주 전역에 크고 작게 분포한 오름의 형태를 분석한 연작이다. 비스듬히, 간신히 위를 향하는 구연부, 눌린 듯 구겨진 듯 꿈틀대는 상부, 아래로 둥글게 미끄러지다가도 급히 바닥에 닿아버리는 저부…. 작가는 자연적으로 생성되어 크기, 높이나 기울기, 분화구의 모양이 각양각색인 오름을 절개와 접합, 변형과 회복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질감과 톤의 변주 역시 주목할 만하다. 그는 기본적으로는 제주 점토의 성분 특성에 기인하는 노란색과 붉은색, 검은색을 바탕으로 삼되 풍부한 색과 질감의 차이를 내기 위해 장테를 씌우거나 소라 껍데기를 기물 사이에 끼우는 제주의 전통 재임 기법은 물론, 톱밥을 채워 연기를 먹이거나 미역, 현무암 같은 제주의 산물을 기물 위에 얹어 굽는 식으로 ‘자연’스럽고 우연한 유약 효과를 얻어낸다.  

정김도원은 도자를 하나의 방법론으로 채택한다. 그의 작업은 유약의 기능과 심미성, 고온번조로써 향상시키는 강도, 유려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기형처럼 지금도 도자의 가치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파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주변에서 얻은 오렌지 껍질, 달걀 껍데기를 섞은 흙으로 빚어 400℃에 번조해 만든  「Rotting Jar」(2021)는 거칠고 약한, 언젠가
다시 흙 속으로 생분해될 항아리다. 유약을 입히지 않아 선사시대 토기와 유사한 질감을 갖고 있지만, 태토에 섞인 재료의 크고 작은 입자들은 자연히 성글고 불규칙한 문양을  만드는 동시에 결속의 힘을 발휘한다. 바이오매스 소재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이번 전시를 위한 신작  「Container」(2022)에서도 드러난다. 이 사각 기물 연작은 현무암과 해조류를 유약처럼 활용해 색과 문양, 질감을 실험한 결과이다. 얇은 도판 위에 불규칙한 모양의 네 개의 얇은 벽체가 마치 깨지기라도 한 듯 불안정하게 서 있다. 하지만 이들은 사실 바닥면의 각 모서리로부터 조금씩―서로를 지탱하며 각자―자라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바이오매스 소재가 작가의 방법론적 탐구 대상이라면, 위태로운 상태와 그 속에서 일어나는 상호 의존에 관념을 두고 있음을 읽어낼 수 있다.  해조류 유약이 태토의 종류와 성질에 따라 다양한 질감과 색으로 구현되는 현상을 발견했듯이, 작가는 조형 재료로서 흙에서 끌어낼 수 있는 우연성을 실험하며 동시대에 의미를 획득하는 ‘순환’의 도자를 발굴하려는 듯하다.

활력의 흙
결국 <흙의 변이>는 옹기가 아니라 김창호―김경찬―정김도원의 작업에 공통으로 심어져 있는 어떤 핵劾에 관한 이야기다. 흙이라는 씨앗으로부터 생성되는 ‘살아있는 힘vis viva’은 장인의 몸을 거쳐서는 생명력을 분출하는 옹으로, 제주의 도예 연구실에서는 지질학적 풍경으로 변환되고, 생물자원 소재 실험실에서는 물질과 미적 형식의 순환을 이뤄내게 한다.

(··· 중략)

 

<</span>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2년 9월호를 참조바랍니다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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