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전시읽기 | CURATOR’S EXHIBITION CHOICE]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 글. 문유진 독립 큐레이터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2021.10.27.~2022.2.13.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경기 과천시 광명로 313
T.02.2188.6000 H.www.mmca.go.kr
최욱경 「줄타기」 225×195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 1977 | 리움미술관 소장
화가, 조각가, 도예가, 시인, 연기자처럼 하나의 장르를 이름에 붙여 정체성을 규정하기 어려운 예술가들이 있다. 적어도 지금 시대에는 이들을 여러 재료와 장르를 섭렵한 다재다능한 개인 혹은 르네상스적 천재로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내적 세계와 예술적 관심을 가장 적확한 방식으로 드러내는 방법을 끈질기게 좇아야만 하는 탐험가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물질문화와 인간관계가 비물질과 가상 연결로 전환되어 가는 시대에 예술의 해묵은 경계와 보수적 관념이 힘을 잃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당연하게도 20세기의 해체주의적 전복과는 다른 양상을 띤다. 이들은 기존의 질서 언어를 해체하는 것에 집중하는 대신, 가장 ‘나다운 언어’를 찾아 나아간다. 다른 것과 섞이고, 새로운 것이 되었다가, 본래적인 것을 완성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회화는 가장 회화적인 전략으로서 캔버스 바깥의 세계로 영역을 넓혀 이질적 재료와 공간을 탐구하고, 조각은 시나리오를 쓰고 무대를 연출하며 가만히 멈춰 서 있지 않는다.
그리고 우연인 듯 운명처럼 우리는 최욱경(1940~1985)을 만난다.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 전시 전경 (미국 유학 시절 색채 추상 및 주제 실험 작업들)
국립현대미술관은 1950년대부터 1985년 작고할 때까지의 최욱경의 회화와 문학 세계를 함께 조명한 회고전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2021. 10. 27. ~ 2022. 2. 13.)를 개최했다. 최욱경은 20세기 미술이라는 맹렬하고도 전방위적이었던 실험의 파도 속에서 시를 쓰고, 미술을 연구하고, 그림을 그리며 생명에의 의지를 분출하는 데 온 힘을 쏟은 예술가였다. 서울예고와 서울대학교를 거쳐 크랜브룩 미술아카데미와 뉴욕 브룩클린미술관 미술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한 엘리트 예술가로서 그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대학 강의와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는 46세의 나이로 ‘요절한 비운의 여성 작가’라는 기존의 평가에서 벗어나 최욱경의 예술 세계를 다각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문학과 미술을 함께 읽어보는 방식을 채택했다. 특히 최욱경이 미국에서 경험한 현대미술의 언어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결국 “독자적인 양식을 창출해 나갔다”는 점과 그의 작업이 미국과 유럽 미술,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경향의 혼성물”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1 전시는 작가의 시대별 작품 양식과 주제의 변화를 따라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 ‘미국이라는 원더랜드를 향하여’는 작가가 회화 외에도 드로잉, 도자, 조각 등 다양한 조형을 탐색하다가 색채 추상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1963년~70년 미국 유학 시기 작업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2부 ‘한국과 미국,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는 단청과 민화의 색과 구도, 서예와 한국화에 관심을 두고 실험했던 한국 체류기(1971~74) 작업과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구상과 추상을 결합한 독자적 양식을 발전시킨 애틀랜타 및 뉴멕시코 시기(1974~77)의 작업을 소개한다. 3부 ‘한국의 산과 섬, 그림의 고향으로’는 1979년 귀국 후 작고할 때까지 경상도 지역의 산과 바다, 섬을 모티프로 삼아 구축한 압축적인 추상 풍경들로 구성됐다. 이번 회고전은 국립현대미술관 및 국내 주요 미술관과 개인 소장가, 유족이 소장한 드로잉, 회화, 입체 작품 100여 점과 함께 작가의 논문과 자필 원고, 시집, 국내외 주요 기사, 전시 브로슈어, 주요 회고전 도록 등의 관련 자료 100여 점을 망라하여 최욱경의 예술 활동 전반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작가의 자작시를 미술 작품과 동시에 조명함으로써 정치-사회-문화적 격변기의 한국과 미국에서 여성-유색인종-예술가로서 그가 경험한 것과 거기서 끌어올린 생각과 감정을 보다 풍부하게 상상해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시와 회화는 최욱경이 구사한 언어이자 ‘나다운 언어’를 찾아 모험을 떠난 원더랜드 그 자체였다. 그는 형태, 색, 빛이 각각 “각자의 고유한 의미를” 갖게 함으로써 그림을 그리고 감상할 때 “주관적 의미의 자유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를 원했다.2
1) 전유신,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 『최욱경, 앨리스의 고양이』 전시 도록(국립현대미술관,
2021), 23.
2) Wook-kyung Choi, “Untitled”(MFA Thesis, Cranbrook Academy of Art, 1965), 3.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2년 3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