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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월호 | 전시리뷰 ]

[리뷰에필로그] 천개의 별이 된 양구백토
  • 편집부
  • 등록 2022-02-03 10:58:43
  • 수정 2022-02-16 11: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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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필로그 | Review epilogue]

 

천개의 별이 된

양구백토

글·사진. 김태완 <양구백토, 천 개의 빛이 되다>전 객원디렉터,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전통생활문화본부장

 

<양구백토, 천 개의 빛이 되다> 전시 전경

 

[#1] 백자 단상, 우리에게 순백자가 많은 이유
15년 전, 도자예술 전문 잡지 에디터로 활동하던 시절, 왜 우리에게는 문양과 색이 없는 (순)백자가 많은 걸까? 의문이 있었다. 확실히 중국과 일본 등 다른 외국에 비해 우리는 청화보다 순백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그것이 궁금했다. 공예를 전공으로 삼은 이들 이라면 누구나 유명한 일본인 비평가가 주창한 ‘비극의 민족이 낳은 비애의 미’를 기억한다. 그가 백자의 ‘흰색’을 나라 잃은 민족의 심정에 빗대 슬픔의 색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러던 터에 자료를 찾아보니 백자 장식에 필요한 청화의 발색 재료인 회청-천연 코발트-는 이웃 중국에서 활발하게 쓰였지만 매우 고가였고, 그것마저도 보급이 자주 끊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 조선왕조실록(1469)에 “국내에서 코발트 광산을 발견하는 자는 관사에 등용해 후하게 상을 내린다.”, “술그릇 이외(서민은 주기도 포함)에 청화백자를 사용하면 엄벌에 처한다.”, “중국에서 청화백자를 유입하는 것과 그 사용을 일절 금한다.”고 기록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성적인 청화안료의 부족은 결국 결핍 상태가 됐고, 이 같은 물리적 원인 때문에 장식이 없는 순백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는 반가운 자료들을 찾아내고 기뻐했던 적이 있었다. 그 무렵 강원도 양구에 백자박물관이 세워졌다.

 

양구백토 3kg를 담은 지통들 (서울 용답동 연구실)

 

[#2] 그곳에 백토 연구의 첨병이 있다
양구 출신 도예가가 박물관 관장이 되었다. 그는 백토 연구에 미친 사람이다. 내가 아는 한 백토에 관해 그보다 많이 아는 이는 없다. 전국의 백토를 찾아 연구하더니 몇 해 전부터는 일본 아리타와 중국 경덕진(그와 함께 경덕진 백토를 반입하다 공항 세관에 걸려 해명한 일도 있음)의 백토와 양구백토의 만남을 주선하고, 급기야 북한과 남한의 백토를 섞어 가장 먼저 통일을 이루겠다고 나서고 있다. 연구에 빠져들어 활동 반경이 넓어지니 해가 거듭될수록 결과물이 많아지고 결국 기존의 박물관 공간이 좁아 증축이 필요했다. 군청 관계자들과의 적극적인 협조를 통해 기존 공간의 두 배가 넘는 전시 공간을 확보했다. 그곳에 그동안 모아온 소장품을 꽁꽁 닫힌 수장고가 아닌 열린 전시 방식으로 공개하는 공간으로 새롭게 마련하고, 10여 년 간 여러 행사와 전시를 개최하며 소장하게 된 작품들을 섹션별로 모은 현대백자실, 양구백자 홍보영상을 4면의 벽에 상영해 장엄한 규모로 감상할 수 있는 영상실을 구상했다. 그리고 방점으로 이 시대 도예 작가 천 명이 양구백토로 만든 작품을 모아 멋지게 선보이고 싶다는 그야말로 백토 연구의 첨병다운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2019년 봄, ‘양구백토, 천 개의 빛이 되다’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인스타그램 ‘1,000_lights´

 

[#3] 양구백토 3kg의 사연
박물관의 제안으로 도예 작가 천 명을 섭외해야 했다. 먼저 스마트폰의 주소록을 확인했다. 모두 3,750명의 연락처가 저장돼 있었다. 그중 순수하게 흙 작업을 하는 도예가만 뽑아내니 다행히 천 명은 훌쩍 넘었다. 다행이었다. 20년간 한 분야의 녹을 먹으며 버텨 남긴 유산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이는구나 싶었다. 1년에 3백 명씩, 앞으로 3년간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 가능하겠다고 판단했다. 또 추진 과정 중에 새롭게 만나거나 혹은 기존 참여 작가들에게 전해 듣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될 작가들까지 더하면 천 명 참여 프로젝트 완성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선순위로 중견 이상 도예가 350명을 1차 명단에 배치했다. 매일 2~30통씩 전화를 돌리고, 작업실을 방문했다. 그리고 여러 전시회와 모임에서 만나게 되는 작가들에게 적극적으로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참여를 독려했다. 동시에 박물관에서는 작가들에게 보내질 3kg의 양구백토를 새롭게 토련하고, 밀봉 포장해서 작업설명서, 참가신청서를 동봉해 350개의 지관통에 담는 작업이 진행됐다. 그리고 동참을 약속한 작가들의 주소로 발송했다. 작품 제작 방식은 공예품 혹은 오브제 등 양구백토를 이용한 입체물 형식의 모든 도자예술 창작품으로 범위를 정하고 참여 작가들에게 안내했다. 간혹 양구백토를 추가로 보내달라는 요청이 있기도 했다. 아쉽게도 양구백토는 매장량 보호를 위해 박물관에서 사용되는 일부의 흙을 제외하고는 반출이 철저히 금지돼 있기 때문에 추가 제공은 어려웠다. 이런 사정으로 흙을 충분히 보내드리지 못한 점과 총 천 개의 작품이 놓일 전시 공간의 한계를 감안해 제작 크기도 20×20㎝ 이내로 제한할 수밖에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양구백토를 받은 작가들이 반가운 마음으로 곧바로 성형, 번조하고 안전하게 포장된 멋진 작품들이 빠르게 박물관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몇몇 공방을 찾아갔는데 황색 지통 속 양구백토가 빛도 보지 못한 체 작업실 한구석에 얌전히 놓여 있는 장면을 발견한 것이 여러 차례였다. 수개월이 지나도 백토가 빛(작품)으로 멋지게 변신해, 빠르게 회수되는 일은 요원했다. 내 연구실에서 발송을 기다리는 양구백토들을 바라보며 걱정이 커지기 시작했다. 과연 3년 안에 천 개의 빛을 채울 수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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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생략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2년 1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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