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 Exhibition Reviews]
이유의 기능 혹은 기능의 이유
이청욱, 내재적인 동시에 순환적인 카르마
글.안준형 문화행정가, 여주시청 주무관
창작을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 개인전은 어떤 의미인가? 단순히 혼자 치러내는 전시라기엔 그 절실함이 너무 크고 과정은 험난하며 사명감은 지나치게 무겁다. 혹자는 성취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전시를 개최한다. 작품을 판매해 이득을 취하려는 장으로 활용하려는 이도 있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저마다의 이유로 개인전을 개최하는 이들을 뭐라고 칭해야 할까? 흔히들 작가作家나 예술가藝術家 또는 도예가陶藝家라고 여기거나 불린다. 이번 전시는 30년 이상 흙에만 몰두해온 이청욱의 첫 개인전이다. 이청욱을 앞의 분류 혹은 다른 무언가로 칭해야 할 터인데 마뜩한 단어가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석사 이상의 청구전을 치르고, 논문을 쓴 후에야 비로소 얻게 되는 나름의 영광스러운 칭호는 소위 주류라는 이들의 전유물로 느껴지기도 하거니와 남들보다 한참이나 늦은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이청욱이 쏟아내었을 심상을 감히 규정지을 수 없어서이기도 하다.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난 이청욱은 경주공업고등학교에 재학하면서 처음으로 도예를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드물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전국 각지에 요업窯業 즉 도예를 가르치는 실업계 고등학교들이 꽤 있었는데, 도자 관련 산업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컸음은 물론 대학과 전문대학에 관련 학과가 우후죽순 생겨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반 세기간 호황을 누리던 제조업으로써의 도자 산업은 점차 쇠퇴하고 있으며 도자 관련 학과의 폐과나 타 과와의 통합은 현재진행형이다. 경주공업고등학교 요업과 역시 1951년 즈음 개설되어 50여 년간 도자 산업 종사자를 배출해 왔으나 새로운 세기의 도래에 모두가 들떠있을 무렵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청욱의 삶은 한국 현대 도자 산업의 흥망성쇠와 궤를 같이한다. 살아온 시대가,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경북 경주의 월성요업, 경기도 곤지암의 길성요에 취업해 도자기를 빚었고 당시의 많은 이들처럼 결국에는 도자기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여주에 정착하게 된다. 여주 도자기의 역사성을 차치하더라도 흙 작업을 이어가는데 여러모로 유리한 요건을 갖췄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여주에서도 몇몇 도자기 공장을 거친 이청욱은 1999년, 서라벌도예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독자적인 작업을 전개해 나간다. 혹은 생계를 이어왔다고도 볼 수도 있다. 처음에는 차 도구와 실내장식 소품 등 소위 잘 팔리는 것을 주로 제작하거나 주문을 받아 납품하기에도 바빴다고 한다. 하지만 시대는 그를 결코 안주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쉼 없이 물레를 돌리면서도 고뇌를 거듭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2007년 무렵 자신 있는 물레 성형 기술을 바탕으로 대형 기물, 특히 달항아리 제작에 집중하자고 스스로 답을 내어놓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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