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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월호 | 전시토픽 ]

차문화 속 청자 이야기 다향다색
  • 편집부
  • 등록 2021-03-03 10:28:32
  • 수정 2021-03-03 17: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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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토픽

 

차문화 속 청자 이야기

다향다색

글. 노영희 경기도자박물관 학예연구사 사진. 경기도자박물관 제공

 

12.4~2021.3.28 경기도자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
경기 광주시 경충대로 727
T. 031.799.1500 H. www.ggcm.or.kr

도자기의 탄생과 발전은 인류가 선호한 기호음료의 발달과 매 우 밀접하다. 현대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일상음료가 커피라면 중세사회에서 차茶는 고급음료로서 동아시아를 매료시켰다. 품 격있는 차를 즐기기 위해 전용 용기인 다구의 보급이 확대되었 고, 다구茶具는 더 이상 차를 담는 실용기가 아닌 시대적 취향과 사용자의 권위를 반영한 선망의 대상이었다. 각종 다구 가운데 서도 실용성과 심미성을 겸비한 도자기는 오랫동안 각광을 받 으며 제다법과 요업의 발전에 따라 형태와 품질이 다양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차가 가장 발달한 나라는 바로 고려高 麗918~1392이다. 고려는 문화의 다양성을 융합하고, 중 국의 선진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개방적인 나라였으 며, 중국의 차 문화를 고려에 동시대적으로 반영하였다. 차를 경건하게 대하는 고려인의 자세는 청자의 탄생을 자극하였고, 청자는 음다飮茶 습관과 문화적 취향을 반 영하며 고려 500년간 끊임없이 발전하였다.
이번 경기도자박물관 기획전 <다향다색茶香多色 ; 차문 화 속 청자 이야기>는 세계 굴지의 한국 청자문화에 밑 거름이 된 ‘차茶’에 주목하여 차 문화와 함께 다양하게 전 개된 고려시대 생활도자를 선보이는 자리이다. 푸른 청 자의 다양한 빛깔을 조명하는 ‘다색多色’과 청자에 깃든 차향을 조명하는 ‘다향茶香’ 두 개의 주제로 나눠 차 문화 속 청자 이야기를 살펴본다. 또한, 전시에 출품된 차의 최대 소비처인 왕실유적, 귀족무덤, 그리고 개성으로 가는 서해안 침몰선 등 고려시대 핵심유적 출토품을 통해 한때 융성했던 고려 차 문화를 복원하고 청자의 모습을 생활사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고려에 꽃피운 ‘다색多色’의 푸른 청자
통일신라 828년, 중국 당나라를 다녀온 대렴大廉이 차 씨앗을 국내에 들여온 이래 왕실, 귀족 등 상류층에서 차 애호문화가 지속되면서 최신문물인 중국자기로 관심이 이어졌다. 중국의 다성茶聖 육우陸羽는 『다경茶經』(760 년경)에서 차를 녹색으로 돋보이게 하는 월주요 청자를 당대 최고의 찻그릇으로 평가할 정도로 당시 청자는 찻 그릇의 으뜸으로 여겨졌다.
통일신라의 회유도灰釉陶 기술을 계승한 고려는 중국자 기를 대체할 찻그릇의 국내 생산을 위해 중국 절강성 월 주요越州窯의 선진 청자기술을 수용하였다. 고려의 수 도 개경과 인접한 황해남도 배천 원산리, 경기도 시흥 방 산동, 용인 서리 등 한반도 중서부지역에 중국 가마인 대 규모 벽돌가마塼築窯를 설립하였고, 이때 생산된 대표 적인 찻그릇은 해무리굽완이었다.
중국 월주요산 ‘옥벽저완玉璧底碗’을 모방한 황록빛의 해무리굽완은 고려의 미감을 반영하여 변화를 거듭하였 다. 청자생산의 중심이 전라도 강진으로 전환되는 11세 기까지 해무리굽완은 약 2세기동안 생산을 이어갔으며, 고려청자는 점차 고려만의 ‘비색翡色’과 완숙한 조형미를 위시하는 찻그릇으로 거듭 발전하였다.

 

고려청자로 즐기는 ‘다향’
고려의 차 문화는 덩이차餠茶를 갈아 끓여 마시거나 곱 게 간 단차團茶를 차선으로 거품 내는 다양한 음다법飮 茶法이 유행하였다. 차를 숯불에 굽고 가는 의식은 차를 마시는 첫 단계였으며, 고려 국왕은 불전에 차를 공양하 는 공덕재公德齋를 위해 친히 맷돌茶磨로 차를 갈아 예 를 표하기도 하였다.
고려사회에서 차 문화는 문화수준과 이상향을 담은 ‘마실 것’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 국가의 위계질서 확립을 위해 개경에 설치된 다방茶房의 전담 하에 각종 다례茶禮를 거행하였으며 차를 재배하는 특수취락인 다소茶所 역시 국가의 관리대상이었다. 차는 상류 귀족층에서 사교와 풍류를 위한 고급음료로 인식되는 한편, 불가에서는 부 처님 공양물과 승려의 참선도구로, 일반 백성에게는 약 용으로 소비되었다.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는 말이 있듯이 차를 마시는 것은 식사만큼이나 저변화되었다. 관청에서는 다시茶時 를 정하여 매일 차를 마시고, 귀족들은 다점茶店에 들러 차를 구입하거나 차 준비를 위한 행다용구行茶用具, 차 를 마시는 음다용구飮茶用具 등 세련미 넘치는 청자다구 를 갖춘 다회茶會를 열었다. 차 문화를 주도한 문인의 차 예찬 시가 유독 많이 전해지는 것도 고려시대 차의 위상 을 짐작케 한다. 이러한 차 문화의 발달이 있었기에 다기 로 널리 사용된 고려청자 또한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 평가되는 괄목할 만한 도약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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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1년 2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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