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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월호 | 전시리뷰 ]

<상상동물도>
  • 편집부
  • 등록 2020-11-05 12:42:23
  • 수정 2020-11-05 12:4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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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취하는 즐거움

<상상동물도>
글. 문유진 독립큐레이터 사진. 스튜디오 홍기웅

2020.9.12~9. 27
킵인터치 서울
서울 종로구 북촌로 1길 13 T. 010.9133.3209

<상상동물도>는 예술적 표현 매체로서 도자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한편, 우리 시대의 도자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많은 이들과 나누고자 기획한 전시다. 기획의 구조 역시 여러 겹으로 구성되는데, 그 핵심만 요약하자면 <상상동물도>는 도자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좋은 기운이 전해지고,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아주 작은 순간일지라도 이완과 위안의 정서가 환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기획이다. 곁에서 눈을 맞추고, 건조한 표정에 피식 웃음을 더해 줄 존재, 우리 주 변에 긍정적 기운을 전해 줄 존재를 그리며 시작되었다.
상상동물圖, 상상동물陶
어디선가 본 듯한 신비로운 동물들, 인간이 지키지 못하는 자연의 질서와 삶의 가치를 수호해 주는 존재들.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건강과 안녕을 기원해 주는 동물들. 때로는 위엄 있는 모습으로, 때로는 해학적이고 친근한 얼굴로 인간사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 를 들려주는 동물들. 동물은 인간의 삶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는 존재이자, 인간의 욕망과 희망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도자와 닮았다. 또 동물 묘사와 흙 위에 그리는 그림은 둘 다 인간이 동굴에 살던 시절부터 실용적으로나 상징적으로 인간에게 정서적 안락함을 주는 역할을 해 왔다. 그래서 동물 그림이 그려진 도자는 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해석이나 이해에 대한 강박 없이 감상할 수 있다. 게다가 수호, 정의, 태평성대, 반가운 소식 같은 길조의 의미를 담은 도자라면 우리에게 더욱 보드라운 마음을 갖게 해 줄 것이다. 그래서 <상상동물도>는 수천 년 전 에 태어나 현대 사회에서는 그 상징 의미를 거의 잃은 채 고미술 속에서 잠자고 있던 신령한 동물들을 동시대 예술가의 손으로 다시 불러냈다. 흙 위에서 깨어나 다시금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오도록 말이다.
<상상동물도>는 ‘드로잉’을 작품 창작의 주요 요소로 삼는 우리 시대 작가들이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상상동물 도상을 각자 고유의 양식으로 해석한 50여 점의 도자 신작으로 구성됐다. 전시는 두 개의 축 위에서 펼쳐진다. 하나는 상서로운 의미를 담은 상상동물 도상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의 표현 방식인 ‘도자 드로잉’이다. 동시대 도자 문양은 개인적 서사, 환경, 관심사, 표현법에 따라 다변화되어 왔는데, 작가들은 관습적 표면 장식 대신, 고유의 조형 언어를 디자인한다. 여전히 전통에 갇히거나 유행에 매달리기도 하지만, 많은 도예가들이 예술적 표현 매체로서, 도자를 탐구하는 과정이자 방편으로서 그림을 그린다. 그래서 <상상동물도>는 태토와 화장토, 안료, 유약의 관계와 물성物性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도, 그 사이사이에 상징과 이야기를 심어 넣는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작가들이 ‘흙 위에 그린 그림’을 주목했다.

연호경, 윤정, 이정용, 이창화, 허상욱은 각자의 예술적 의지에 따라 선택한 재료, 기법, 화제畵題를 가지고 자신 만의 독특한 양식을 구축해 온 도예가들이다. 그리고 채상우는 직관적 묘사와 색채 사용이 돋보이는 그림체로 도자기에 상상동물의 이야기를 더해주길 기대하며 특별히 초대한 그림책 작가이다. <상상동물도>에서 이들은 숙련된 솜씨로 각자 대표적 표현 형식과 기법을 뽐내며 때로는 섬세하게, 때로는 거침없이, 새기고, 긁어내고, 색을 입히며 각기 다른 길조와 수호의 존재들을 그려냈다. 연호경은 핀칭으로 조물조물 쌓아 올린 뒤 하얗게 화장토를 바른 분청 기물 위에 재치가 번뜩이는 드로잉과 글자를 새겨 넣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정서를 직관적으로 표현한 색색의 드로잉은 풍자적인 기물 형태와 함께 연호경표 분청의 형질을 만든다. 하지만 작가는 감정이입 이나 몰입 대신, 건조하게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이들을 대하는 듯하다. 그래서 연호경의 드로잉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내도록 초대한다. 작품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하는 대신, 감상자 의 ‘창작’을 유도하는 것이다. <상상동물도>에는 베갯모와 문관의 흉배에 장식하던 쌍학雙鶴,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는 호랑이와 까치虎鵲, 용이 되고픈 잉어登龍門처럼, 작가 개인의 바람을 표상하는 동물들을 민화풍으로 그린 분청 오브제와 항아리, 그릇을 출품했다. 이들은 마치 자조 섞인 독백을 하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작가의 ‘꿈’ 을 내뱉는다. 완벽하고 고전적인 아름다움에서 비껴나, 장난스러운 듯 따뜻한 정서적 교감을 일으키는 연호경의 화법話法은 기물의 형태와 문양의 상호 작용, 다양한 색과 질감 표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실험적 접근을 통해 구체화된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정서적 거리두기가 있다. 그리하여 작가는 세상살이를 ‘꼬집듯’ 표현하고, 그렇게 세상에 나온 유쾌한 도자기는 보는 이들이 저마다 추억을 소환하고 상상하며 즐길 수 있는 물건이 된다.

신예 도예가 윤정의 석기질 기물에 그린 그림책 작가 채상우의 드로잉은 원초적인 힘으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매혹의 중심에는 ‘통쾌한’ 촉각 경험과 직관적으로 전달되는 이야기가 있다. 다듬지 않은 필치와 강렬한 색으로 이야기와 감정을 담아내는 채상우의 동물 그림과, 흙의 본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이야기를 담 지 않고 추상 문양으로만 표면을 채운 윤정의 분청은 대화와 중첩을 반복하며 서로에게 스며든다. 윤정은 문양 장식 기반의 분청 양식이 아닌 거친 석기토의 본성과 질 감을 표현하는 형식을 탐구해 왔는데, <상상동물도>를 위해 처음 만난 채상우와 함께 지금까지는 시도해본 적 없거나 금기시해 온 작업의 경계를 넘어선다. 그 결과, 두 작가의 고유한 힘이 고스란히 발현되면서도 완전히 새로 운 종류의 ‘상상동물陶’가 탄생했다. 채상우는 재료의 성질을 탐구하는 윤정의 묵직한 작업에 감정 표현과 즉흥성을 한 겹 더함으로써 유쾌하고 직관적 감흥을 불러일 으키는 작업을 완성했다. 이들은 서구 문화권의 감상자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상상동물에 대한 경험과 기억을 함께 탐색하고, 그와 어울리는 우리 전통 문화 속 상상 동물 도상을 찾아 네 가지 동물을 구성했다. 스페인 유적 알람브라 궁전에서 본 사자 석상, 조선 궁궐의 다리 위에서 명당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신수 천록天祿, 달나라에서 절구에 불사약을 열심히 찧는 토끼, 아기 해태를 등에 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정의로운 해태. 두 작가는 이들 각각의 도상이 갖고 있는 상징과 이야기를 설명적으로 풀이하는 대신, 보는 사람이 이들을 통해 느꼈으면 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각 상상동물의 성격을 설정하고 묘사했다.

이정용은 조선백자의 태토 위에 우리 시대의 재료와 화제를 세심히 덧바른다. 그는 상감청화에서 기명도器皿圖 로, 질감 연구에서 색채 실험으로, 입체에서 회화로. 조선 백자에서 이정용 백자로. 백자 조형의 진화를 향하여,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리를 건너는 중이다. <상상동물도>에는 기명도 형식을 바탕으로 봉황鳳凰과 호자虎子 문양 기물들을 둥근 화면 내에 배치하거나, 단순하고 응축된 필치로 유영하는 용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을 출품했다. 조선백자의 원형原型 위에서 섬세하고 고아한 청채 靑彩와 민속적 해학을 만나게 하고, 정제된 백자의 표면 에 거친 백토를 덧바르고 은은한 색면色面에 붓의 흔적 을 남겨 촉각적 차원을 더했다. 특히, 「용이 그려진 접시」 2020 과 「백자 철화 용 문양 항아리」 2020 에서 작가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백자 철화 용문 항아리의 문양을 참조하여 용의 도상적 특징을 묘사하는 대신 눈과 입을 중심으로 몇몇 기호들만 남기고 추상화했다. 간략해진 용의 얼굴에서 위엄은 사라졌다. 대신, 굽이굽이 항아리를 휘감은 철화와 군데군데 더한 은채, 금채 장식이 앞서 언급한 화장토의 질감과 색 번짐 효과와 어우러져 안개 자욱한 밤 하늘을 헤매고 있는 용을 상상하게 한다. 어쩌면 이 용은 번쩍이는 겉모습에 치중하느라 실상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하고 갈피를 못 잡는 우리의 초상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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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0년 10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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