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 달팽이, 소파에 나비, 카펫에는 개구리…당연한 일상의 현장을 재현한 전시장 곳곳에는 보호색을 입은 생물들이 자리하고,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칠 법한 것들이 구석에서 조용히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숨은 그림 찾기
천장이 높고 빛이 많이 들어오는 공간은 마치 실제 누군가의 집을 방문한 듯한 인상을 남긴다. 일종의 인테리어를 보여주는모델하우스 구조의 전시장은 실제감을 주기 위해 거의 대부분 작가의 소장품이 직접 사용됐다. 화분이 놓인 콘솔과 소파를포함한 가구는 물론 사이드 테이블에 놓인 머그와 리모콘, 책상 위나 선반을 채운 책과 소품들, 옷가지는 모두 작가 자신이사용하던 것들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빛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는 창가에 배치한 종이로 만든 새들은 창 밖 나뭇잎 그림자와 어울리며 실감을 더한다.맹욱재 작가는 이번 전시 테마인 ‘지각되지 않는 것’의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연출한 부분마다 배경과 같은 색 조형을 배치해 눈에 잘 띄지 않도록 의도했다. 캐스팅 기법에 색슬립으로 제작된 도자 조형들은 도시 속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것이 아닌, 관찰자가 관심있게 주변을 들여다보면 찾을 수 있는 생명체들이다. 작가는 도시의 속도와 경쟁 속에 치여 발견하기 어렵게 된 주변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한다. 현대인의 삶을 상징하기 위한 오브제의 활용으로 시들지 않는 조화와 관리가 필요한 생화를 위 아래 테이블로 대비하거나, 유난히 많은 시계를 배열한 것은 화초를 돌볼 여유조차 없이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사는 현대인의 일상 단면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그리워하지만 현재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징 오브제로 직접 찍어온 여행 사진도 배경으로 설정됐다.
특히 이번 전시는 각각의 조형들이 다양한 ‘무대’ 위에서 배우처럼 보여지기 때문에, 작가는 전체적인 분위기 구상에 중점을뒀다. 전시장 입구 정면에서 보이는 날아가는 수십마리의 비둘기나 풀, 나비, 새 등은 컷팅플로터로 재단한 종이로 만들었고, 종이 야생초에 자연스러운 잎맥을 표현하기 위해 일일이 주름을 접어 넣기도 했다. 민달팽이나 거미같은 섬세한 디테일이 필요한 것들은 아이클레이나 철사 등의 재료를 사용하는 등 다양한 재료를 유기적으로 조합해 시각적 다양성을 높였다.
살아가는 모든 것들의 일상
인간과 공존하고 있는 다른 생명들과의 관계를 다루는 주제에 천착해 온 작가는 주로 생활 공간 주변에서 작품의 소재를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국에서 수학하던 시절에는 풍요로운 자연에서 경험한 야생동물들을 형상해왔다. 이번 전시를 구성한 것은 봄에 많이 볼 수 있는 야생초나, 작가의 작업실에 놀러오는 길고양이, 군시절의 추억이 담긴 개구리 등 작가와의 개인적 에피소드가 담긴 생명체들이 선택됐다. 모두 작가가 귀국 후 서울의 도시환경에 적응해가며 발견한 “너무 작아 인지하기도 어렵지만 아름다운 것들”이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쥐’를 가져 온 이유는 우연히 작업공간에 들어온 쥐와 2시간 남짓 벌인사투 끝에 얻은 깨달음이 컸다. 재료를 담은 통이 잔뜩 쌓여있는 곳으로 숨은 쥐를 내쫓기 위해 통을 치우는 동안, 통이 하나하나 사라질 때마다 쥐가 느꼈을 공포가 떠올랐고 잠시나마 쥐의 심정에 공감했다고 한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함께 작은 소란을 보내고 나니 쥐가 그리 무서운 동물이 아니라 생각보다 작고 귀여운 존재로 보였다고.이처럼 그동안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위해 ‘우리’가 영위하는 평범한 일상 공간에 뛰어 든 각 개체들은 인간과 인간이 만든 것들로 채워진 도시 속에 살아가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리게 상기시킨다. 불현듯이 나타나 책상을 가득 채운 덩굴과 달팽이, 테이블 위 간식을 탐하는 쥐들의 무리는 동시간대에 어디선가 존재하고 있을 또 다른 개체들의 일상에 대한 상상을 자극한다. 우리가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낼 때에도 시간은 어느 존재에게나 동일하게 흐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5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