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용 「개화」 42×42×25cm, blown, coldworked, glass
공예에서 담을 수 있는 것은 기물器物이다. 기器는 인류의 정착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해서 오랜 세월 동안 인류 생활의 변화를 이끌며 발전해왔다. 즉 그릇은 인류의 문화를 담고 있다. 현대공예가가 표현하는 기器는 음식이나 무엇인가를 담아내는 실용적인 그릇에서 무형의 것을 담아내는 상징적인 것이나 작가의 예술적 표현을 위한 개념적인 의미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즉, 담음을 본질로 하는 그릇은 현대의 식생활에서 필요에 의해 그 형태와 질감이 변화되어 오고 있으며 생활문화 속에서는 오브제의 기능도 병행하고 있다. 한편 예술의 대상에서 그릇을 매개로 하는 접근은 담음의 의미를 정신적인 내용까지 함의하고 있다. 이 전시에 초대된 작가들은 기器에서 출발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며 재료와 형태, 그리고 내용에서 상이한측면이 있다. 3명의 작가들이 받아들이는 ‘담다’라는 개념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살펴보자.
김준용 작가는 유리조형가로 개인전을 7회 개최한 역량 있는 작가이다. 국내외 공예 공모전에서 수상하고 국제적인 비엔날레에 초대받고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과 주요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그의 작품은 기器의 형상을 고유하게 유지하지만 내용적 측면에서는 소재에서 나타난 빛의 개념과 표면에 표현된 렌즈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유리의 물리적특성인 투명성이 빛에 의해 반사되어 그림자의 변화로 이어지는 확장된 이미지이다. ‘담는다’는 것이 기물 안으로가 아닌 기물 밖의 공간을 흡수하는 ‘담음’이다. 이는 작가가 지향하는 개념적인 의미로 유리 조형작업을 통한 제3의 공간까지 고려한 것이다. 기물 표면의 오목과 볼록의 작은 원형들은 또 다른 눈의 역할을 유도하여 외부의 공간을 담는 멀티 렌즈이다.
장호승 작가는 도예가로 개인전 4회와 국내외에서 다수의 기획전, 초대전에 작품을 출품한 역량 있는 작가이다. 복합문화공간 가미크래프트 공방을 운영하며 전시, 교육, 그리고 카페와 맞춤식 레스토랑에서 식문화를 위한 그릇으로 주목 받고 있으며 개별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기존 발표된 작품이 주거문화의 변화와 개성 있는 식문화의 연출을 위해디너 웨어Dinner ware분야를 중심으로 발표되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세시음식>이라는 뚜렷한 주제로 구성된 작품을 선보였다. ‘담음’의 의미가실용적으로 가장 잘 접목되는 작품으로 역사적, 문화적 자료를 토대로계절별 음식의 특성이 반영된 그릇으로 구성된다. 현대인의 기호와 음식문화를 반영한 형태와 크기, 그리고 작가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림과 질감으로 독창적인 세시 그릇을 제시한다.
정용현 작가는 도예가로 개인전 2회와 다수의 초대전을 개최한 역량 있는 작가이다. 2005년 미국 유학 때부터 공예적인 형태에서 설치까지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하며 주목 받았다. 귀국 후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탐구하며 개념적인 작품들을 구축해가고 있다. 이번에 출품된 「같으면서 다른Same Difference」시리즈는 같은 형태의 기물 2점을 나란히 설치하여 한 작품으로 보여준다. 언뜻 보기에 외형상 형태는 같지만 성형방법과 질감이 다르다. 한 작품을 물레로 성형하여 매끄럽게처리한다면, 다른 작품은 코일링기법이나 판상기법으로 작업하여 질감을 다르게 표현한다. 기물의 형태는 화기, 컵, 접시, 항아리 등으로 무엇인가를 담기에 적합하다. 그렇지만 작가는 쓰임의 기능보다는 은유적 사유에 초점을 맞춘다.보여지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를 극명하게 대조하는 장치이면서 결국은 동일한 기器의 형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1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