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성은 우리나라 서민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는 옹기의 전통을 연구하고 그것을 현대화시키는 작업에만 에너지를 쏟아 부어 몰두해온 고집스런 도예가이다. 그는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를 졸업한 이래 전라북도 김제시 부거리 850번지에 눌러 앉아 옹기만을 상대로 씨름해오고 있다. 그 곳에는 원래 뺄불통 가마가 여섯 개나 설치되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옹기마을로 일컬어지게 되었으며,2008년에는 마침내 근대문화유산문화재 제403호로 등록되었다. 지금은 하나만이 남아그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지만, 그는 그 바로 옆에 또 하나를 짓고서 전통옹기의 재현과 그것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옹기란 신라시대 이후로 우리의 음식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다. 그것은 가장 일상적인 용기容器 중 하나라는 특성 때문에 심미적 대상으로서보다는 실용적 대상으로서의 위상이 더 중요했다. 옹기 작가인 그도 다양한 형태의 밥그릇, 국그릇, 반찬그릇 같은 생활용기뿐만 아니라 김치그릇이나 젓갈통과 같은 대형 옹기도 만들면서 옹기가 지닌 고유한 멋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통 옹기의 재현 시도가 성형의 실험에서 뿐만 아니라 유약의 실험에서도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그것은 중국의 사혁(謝赫, 500-535)이말하는 화육법 중 전이모사轉移模寫의 이치를 그가 충실히 수행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그의 재현 시도는 따라서 전통 옹기의 기법뿐만 아니라 기운까지도 전수받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이와 같이 전통옹기가 지닌서민적인 투박한 이미지가 그의 털털한 성격과 부합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거기에 그의문화사적인 역사인식이 가미되어 그를 마침내 작금의 옹기 도예가로 변신시켰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그는 이제 전통을 연구함으로써 전통을 벗어나려 하고 있다. 그에게는 전통옹기가 최종 연구목표가 아니라 새로운 현대옹기로 가는 여정의 간이역으로 변해가고있는 것이다.
그는 요즈음에 그 자신의 내면의식을 작품에 투영하는 방식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그는 전통 옹기의 조형작업에 현대미술에서 만날 수 있는 주관주의적 경향을 대입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필자에게 그 자신 작품의 최신 경향을 즐겁게 설명했듯이 아들과의 어느 저녁 나들이에서 운석의 떨어짐을 목격했던 순간으로부터 그는 마침내 일상의 이미지를 예술적 이미지로 전환시키고 싶은 충동을 더 강렬하게 느꼈다 한다. 그는 마침내 하늘의 별자리들을 찾아 나서게 되었고, 그것들의 중간점들을 삼각뿔형태로 간소화하여 기면에 옮겨 띠 모양으로 새기기 시작 했다. 그가 처음에는 고대인들이 옹기의 기면에 새겼던 빗살문양이나 격자문양의 자리를 활용하더니 이제는 전체 기면을 활용하는 등 그 새김 위치를 자유자재로 설정하는 경지에 도달했다고 판단된다.그런데 그는 기본적으로 옹기의 현대화를 그조형적 변화에서 찾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가 이번에 제시하는 작품들 중에는 구형球形이 많다. 그러한 변화는 그가 별자리를 찾아 나서게 되면서부터 그와 동시에 갖게 된거시적인 세계관에서 기인하는 듯하다. 그는 한 때 조선조의 백색 달 항아리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적이 있었는데, 요즈음에는 그것을 옹기로 변형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의 다채로운 체험들이 그로 하여금 지구, 더나아가 우주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게만들었다.
구형은 가장 원만하고 부족함이 없는 형태이다. 하지만 생활옹기의 제작에 익숙해져 있던 그에게 조형적인 변화는 어느 정도 망설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내 새로운 옹기의 형태미로 나아가고 있다. 말하자면성형기법에서는 전통 옹기의 부풀어 오른 것처럼 둔탁한 곡선적인 요소에 날렵한 직선적요소를 적절하게 가미함으로써 새로운 현대화된 형태미를 창출해나가고 있다. 또한 번조기법에서도 요변과 같은 특이현상을 야기함으로써 밋밋한 기면에서 불을 통한 변화감을유발하고 있다. 솔잎들을 신문지로 말아 그릇들 사이에 쑤셔 넣고 번조함으로써 그 부분에서는 특이한 색상들의 분위기를 보게 되는 것이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1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