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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월호 | 전시리뷰 ]

그 여자의 사물들- 관찰과 사색의 풍경
  • 편집부
  • 등록 2018-01-08 15:40:00
  • 수정 2018-01-08 15:4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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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숙 <정물도>
  • 2017.3.7~5.8 KSD갤러리

「부귀영화 1」

 

어느 날 익숙한 사물이 시선의 범주 안에 불현듯 들어와 낯설게 말을 걸어올 때, 작가는 사물이 갖고 있던 감춰진 이면裡面을 잡아채고 그 속에서 자신의 단편을 인지한다. 이지숙이 매일 새롭게 응시하고 자신을 발견하는 대상은 일상의 소소한 물건들이다. 작가의 어느 하루를 그대로 이미지로 떠낸 듯 이지숙의 정물도에는 책, 문방구류, 과일이 담긴 그릇, 꽃이 담긴 화병, 차, 자개, 장식품, 화장품 등 다양한 기물이 등장한다. 흥미로운 구성과 차분한 색조, 핍진逼眞한 묘사가 매력적이다. 이지숙은 자신이 매일 보고 사용하며 어루만지는 것들을 단순히 보고 애정 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응시를 흙을 주무르고 깎고 새기고 나아가 세필을 쥐고 그리는 지난한 과정으로 시각화한다. 작가의 물건은 대부분 자신의 엄마에게 물려받았거나 자신이 사용해온 소소한 사물들로 시간 속에서 독특한 고유의 언어와 온도, 역사를 지니게 된 물건들이다. 모든 사물들의 태생은 다수를 위한 혹은 타인의 것이었다가 어느 날 어느 인연으로 나의 삶으로 불현듯 들어와 나의 것으로 명명되고 각인된 것들이다. 이처럼 한 사람의 삶과 오랫동안 동행한 사물들에는 새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함과 특별함이 있다. 물건이 곧 주인장의 성격이고 취향이며 살아온 인생이다. 이것은 단순한 객관적 사물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 속에서 한 사람의 애정과 삶의 방식 그리고 추억을 덧입은 것들이기에 충분히 물건 주인의 실체와 면모를 가늠하게 해주는 물질적 기표로 기능할 수 있다.


화면은 다양한 사물이 서가 혹은 다보각多寶各 이나 다보격多寶格 등 광대하고 밀폐된 격자형 구획 속에 배치되는 옛 책가도의 화법과 닮아있으면서도 서양의 정물화처럼 열린 구조를 보여준다. 때문에 혹자에 따라서는 투시도법에 따라 형상이 비틀리는 오묘한 구성, 책거리 풍경 특유의 고아한 정취, 그리고 은은하고 빛바랜 오방색 색채를 근거로 이지숙의 작업을 옛 민화나 혹은 책가도, 기명절지화 등을 새롭게 해석하는 일과 연관 짓기도 할 것이다. 실제 평소 책을 가까이하고 주변 지인들과 함께 좋은 음식과 문화적 감흥 나누기를 즐기는 작가가 그려낸 책이 있는 정물풍경은 조선시대 늘 생의 근거리에 책을 놓아두고 생활화하며 고매高邁하게 살고자 세워두었던 선비들의 책가도와 묘한 접점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원근법이 지워진 평면적인 세계에 오랜 시간 씻겨 퇴락한 그러면서도 화려한 색조가 흙의 피부 깊숙이 흡착되어 있는 이지숙의 책가도는 학문을 숭상하고 예술을 즐기던 옛 선비들의 고아한 취향과 지적 세계를 향한 향유와는 분명 다른 화면이다. 그곳에는 자신의 삶 속에서 문화적 향기를 탐닉하는 감미로운 감성 그리고 손 때 묻은 오래된 물건들에서 생의 안락을 꿈꾸는 한 여자의 나르시시즘이 물씬하다. 그러나 매일 안락과 평안, 정주를 갈구하면서 도 숙명적으로 생자필멸生者必滅 매일 유동하고 맥동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과 사유의 숙명성을 반영하듯 화면 속의 사물 풍경은 권태롭고 어색하다. 물건들은 하나같이 주인의 성과 성정, 취향을 반영하듯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 이면에 여성으로 짐작되는 물건의 주인이 지닌 생의 고독과 쓸쓸함도 동시에 감지된다. 화면 속에는 현실과 달리 한 여자가 딸, 아내, 엄마인 한 여자가 투쟁하듯 치르고 해결해야 하는 생의 고락苦樂이 부재하다. 사물들은 모두 원근법에 맞지 않고 그림자도 없이 공중에 부유하듯 붕 떠 있다. 같이 한 공간 속에 존재하면서도 독립적이고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이지숙의 사물 표현은 옛 그림의 역원근법逆遠近法과 다시점多視點의 세계를 차용하려는 의도나 미숙한 재현능력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잔잔한 일상의 평안과 고요 속에서 늘 그림자처럼 동거하는 불안이야말로 어딘가 도사리고 있는 우리 현실의 위태로움과 그늘일 수 있음을 시각화하는 일이자, 우리의 삶과 존재가 늘 희망적이고 긍정적이길 바라는 우리의 강렬한 생의 희구가 한낱 환상이자 착각일 수 있음을 일깨우려는 작가의 방법이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4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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