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인 물레 성형을 지속해 온 김혜정은 동심원을 그리는 듯 완벽에 가까운 원 형태의 그릇을 십 오년 여 동안 만들었다. 일정한 모양의 동심원의 그릇을 만드는 것은 기술과 노력,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반면 일정하지 않은 모양의 그릇을 만드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워 보이나, 비대칭적이면서 하나의 완결된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완벽한 동심원의 그릇이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정형적인 그릇의 형태, 질량, 재료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비정형적인 형태의 응용된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작가 노트를 빌려 말하자면 “불완전하지만 자유로운, 그래서 끝내 온전해지는 마음과 같다.”
물레질을 거쳐 탄생하는 초벌 전의 부드럽고 얇은 동심원의 그릇은 직물처럼 부드럽고, 손으로 들어 올리면 그 모양을 따라 결대로 휘어진다. 작업하는 손의 촉감이 남은 채 완성된 그릇은 비대칭적이고
비정형적인 시각적 이미지를 구축할 뿐 아니라 움직임의 흔적을 따라 촉각적 탐지가 가능한 통합적 감각intergrated sensitivity의 대상이 된다. 이는 본질적인 공예의 신체성을 드러내는 한편 손으로 만들어지는 공예의 유일성과 개별성을 확대시킨다. 산업화 된 현대사회에서 도예가의 손은 기계를 닮을 필요도 없으며 기계가 손을 닮을 수도 없음을 김혜정은 심피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그릇의 태토를 뚫거나 찢는 작업을 통해 김혜정은 ‘그릇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에 대한 탐구를 발전시켜왔다. 기면이 휘어지는 지점을 넘어서 그릇의 반대편을 드러내며 관통되기까지 하는 김혜정의 작품에는 공예품으로서 또는 미술작품으로서 도예의 개념에 대한 논쟁이 분분하던 시기부터 꾸준히 작업해 온 작가의 생각과 고민이 반영되어 있다.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또는 담기 위한 형태로 구축된 지점에서 김혜정의 그릇은 공예의 영역에 포함된다. 그러나 공예의 기능적 쓰임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찢어진 입술 라인이나 뚫린 몸통은 그릇의 공예적 속성으로부터 끊임없이 탈주하며 오브제Object적인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6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