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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7월호 | 전시리뷰 ]

순간을 포집하는 흙의 드로잉
  • 편집부
  • 등록 2018-01-04 17: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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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6.7~7.20 통인화랑

「untitled」 90x70x5cm, porcelain, 2017

 

서희수의 작업은 허공과 벽 위에 걸린 흙 조각이자 공간을 배경삼아 그린 날렵한 드로잉 필선이다. 작가는 홑겹 붕대를 흙물에 담가 여러 번 겹쳐 선線의 두께와 폭을 조절한다. 길게 풀어 잘라도 보고 묶어도 보고 서로 겹치기도 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어떤 재미있고 흥미로운 상을 발견한다. 이것은 애초에 어떤 상을 만들겠다고 머릿속에 계획되어 있는 과정을 추적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놀듯이 이리 저리 다루면서 물질 자체가 무엇이 되는 찰나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것은 물질이 불현듯 어떤 표정, 모습을 띌 때를 놓치지 않고 포착할 수 있는 작가의 안목과 재기 그리고 순발력에 크게 의지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수년전 작가의 작업에서 처음 등장한 붕대는 상처와 치유의 상징이자 자신의 삶 속에서 대면했던 친밀한 죽음들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을 소환하는 매개체였다. 그러나 작가의 관심이 점차 물성탐구, 독창적인 자신만의 형태와 색을 도출하는 방향으로 옮겨 가면서 붕대가 지니고 있던 기능과 알레고리는 점차 사라졌다. 붕대는 이제 흙의 가소성을 높이고 새로운 형태를 도출하는 심지 역할을 한다. 작가가 젖은 붕대를 두르고 배치하는가에 따라 화면에는 다양한 변주와 율동이 창출된다. 건조와 번조 중 붕대더미가 소멸하면서 형태는 주저앉거나 녹아내려 작가의 의도와 무관한 새로운 형태와 관계성이 형성된다. 결국 번조라는 변수와 우연에 따라 최종 이미지가 결정되고 작가는 그것을 단일 혹은 군집으로 재구성하여 화면을 완성하는 셈이다.

 서희수가 만든 도자 색띠들은 전통적인 구상조각의 틀을 빠져나가지만 공간에 서식하며 미묘한 관계를 맺는 조각물로서 자존한다. 전시실 내 다양한 실험의 궤적들은 그의 작업이 영감과 계획에 의한 연계적 증가양식이 아닌 반복과 채집을 통해 기계적으로 재생산된 시리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어떤 구성과 행위의 반복이 하나의 시각으로부터 다음 단계로 진보하는 사고의 운동력을 견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서희수의 작업을 도자작업을 회화적으로 확장하려는 행위 혹은 조각적 행위의 변모 그 양단간의 무엇으로만 규정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작가가 이런 무모하고 곤혹스런 작업을 지속하는 것은 자신이 가장 잘 다루고 대변한다고 믿는 물질과 작업행위를 통해 자신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시시각각 돌출하는 애매모호한 것, 사라지는 것, 흐릿한 것들을 확인하고 명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다. 즉, 순간 사라지는 찰나의 것들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이고 뚜렷한 형상으로 오랫동안 남겨온 미술의 오랜 역할과 닮아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7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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