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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월호 | 전시토픽 ]

행위와 물질 그리고 시간을 증언하는 집
  • 편집부
  • 등록 2017-02-01 11:52:10
  • 수정 2018-01-02 17: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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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진 초대전 <시간을 담은 집>

2016.11.1~11.29 한스갤러리

홍지수 미술학박사, 공예평론가

 

이인진 초대전 <시간을 담은 집>

이인진은 집을 만든다. 창문, 지붕, 처마, 담을 연상 혹은 암시하는 도상들은 모두 ‘집’을 지시한다. 그러나 그의 집은 구체적 현존으로서 ‘장소site’를 표상하거나 특정한 기억 속의 구체적인 대상을 재현하는 일과 무관하다. 오히려 이인진의 집은 구체적인 대상을 지시하거나 기억을 불러내려는 의도와는 무관한 형상, 이른바 추상미술에 가깝다. 그것은 완전한 집도 아니며 그렇다고 집이라는 지시성을 빗겨나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물질 혹은 재현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이미지이자 형체이며, 구상과 추상의 틈에 존재하는 모호한 오브제다. 또한 공예와 순수미술의 경계를 넘나들고,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흔드는 중간지대의 사물이다.

흙과 신체의 시간

이인진은 흙가래를 한 줄 한 줄 쌓아 올리고 손과 도구로 수없이 흙벽을 두드리며 두툼한 토벽土壁을 만든다. 눈과 손으로 표면을 더듬고 훑으며 흙과 흙이 결합한 자리를 지우고, 덮고, 매우는 과정을 반복한다.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행위의 반복과 중첩만이 현존하는 시각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 이처럼 이인진의 작업에 필히 수반되는 반복과 중첩은 오랫동안 작업의 핵심이었다. 그 과정은 작가의 몸이 수없이 흙과 비비고 부딪히며 재료의 성질과 표현 언어를 습득하는 체화體化와 진화進化의 시간이다. 작가는 흙과 불의 본질과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물레로 동일한 형태와 크기의 기물을 반복하여 만드는 일에 매진해왔다. 반복과 정체만이 존재할 것 같은 지루한 노동 속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몸, 자연, 재료 그리고 불에 의해 발생하는 모든 변화 사이에서 차이와 다름을 찾고 생각을 수정하며 자신만이 도출해낼 수 있는 형태, 비례, 색, 쓸모를 발전시켜왔다.

 

<집>연작은 1980년대 이후부터 물레작업과 병행해왔던 오랜 손작업에 근간한다. 반복과 중첩의 새로운 확장을 위해 물레성형 대신 손을 동력 삼고 화면성, 공간성이 한층 강조된 <집> 연작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이인진의 집은 물레성형 특유의 속도감, 기계성, 반복성과 대칭성을 내려놓는 데서 출발한다. 다리 사이에 물레를 끼고 기계의 회전 방향과 속도에 나의 신체의 리듬을 맞춰야 하는 물레성형과 작업 테이블 위에서 손끝뿐 아니라 온몸에 힘과 운동성을 부여하며 일일이 흙을 만지고 누르고 다지는 손성형은 전혀 다르다. 이 과정에서 물레작업과는 다른 작가의 신체성과 운동성이 강하게 부여된 형태 그리고 비연속성이 두드러지는 자연스러운 형태가 도출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물이 대칭성과 원형성을 탈피하여 점차 형태와 규모가 다양해지고 평면성과 화면성이 강한 사각 구조물이 확대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손작업은 작업자의 지문, 손마디의 너비,누름의 강약 차이, 속도와 쉼의 간격을 흙 속에 고스란히 축적시킨다.
이것은 죽기 전에는 절대 멈춤과 같음이 있을 수 없는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인간만이 생산 가능한 흔적들이다. 유일하고 불연속적인 흔적들-동일성과 균일성을 거부하는 애매하고 불명료한 신체성의 흔적들이 시간과 행위의 궤적에 따라 순응하며 매몰된 화면은 빛과 공간 속에 더욱 명징하게 파동 한다. 산란하는 빛, 운동하는 관람자의 시선, 그리고 환경에 따라 유동한 공간과 결합하며 그것을 응시하는 우리의 시각과 인식을 뒤흔드는 것이다.

 

「그림이 있는 집」 90×12×80cm, 2 pieces, 석기점토, 색화장토, 코일링,장작가마 소성 1250℃, 2015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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