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신 개인전-흉내 낼 수 없는 일상의 아름다움>
2013. 9.10 – 11.24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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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연symposium」, 도자, 1992 - 2003, 가변설치, 전경 <6번 전시실>
그릇의 조형미를 강조하고 그것의 쓰임을 보여주는 설치
2013년 5월, 서울시립미술관SeMA은 디자인과 공예가 중심이 되는 전시공간인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SeMA Living Arts Museum을 개관했다. 디자인과 인간의 거리를 좁혀주고 삶과 밀접한 예술의 가치를 조망하고자 만들어진 이 공간은 20세기 초 벨기에 영사관으로 사용되었던 매우 의미 있는 장소이다.
9월 10일부터 11월 24일까지 이곳에서는 현대 예술의 다양한 이슈를 다루는 전시들 중 세 번째로 이윤신의 개인전 <이윤신_흉내 낼 수 없는 일상의 아름다움Yi Yoonshin_ The Beauty of the Inimitable Ordinary>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현대생활도자 1세대인 이윤신은 전통과 현대, 순수예술과 공예, 공예와 디자인, 작품art work과 상품product등 뜨거운 논의를 모두 가로지른다. 뿐만 아니라 이토록 다양한 가치의 공유수단으로서 시장수요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이윤신 _ 흉내 낼 수 없는 일상의 아름다움>은 도자를 마주하는 이윤신의 태도와 신념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전시는 1,2층 전관 총 11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었다. 1층에 위치한(1번-5번) 전시실에서는 작가의 아카이브와 인터뷰, 드로잉, 아뜰리에 등을 통해 도예가 이윤신과 작가의 예술관에 대해 설명한다. 2층에 위치한(6번-11번) 전시실에서는 작업 활동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다양한 가치와 생활도자에 대한 이윤신의 태도를 보여준다. 오브제와 그릇, 쓰임, 작가적 디세뇨 정신, 소재와 디자인의 확장, 가치공유의 방법으로서의 시장market 등이 설치와 나열을 비롯한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지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전시 구성을 바탕으로 이윤신과 나누었던 대화 중 일부를 이 지면에 소개하고자 한다.
유세희(이하 유) : 이번 전시는 이윤신의 작업태도 전반을 보여주는 최초의 전시이다. 그동안 크고 작은 화랑에서 취하던 소극적인 태도와는 확연히 다른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다루는 적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전시를 결정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이윤신(이하 이) :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은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전시의 이슈를 제공하는 유일한 장소이다. 원래 이곳은 서울시립미술관 분관으로서 본관과 연계된 전시가 이루어지던 곳이다. 그러나 공예와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특성화된 공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필요로 재출범한 곳이다. 또한 20세기 초까지 벨기에 영사관으로 사용되던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생활 속에 녹아있는 내 그릇들을 보여주고 그동안 담아내지 못했던 이윤신의 이야기들과 그릇을 마주하는 태도, 신념 등을 제시해 주고 싶었다.
유 : 먼저 전시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이 전시는 이윤신의 그릇들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그릇’이라는 소재는 흔하나 이윤신은 ‘흉내 낼 수 없는 일상의 아름다움’이라는 주제로 본인의 그릇의 특별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흉내 낼 수 없는 일상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이 : 흉내 낼 수 없다는 것은 나만의 작업세계를 강조하는 것이다. 남과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셈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형성 정도가 될 수 있겠다. 도자예술이 가지고 있는 재료적, 기술적 요소들은 내 그릇을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적 수단이다. 전통적 기술방식을 차용하기는 하나, 다각도의 현대적인 해석이 더해진 조형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유 : ‘현대적인 해석’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한다.
이 : 이 부분은 내가 그릇을 처음 마주하는 태도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그릇을 만드는 이유는 ‘잘 쓰고, 잘 쓰이기 위해’ 서다. 대부분의 도예가가 추구하는 가마, 흙, 유약 등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 아니다. 따라서 ‘손수 흙과 유약으로 빚어내고 불로 완성하는 도자를 만들어 내는 것’에 가장 큰 가치를 두는 작가들과는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다. 잘 쓰고 잘 쓰이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조형성은 기본적인 요소이며, 만들어 내고 나누어 갖는 과정에 대한 고민이 분명히 포함되어야 한다. 나는 숭고한 장인정신도 물론 중요하지만, 현대사회의 발달된 기술을 이용하여 현대의 감각에 맞는 그릇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 : 종합해보자면 ‘조형적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한, 현대적 제작방식을 갖춘 쓰임이 있는 그릇’ 에 대한 이야기인가?
이 : 그렇다. 다시 전시제목을 빌어오자면 ‘흉내낼 수 없다는 것’은 나만이 가진 조형미이고, ‘일상의 아름다움’은 쓰임으로서의 그릇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유 : 결국 “쓸모있는 아름다움” 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 : 늘 말하는 것이지만 공예의 본질적 개념이라는 거창한 생각까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릇이 하는 역할이 음식을 담아내고 담아 먹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쓰임을 이야기 하지 않고는 그릇을 만들 수 없다. 여기에 나만의 조형적 요소를 더하여 가장 쉽고 편리한 방법을 통해 만들고 그것을 합리적으로 유통시키는 전 과정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는 내 그릇들.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손쉽게 만든다는 것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분명히 수공에 의존한 복잡하고 다양한 전 과정을 거치되, 이것을 더 빠르고 간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에 대한 노력을 지칭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전통은 내 그릇의 제작을 위한 테크닉의 차용 혹은 조형적 모티프가 되는 것들의 일부일 뿐이다. 특히 전통적 도자 제작방식은 분명히 중요하고 가치 있으나 도자그릇을 적극적으로 저변확대 시키고자 하는 내 신념과는 다소 먼 제작방식이다. 계속해서 현재보다 더욱 손쉽게 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디자이너 이윤신」 설치장면 <7번 전시실>
그릇 뿐 아니라 생활 속 또 다른 쓸모있는 것들에 대한 이윤신의 고민들
유 : 이번 전시에서 이윤신의 작업에 대한 특징을 4가지로 구체화 시켰다. ‘일상의 생활자기’, ‘수공의 가치’, ‘생활도자의 예술화’, ‘전통의 현대화’ 가 그것이다. 이 분류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는가?
이 : 생활자기를 일상으로 만들었다는 해석에 대해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이 그것이다. 수공의 가치는 내가 그릇을 만들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중 하나다. 아무리 간단하고 합리적인 제작방법을 선택한다고 할지라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수공의 가치이다. 생활도자의 예술화는 내가 가진 조형적 요소에 대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좋아서 만들어놓은 그릇들에 대해 예술적이라는 해석을 붙여준 것 또한 감사하게 생각한다(웃음) 전통의 현대화는 이미 앞서 설명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유 : 유학에서 돌아온 후의 한국 화단의 모습은 오브제가 주를 이루었었다. 그 속에서 그릇을 만드는 것에 대한 태도는 흔하지 않은 결심이었다. 이러한 결심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나?
이 : 처음 시작할 때는 오히려 어떠한 갈등도 없었다. 차라리 확신에 차서 시작을 했다. “이 의미를 누군가는 알아주겠지”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수공의 가치나 도자식기의 생활화 같은 내 의지 말이다. 그런 기대가 없었으면 아마 의욕도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시작을 하고 조금씩 알려지며 도예나 미술계 안에서 갈등이 생기더라. 작가로서 누구나 하게 되는 자아에 대한 갈등만이 다가 아니었다. 오브제가 아닌 그릇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의아한 물음이 들려올 때 마다 “내가 과연 이 일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 : 현재의 ‘이도’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다는 것인가?
이 : 그렇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는 이렇게 25년 동안 하게 되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도 지금 이렇게 세상에 알려진 상황이 더 빨리 오거나 아예 오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수공의 가치나 아름다운 도자그릇에 대한 관심의 순간을 말하는 것이다. 이 그릇들로 이렇게 전시를 할 수 있다는 것, 이도의 현재와 같은 규모 모두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목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늘 도예라는 것이 중심이 되어서 이슈를 만들어 내는 순간에 내가 함께하고 싶은 것이 그것이었다. 모든 것이 아주 천천히 변하더라. 굉장히 자연스럽게 말이다. 이것은 결국 시대의 흐름, 말하자면 문화, 환경, 트렌드, 사람들의 인식 등 전체적인 사회전반의 모습에 대한 변화의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잘 버텨냈다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환원還元」, 도자, 2013, 가변설치 <1번 전시실>
그릇과 파편들로 그릇의 모양을 형상화 한 설치작품
유 : 이번에는 다양한 조형예술의 경계에 서 있는 이윤신에 대한 물음이다. 순수예술과 공예, 디자인과 공예 등 이윤신의 작품을 논하는 것에 있어서 이러한 해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본인은 이러한 해석이 형태적 조형미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이 : 사실 나는 스스로 그런 것을 의식해서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이것이 오브제다 뭐다 규정지어 출발한 적도 없거니와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자연스럽게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을 만들었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만들어진 다음에 분류되고 규정지어지듯 그런 것일 뿐 딱히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나는 항상 내 감각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있다. 또한 하나의 상품으로 다듬고 완성시키는 노력에 대한 자신감도 있다. 그 정도 뿐이다. 누군가의 해석에 대한 의식 없이 만들어내기 때문에 나를 어떻게 정의 하는가에 대해 별다른 관심은 없다.
유 : 빚어내는 그릇들에 대해 제품 혹은 상품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처음 이러한 표현방식을 들었을 때 적잖이 놀랐다. 스스로를 예술가로 분류시키고자 노력하는 다른 이들의 사례를 수 없이 봐왔으며, 도예가 이윤신이라는 호칭이 매우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 : 예술가로서의 입장 자체는 그릇을 시작하면서 이미 버렸다.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 해 본 적이 없다. 예술가라는 의식 자체가 없었다. 그냥 사람들이 불렀다. 그건 하나의 명칭일 뿐이지 아무 의미도 나에게는 없었다. 내가 만든 것이 ‘좀 더 다른 특별한 무엇’ 이라는 것은 내 의식 속에 없다. 항상 제품 혹은 상품이라고 표현을 한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예술가란, 세상에 없는 유니크하고 특별한 존재로서의 무엇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평생 만들어온 그릇이라는 것은 영장류가 흙을 불에 구워내는 것을 발견 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계속 존재했다. 그렇다고 기능이 변한 것도 아니다. 나는 이러한 그릇을 나만의 해석으로 현대화 하는 것 뿐 이다. 다시 한번 말 하지만, 나는 좀 더 간결한 방법들을 통해 제품을 만들고 상품을 만들어 낸다.
유 : 누군가는 이윤신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작가적 진정성을 거론한다. 앞선 물음에 대한 답변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예술가로서의 이윤신, 도예가로서의 이윤신으로의 정의와 그것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이 : 나는 도예의 기술적인 면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한다. 내가 직접 프로토타입prototype을 만들고, 숙련된 기술들이 그것을 그대로 빚어내는 공정은 내 그릇의 생명이다. 만들어낸 손이 누가 되었건 디자인을 누가 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하다. 나만의 멋을 담은 내 그릇을 내가 디자인 한다. 이것을 어찌 내 그릇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나 스스로를 디자이너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그렇게 불리고 싶다.
유 : 어찌되었건 이미 이윤신은 한국의 현대생활도자 1세대로 존재하고 있다.
이 : 나와 그릇을 함께 시작했던 사람들이 나처럼 오랫동안 한 길만을 걸어오지는 못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스스로 자부심을 크게 가지고 있다. 급진적이지는 않으나 생활도자분야의 변화가 많이 느껴진다. 세대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스테인레스와 플라스틱 식기만이 차지하던 식탁의 풍경을 바꾸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해 왔다. 귀하게 만든 그릇을 귀하게 여길줄 아는 것은 그릇을 아끼자는 것이 아니라, 삶을 귀하게 여기는 태도를 만들어가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내 그릇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그것이다. 이러한 내 메시지들이 고급화된 브랜드로서의 이도의 이미지와 결합되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것에 자긍심과 책임감 그리고 감사함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나를 선두로 제2, 제3의 이도가 생겨나 서로 좋은 시너지를 주고 받으며 한국 도자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미래를 생각하며 나는 도자 뿐 아니라 다른 소재를 사용한 생활 속 또 다른 쓸모 있는 것들에 대한 고민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