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자재단 선정 중견작가전 - ‘명품 프로포즈전’을 기획하며
2012.6.22~12.30 이천 세라피아 창조센터
|이홍원 한국도자재단 전시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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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예는 지금
60년대 전쟁의 상흔을 수습하기도 바빴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우리의 도자문화와 기술도 되찾기 힘든 암울한 시절, 도자기陶瓷器란 ‘사기그릇’, ‘질그릇’, ‘병’, ‘항아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게다가 겨우 장작가마 소성에 의존해서 구전해 오던 방법대로 빚고 장식하던 때였다. 그 때, 일부 선각자들의 손길은 외롭게 서양의 자유분방한 표현 방법을 우리의 흙에 녹여 넣기 시작했고, 일부는 빼앗기고 사라진 기술을 되찾으려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70년대 말, 80년대에 와서 대학교육이 본격화되고 해외유학파와 초기 선구자들의 후예들이 속속 배출되면서 조형도자의 불씨는 급속도로 번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전승도자 또한 국 내·외(주로 일본)수요가 늘어나면서 한 때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이후 지금까지 경제 상황과 맞물려 다시 내리막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더군다나 순수 조형도자를 작업해온 작가들은 그것을 업으로 삼고 버텨내기가 버거웠다. 이런 침체된 분위기는 계속되는 경제 공황의 터널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도예계가 힘든 이유는 그 첫 번째가 우리나라 국민들의 문화의식 수준과 마인드이다. 플라스틱과 스테인 용기에 길들여진 일반인들의 눈엔 도자기란 비싸고 깨지기 쉬우며, 무거운 용기用器일 뿐이다. 웰빙 바람이 불면서, 그리고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조금씩 도자기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그것도 대형 기업에서 대량생산한 용기에 더 익숙해져 있으며, 그나마도 중국의 가격 경쟁에 밀려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있다. 손 맛 나는 스튜디오 생산 도자기는 일부 고객층이 도자기 축제를 통해서 구매하는 정도다. 물론 수요가 예전 보다는 증가추세이어서 다행스런 일이긴 하다.
순수조형도자는 더욱 막막하다. 단지 흙으로 만든 작품일 뿐인데, ‘도자’라는 이유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도자’ 위상의 문제다. 왜일까? 조형도자는 명백히 순수예술로 인식되어야하며, 그 제작과정 또한 다른 장르의 조형작품 이상으로 지난한 것이 사실인데 말이다. 조형도자의 역사가 짧은 탓에 대학교육에서조차 작품 본질에 관한 교육보다는 제작 ‘기술’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이 문제는 결국 작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도자예술의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뒷받침해 주고, 비평해 줄 전문가와 아트비즈니스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도자예술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고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2001년 이후 우리나라가 세계현대도자를 한 곳에 모으는 국제비엔날레를 통해 한국의 현대도자는 비약적 발전을 이루고 있다.
우리의 도자는 어디로
그러면 우리의 도자기는 앞으로 어디로 가야하나? 이미 국내에서 중국산 도자기가 가격경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디자인과 품질 싸움이다. 값싼 상품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보다 나은 제품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소비자의 눈은 조금씩 높아져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산 도자기가 값싼 도자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문에 의해 저렴한 도자기가 들어온 것일 뿐이다. 질 좋고 비싼 도자기가 시장의 파이를 키워갈 것은 뻔한 일이다. 더군다나 질 좋고 값이 싸다면 그 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확실한 차별화를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18세기 산업혁명과 더불어 ‘사진기’의 발명이 순수 회화를 위협했듯이 대량 생산력은 일품 공예에 가히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빛과 순간의 움직임을 포착해서 형상을 그려냈던 ‘인상파’ 그림이 그 예술의 가치를 지켜냈듯이 도자기도 기계가 따라 할 수 없는 유니크함과 손맛으로 승부수를 걸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강도剛度와 무게를 해결하는 것이 숙제다.
순수조형도자 또한 끊임없이 영역을 확장해 가면서 순수예술의 한 분야로 온전히 자리매김 해야 한다. 건축분야로의 도전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타 장르와 소재를 융합하는 능력을 꾸준히 키워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대 미술을 따라가기 보다는 리드하려는 과감한 시도들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타 장르예술과 모든 현대 미술의 방법들을 재료로 받아들이고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흙’이라는 제한된 재료로 현대 조형을 논하기엔 이 시대의 문화 조류가 너무 거세기 때문이다. 일부 보수적인 시각으로는 ‘도자와 흙의 본질을 차분히 탐구하기 전에 현 트랜드에 너무 가볍게 편승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도 있지만, 응용과학이 발전한다고 해서 순수 기초과학이 낙후되지는 않는다. 또한, 타 분야의 학문이 접목된다고 해서 본질이 흐려지진 않는다.
현대가 요구하는 장식성과 독특한 도자만의 맛을 강조한 장신구 분야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개척지다. ‘명품’을 요구하는 이 때, 장식품과 장신구의 개발은 더 없이 좋은 기회다. 또한 금속을 비롯한 목공예, 섬유공예가 함께 어우러진다면 새로운 개척지를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제안들은 모두 ‘유니크함’을 전제로 한 새로운 도전과 시도들이다. 소극적 입장이 아닌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문화를 선도하자는 취지이며, 우리나라 문화적 수준을 한 층 업그레이드하자는 차원의 얘기다.
이번 전시에 초대된 중견작가들은
이번 전시에 초대된 열여덟 명의 작가들은 위에서 밝힌 현대도자의 산 증인들이면서 성공한 개척자들이다. 70~90년대 한국현대도예를 이끌어 갔던 1세대들은 그래도 주목을 받은 세대다. 하지만 바로 다음의 1.5세대라 할 만한 지금의 중견작가들(평균 50~60세)은 실제 우리나라의 현대도자를 구축한 주역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조명 받을 기회가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유는 선배들이 항상 먼저 소개되고 조명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미덕인 시대를 살아왔다. 또 하나의 이유는 90년대 중반 IMF이후에 화랑들은 가격 경쟁력에서 유리한 젊은 신진작가들을 마치 유행처럼 소개하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도자재단에서는 한국의 대표 작가로서의 역량을 갖춘 작가들이지만 그들의 노력과 역량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았던 한국을 대표할 만한 작가들을 집중 조명하고자 한다.
한국도자재단이 발족한 후 12년간 재단은 지속적으로 작가들의 행보를 주시해 오면서, 그 사이 묵묵히 힘들게 걸어온 그들의 노력과 도전에 응원을 보내왔다. 그들은 후배 작가들의 롤모델이고, 희망이다. 이유는 순수 조형도자 작가이건, 전통도자 작가이건 간에 자신들의 작품을 판매해서 작업을 지속해 가고 있고, 끝없이 새로운 도전을 거듭해가는 작가들이기 때문이다. 진정 ‘프로 작가상’인 것이다. 이들은 오로지 자신이 가는 길이 ‘길’이라 믿고 걸어온 작가들이며, 혹독한 자기비판 의식으로 지금의 작품을 만든 작가들이다. 애써 ‘명품’, ‘명작’이라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들 인정하는 작가들이다. 물론 공간의 제한적 한계로 더 소개하지 못한 훌륭한 작가들이 있음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현대도자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할 것이며, 국내·외 모든 도자 작가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또한 한국 현대도자의 위상과 ‘한국적인 현대도자의 색’이 과연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 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전시 이후 바로 다음 세대의 작가들을 재조명하는 전시가 기획될 것이며, 계속해서 신진작가들의 전시로 이어갈 계획이다. 이 일은 한국현대도자 흐름을 정리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도자재단은 이를 가능케 해준 열여덟 명의 초대 작가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