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욱재 <The Grey Forest>전
공간의 이중성에 나타난 생태학적 성찰
2012.9.5~9.11 서울 토포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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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예술은 각 장르 간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형성되는 관계 속에서 예술의 표현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매년 열리는 수많은 전시들 중에서 회화, 조각, 사진, 영상 등이 복합적으로 활용된 전시와 작품을 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현대도예도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다. 현대도예 또한 다른 장르의 예술형식들과 본격적으로 조우하면서 그 조형적 가능성을 새로운 관점에서 모색하고 있다. 이는 예술로서의 도자가 전통적인 기능성의 제약성을 예술적 오브제의 개방성으로 변용시키고 있는 상황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도 이러한 컨템포러리 아트로서의 도자의 상황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언급만으로 이번 전시에 나타난 조형언어의 함의를 읽어내는 데 충분한 것이 아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실상 작가 맹욱재는 이번 전시에서 도자라는 형식적 범주의 가능성을 모색하기보다는 공간의 연출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다양한 예술 장르들이 교차되고, 중첩되는 과정과 이를 통해 환기되는 공간의 미학을 보여준다. 설치된 개별적인 작품의 조형미는 연출된 공간의 관계성에서 파악되기에, 전시장에 들어서는 관람자는 이내 이러한 관계성을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두운 배경으로 조성된 전시장에 동물 두상들은 여러 방식으로 설치되어 있는데, 좌대 위에 놓여 있기도 하고 벽면에 부착되어 있기도 하다. 특히 여러 개의 천으로 구획되어 만들어진 통로에는 무채색의 동물 두상들이 높이를 달리한 채 매달려 있다. 이러한 공간의 풍경은 소리와 영상으로 더욱 극대화된다. 이제 관람자는 작가가 이 연출된 공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함의를 그리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과 자연 그리고 문명에 대한 생태학적 성찰이다.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공간에 대한 생태학적 성찰을 단일한 방식이 아니라 이중적인 방식으로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이중적인 방식은 생태에 관한 교훈적이고 계몽적인 주제 의식에서 벗어나 관람자들 스스로 도시 공간과 자연 생태의 관계성을 자유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성찰의 계기를 부여하는 데 효과적이다. 다양한 이중성이 엿보이고 있지만, 여기서 몇 가지만 언급해 보자. 우선 동물 두상과 배경에 있는 줄무늬 패턴이다. 이 패턴은 동물들이 애당초 지녔던 것으로 오해될 수 있지만, 실상 인위적으로 부여된 것이다. 그러기에 이 패턴은 인간이 자연에 가한 폭력의 흔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음으로 동물 두상의 뿔을 보자. 뿔은 한편으로 동물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이로 인해 인간의 소유욕망의 희생물이 되기도 한다. 작품에서 강조된 뿔은 이러한 이중성을 조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각기 다른 높이의 줄에 매달려 있는 동물 두상들 사이를 지나가다보면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미묘한 이중적인 느낌을 받는다. 한때 자연에서 자유롭게 뛰놀던 동물들이 마치 도시의 어느 거리에서 본래의 생명력과 생동감을 상실한 채 박제화되어 진열되어 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시장의 소리와 영상은 자연과 기계 문명의 이중적인 상황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도자, 조각, 소리, 영상 등을 복합적으로 구성하여 설치, 연출한 이번 전시의 특징은 인간, 자연 그리고 문명의 관계라는 주제를 이중적 메타포를 사용해서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도시 공간 속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 현실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상 그 현실은 순응이 강요된 공간이며, 억지스럽게 화해되고 조화된 공간의 현실에 불과하다. 자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연이란 알고 보면 문명에 의해 조정되거나 심지어 조작된 자연인 것이다. 실상 순수한 자연이란 허상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게르노트 뵈메Gernot Böhme는 현실적으로 자연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자연”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물론 뵈메의 이 말을 자연의 고유성과 그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이러한 언급은 역설적으로 자연과 생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자연의 원래 상태를 동경하는 것만으로 생태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의 자연이 사회, 문화적으로 구성된 자연이며, 또한 그 사실을 현실적으로 인정할 때에 비로소 자연과 생태에 대한 진정한 성찰이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작가 맹욱재 또한 이번 전시를 통해 이 점을 명확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임성훈 미학, 모란미술관 학예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