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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2월호 | 전시토픽 ]

조정현 & 홍순정 도예2인전
  • 편집부
  • 등록 2013-03-06 10:04:27
  • 수정 2013-03-07 09:4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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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흙으로 사랑을 빚어 서로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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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현 & 홍순정 도예2인전

Chunghyun Cho & Soonjung Hong Ceranic Duo Exhibition

흙으로 사랑을 빚어 서로를 품다

2012.10.24~10.29 서울 목인갤러리

|이주헌 미술평론가

 

 

태초에 그릇이 있었다. 만물이 그 그릇에서 비롯됐다. 그릇은 곧 하느님이었다. 하느님을 이처럼 그릇으로 칭하는게 어떤 신앙인에게는 매우 불경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하느님이 그릇이 아니라면 과연 다른 무엇이 그릇일 수 있을까? 모든 인간은 어머니라는 그릇, 자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지상만물은 지구라는 그릇으로부터 생성됐다. 우주는 지구를 포함해 모든 것을 품은 큰 그릇이다. 신은 그 모든 것을 탄생시킨 가장 근원적인 그릇인 것이다. 그래서 그릇을 쓸 때마다 우리는 푸근함과 따뜻함, 경건함을 느낀다. 그릇은 스스로를 비워 새 생명을 채운다. 밥을 떠먹으며 물을 마시며 우리는 그릇이 있어서 이렇듯 보호받고 사랑받고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 나아가 우리 또한 후세를 위한, 이웃과 공동체를 위한 진정한 그릇이 되고자 마음을 다잡게 된다. 그런 점에서 그릇을 만드는 이는 그릇을 쓰는 이보다 신의 마음 혹은 어머니의 마음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 있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릇을 만든다는 것은 그 자체로 족한 물건이 아니라 스스로 타자를 품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신의 마음이 없다면 어머니의 마음이 없다면 결코 그릇 다운 그릇은 만들어질 수 없다. 조정현, 홍순정 모녀 도예가의 2인 전은 그런 점에서 도예의 진정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되돌아보게 하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마음과 딸의 마음이 오가고 흙으로 사랑을 빚어 서로를 품었기 때문이다.

조정현은 우리나라 현대도예의 1세대로 옹기에 상감기법을 도입한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여 왔다. 스스로를 예술가라기보다 공예가라고 생각하는 그는 늘 도자의 본령에 충실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는 청자나 백자도 한 시대를 풍미한 지류이지, 우리 도자사와 시종을 함께 함께 해 온 주류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우리 도자사의 진정한 주류는 옹기였다. 제기, 식기 등에서 그 초기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옹기는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껏 뚝배기 등의 그릇으로 우리 생활에 쓰이고 있다. 유구한 세월동안 민중의 삶을 떠 받쳐온 그릇인 만큼 옹기는 그릇 중의 그릇이라 할 수 있다. 옹기는 담백하고 수더분하다. 옹기는 진솔하고 따사롭다. 어려운 살림을 맡아 꿋꿋이 가정을 지켜내고 자녀를 양육한 배달의 어머니, 그 어머니가 지닌 성정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옹기는 한국의 어머니이며 한국의 어머니는 옹기다. 그런 저류의 정서와 기운이 조정현의 옹기에는 선연히 흐르고 있다. 그래서 볼 수록 따사롭다. 우리 ㅎ녀대도예의 1세대가 얻은 성취가 이처럼 따뜻하다는게 무척이나 고맙다. 현대도예라 하면 전통으로부터의 이탈과 파괴가 먼저 떠오르는 법인데 조정현은 오히려 우리의 근원으로 돌아가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데 열정을 쏟아 부었다.

홍순정의 출품작은, 두 살 때부터 최근까지의 기억을 반영하는 사물들을 슬립에 담다 구워 만들거나 석고로 실제 사물의 틀을 떠서 흙으로 구워 만든 것이다. 이렇듯 소성의 과정을 거치면 원재료는 대부분 다 타서 사라지고 만다. 이를테면 두 살 때 갖고 놀던 곰 인형을 슬립에 담가 굽게 되면 도자로 된 곰 형상은 남아도 곰 인형 자체가 소각되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인형은 사라졌지만 추억과 사랑, 그리움의 표정은 영원한 이미지로 남는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홍순정의 작품은 곰 인형 외에도 벌집, 색연필, 연필, 카세트테이프, 머플러, 장갑, 수영복, 레이스, 크레커, 밤 과자, 바나나, 수세미 등 매우 다양하다. 어찌 그러하지 않을까. 기억의 편린들은 갖가지 사물에 걸쳐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대상들 앞에서 어머니와 딸은 새록새록 떠오르는 옛 기억들을 더듬으며 잔잔한 감회에 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홍순정의 작품은 일반적인 그릇의 형태를 띠고 있지 않다. 일반적인 그릇의 용도로 쓸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도자 곰 속에는 실제 곰 인형이 있었다. 그의 도자 벌집 속에는 진짜 법집이 있었다. 그것들이 불의 작용으로 사라지면서 그의 작품도 속이 빈 그릇의 본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 빈 공간에 들어차 있는 것은 결곡 홍순정의 옛 기억이다. 곰 인형은 사라졌지만 곰 인형에 대한 기억은 도자라는 몸을 입고 이제 영원히 남게 되었다. 그렇게 그의 작품도 또 하나의 그릇이 되었다.

설령 물리적인 물건을 담을 수 있든 그렇지 않든 도자는 본질적으로 스스로를 넘어 다른 가치를 품고 날라주는 매개물이다. 그릇의 운명이 그렇고 흙의 운명이 그렇다. 흙은 온갖 식물과 동물을 비롯해 인간을 세상으로 나르고, 다시 그들을 저세상으로 나른다. 도대체 흙으로 매개되지 않는 사물이 이 우주 안에 존재하기나 하던가. 두 모녀의 도자는 우리로 하여금 만물은 유전하며 그 사이에 흙이 있음을 새삼 일깨워준다. 어머니의 사랑도 흙에서 피어났고 딸의 사랑도 흙으로 스며든다. 흙이 있어 우리는 사랑과 꿈과 희망을 자자손손 영원히 실어 나른다. 볼수록 흙을, 도자예술의 근원적인 아름다움을 예찬하게 만드는 모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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