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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1월호 | 전시토픽 ]

Onggi@Korea 한국의 옹기
  • 편집부
  • 등록 2011-03-03 12:09:54
  • 수정 2011-03-03 12:5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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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30~2011. 2.28 경기도자박물관
| 이은실 경기도자박물관 학예연구사

 

‘옹기甕器’란 이름은 본래 크기가 큰 저장용 항아리를 뜻하는 글자 ‘옹甕, 瓮’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이후 ‘잿물을 입힌 도기’의 의미가 더해져 지금은 물이나 술과 같은 액체, 김치나 된장, 고추장과 같은 발효식품류의 저장을 위해 사용되는 용기로 유약이 시유된 도기류를 모두 일컫는다.
옹기라는 말을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명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삼국시대 토기 항아리에 ‘옹瓮’자를 표기한 예가 몇 점 남아 있으며, 고려시대 문헌인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1124)에도 ‘대옹大瓮’, ‘수옹水瓮’ 등이 언급되어 있다. 특히 현재 사용되는 ‘옹기甕器’란 용어는 조선 초 1444년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물이나 술을 담는 큰 항아리의 명칭으로서 처음 등장하였고 조선후기까지도 ‘옹기甕器’와 ‘옹瓮’은 같은 의미로 혼용되었다.
 ‘옹瓮’ 대신 ‘옹기甕器’라는 명칭이 완전히 정착된 것은 조선 말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특히 19세기 말 개항장 풍속을 그린 풍속화가 김준근의 「기산풍속도첩箕山風俗圖帖」에는 ‘옹기장사’, ‘옹긔도부쟝사’와 같은 한글표제와 함께 다양한 옹기를 유통·판매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어 당시 ‘옹기’라는 명칭이 일반화되어 사용되고 있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점토를 쌓아 올리고 잿물을 입혀 구운 옹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도자기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박물관은 물론 일반에서도 옹기에 대한 관심은 미약했는데, 이는 청자나 분청, 백자에 비해 옹기가 지닌 전통성이나 기술적·미적 가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을 뿐 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체계적인 조사·연구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의 삶과 친숙했던 옹기는 60~70년대 값싼 플라스틱과 양은, 스테인레스 용기가 다량으로 보급되고, 아파트와 같은 주거환경이 변화되면서 그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수요자가 없어진 옹기점들은 하나둘 씩 문을 닫을 처지에 내몰렸지만, 90년대부터는 미약하게나마 국가와 옹기장인들에 의해 전통옹기의 계승과 보존을 위한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즉, 국가는 옹기장들의 기능을 보전하기 위한 무형문화재 선정을 추진하고 옹기장들은 2~3세대로 가업을 계승하여 전통기술과 정신적 가치를 계승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또한 대학출신의 작가들은 전통옹기에 대한 이해와 연구를 바탕으로 현대화된 옹기를 제작하며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그 결과 숨 쉬는 전통옹기의 과학적 보존기능이 널리 알려지고 옹기가 주는 친숙하고 질박한 멋에 대한 이해가 커지면서 지금의 옹기는 웰빙 트렌드에 걸맞는 전통용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오늘날 다변화된 도자 속에서 옹기는 전통의 힘을 드러낼 자리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발달된 사회일수록 전통은 중요시되고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는 더욱 절실해지기 마련이다. 옹기의 역사와 예술, 실용적 가치에 대한 환기를 통해 인식이 변화되고 전통옹기와 현대의 소통이 복구될 때 옹기는 그 이름만큼 크고 오랜 전통의 숨결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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