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린 도예전
밀담密談
2010.2.24~3.9 서울 통인화랑
오묘한 인간의 감정을 언어나 이미지로 온전히 전달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질투와 욕망, 그리고 편안함과 행복함이 있는가하면 절망과 고통스러운 감정도 짧지 않은 우리의 생을 교차하고 가로지른다. 영혼을 울리고 맑은 종소리를 내기도 하고 파도처럼 거세게 몰아치기도 한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는 도예작가 이하린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형언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이 펼쳐진다. 인간의 감정 중에서도 ‘사랑’이라는 지극히 통석적인 드라마의 보편적인 주제는 작가의 작품에서 큰 맥을 차지하고 있다. 죽음과도 같은 사랑이 있는가 하면 온유한 사랑도 있을 것이고 그런가 하면 이루지 못할 사랑을 하는 사람도 있고 용납하지 못할 사랑에 괴로운 사람도 있다. 작가의 작품을 장식하는 나비와 꽃들은 탐욕스럽거나 순수하거나 그러한 사람과 욕망을 환유하고 이 환유는 섬짓하도록 강렬하게 시각을 자극한다. 이는 푸르스름한 백색의 차가운 질감과 어우러지고 무언가를 응시하는 검은 눈동자와 함께 기묘한 느낌을 발산한다. 작가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은 아름다움이다. 그렇기에 그는 그의 작품들이 한눈에 찬탄을 자아낼 수 있는 아름다움으로 보는 사람들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들에서 인물들은 죽음과 삶, 남성과 여성, 그리고 서양과 동양의 어느 한쪽이 아닌 이쪽과 저쪽을 넘나드는 형상을 추구한다. 어떻게 보면 음산하며 괴이하게 보이기도 하는 인물들의 형상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시각이 가질 수 있는 극치의 신비한 미감을 포착해 내고자 한다. 흑단처럼 검은 빛 위에 푸르스름하게 흰 인물이 두 손에 잡고 입술에 물고 있는 붉은 종이는 옛날 립스틱 대용으로 여인들이 입술을 붉게 물들일 때 사용했던 연지구이다. 그가 인물의 입술을 이토록 붉은 색채로 채색하고 화장한 모습, 그리고 화장하는 장면의 표현, 혹은 극도로 장식된 머리모양을 표현해 낸 것은 인간이 치장을 한다는 것은 아름답고자 하는 욕구이며 이는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강한 미의 열망과 더불어 사랑을 하는 이의 설레임으로 가득히 담은 것이다. 자연 그대로가 아닌 인공미, 인간의 힘으로 다듬어진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이며 또한 인간 내면의 욕구를 내포한 것이다. 흙과 물이 고온의 불과 만나 뜨거운 불길을 모두 받아들이고 푸르스름한 비색을 머금은 백색의 결정체로 다시 태어났다. 이 결정체는 작가의 손길로 치장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과 인공의 합일이다. 그의 도예작품은 인간과 그가 가진 창조의 힘, 그리고 사랑의 예찬이며 예술의 예찬이다. 원초적 아름다움을 다듬는 이 힘은 불길 속에서 심연의 혼을 끌어올리는 소산이다.
윌리엄 모리스는 패턴으로 생겨난 장식성이 총체적 예술을 낳는 근원이고 예술에 영감을 불어넣는 모티브라고 했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구스타브 클림트의 아르누보를 모티브로 하는 화려한 식물의 장식이나 화폭에 펼쳐지는 현란한 금박과 은박이 보는 이를 사로잡으며 다가오듯, 작가는 윌리엄 모리스의 패턴과 클림트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금색 창연한 장식을 다름 아닌 그토록 찬란하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다시 태어난 도예작품에 입힌다. 탐닉과 퇴폐, 쾌락과 그 파멸도 시리도록 차가운 색채 위에 머금은 미소는 말해주고 있다.
김성은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