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 도예전 2002. 7. 5 ~ 7. 11 롯데화랑 부산점
흙과 불과 물과 구름
글/이사리 도예가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오래된 돌절구, 혹은 절간 안마당 한구석의 돌 물통을 보는 듯한 친숙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경희의 그릇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그릇이라는 것에 기대하는 그런 가볍고 기능에 충실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이경희의 이번 작품전은 초기부터 꾸준히 추구해오던 구름 기둥이라는 주제의 연속선상에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크게 두가지의, 주제에 대한 다른 접근방법을 만날 수 있다. 첫 번째는 몇 년 전부터 이경희가 관심을 기울여 오던 그릇으로서의 구름이다.
이 기물들은 작은 화병만 한 크기에서부터 지름이 대략 70-80㎝에 이르는 크기까지 약 30여 점이 있다. 섬세하고 세련된 형태나 화려한 유약보다, 뭉툭하고 투박한 그래서 그 무게가 더욱 육중하게 느껴지는 거칠고 자연스러운 절제된 손놀림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이경희의 그릇에서 느껴지는 친숙한 분위기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전시장을 돌며 하나 하나 작품을 만져가며 감상하게 한다. 거친 흙과 매끄러운 유약 그리고 안에 담긴 차가운 물은 넘치거나 과장되지 않는 이경희의 도자와 그녀가 추구하는 구름기둥이라는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주제가 어떻게 물질화 되어 나타났는지 확인 시켜 준다. 기들이 전시장 전체에 입체적으로 배치되어 관람자로 하여금 작품사이를 산책하듯 거닐게 하는 데 반해 대비되는 접근 방법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작품들이 있다. 4면의 벽면을 따라 설치된 대략 20㎝ 크기의 수십 개의 도자 조형물들은 관람자의 자유로운 접근과 상호 작용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다른 작가의 시각을 보여준다. 기의 안정적인 색채와 자유로운 형태, 입체적인 설치등을 통해 재료의 자연미와 함께 구름의 부정형성을 표현하려했다면, 벽면 설치 작품들은 무채색(흰색 아니면 검은색)에 석고 캐스팅으로 작업해 정형적이다.
이런 정형화된 구름의 이미지는 마치 지도의 위도와 경도처럼 정확하게 계산되어 그려진 그리드(grid)위에 배치된 구름 작품에서 그 의도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만질 수도 없고 가까이 할 수도 없는 구름의 이미지가 흰색의 벽과 흰색의 도자 표면을 통해 마치 신기루처럼 희미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접근은 작가가 추구하는 구름이라는 주제의 물질적인 표현과 함께 정신적인 방향의 제시도 동시에 시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이경희의 구름은 도자가 가지는 시각적 혹은 물질적 특성을 통해 해석되어지는 자연의 현상이자 작가 자신의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