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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08월호 | 전시리뷰 ]

신상호 개인전 ‘아프리카의 꿈´ 2002. 6.20 ~ 7. 7 갤러리현대
  • 편집부
  • 등록 2003-07-11 14:29:03
  • 수정 2018-02-19 11: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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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호 개인전 ‘아프리카의 꿈´ 2002. 6.20 ~ 7. 7 갤러리현대

생명의 근원을 향한 끊임없는 귀향의 의지

글/임두빈 미술평론가, 한국미학미술사연구소장

 신상호의 최근 작품들은 온통 동물들의 형상으로 가득 차 있다. 작업장과 전시장에 가득 찬 동물 형상의 세라믹 작품들은 이상한 주술에 걸린 존재들처럼 원시적 분위기에 휘감긴 채 관람자를 쏘아보고 있었다. 동물 형상의 작품에 붙어 있는 눈은 동물의 눈처럼 느껴지지 않고 마치 의식행위(儀式行爲)의 몰아경(沒我境) 속에 빠져 있는 주술사(呪術師)의 눈처럼 느껴졌다. 아프리카의 암벽에 그려져 있는 원시 벽화들을 보면, 소나 양들 사이에 춤추는 듯한 모습의 사람 형상도 보인다. 이 벽화의 형상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하는 점은 최근까지도 수수께끼였다.

 그러다가 최근에 몇 명의 연구자들에 의해 매우 설득력 있는 해석이 도출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원시적인 풍습을 유지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한 부족은 일정한 의식행위를 할 때 부족의 추장이 주술적 몰입에 의한 엑스터시(ecstasy)상태 속에서 특정한 동물과 하나가 된 듯한 신비적 체험을 한다고 한다. 그들은 밤에 불을 피워놓고 그 불 주위를 둥글게 돌면서 동물의 영혼과 하나가 되는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동물의 영혼과 일체화 된 추장이자 주술사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힘을 지니게 되어 평소에는 해결할 수 없었던 부족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것이다.아프리카의 암벽에 그려진 동물과 인간 형상의 벽화들은 바로 동물의 영혼과 하나가 된 주술사의 의식행위를 표현하고 있는 그림으로 생각되고 있다. 작가 신상호도 아프리카의 동물들을 보면 무언가 모를 친근감과 친연성을 느낀다고 했다. 아프리카는 신상호에게 고향과 같은 편안함과 따뜻함을 주는 곳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특히 수많은 동물들의 움직임과 삶의 모습들은 그의 마음을 알 수 없는 힘으로 휘어잡았던 것이다.

 마치 그 자신이 먼 옛날 천진한 동물이었던 것처럼 아프리카의 동물들은 거부할 수 없는 마력으로 그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작가 신상호가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마다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 것도, 아프리카의 자연은 아직도 생명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명의 순수함이야말로 인간존재의 영원한 고향이니까 말이다. 신상호의 아프리카 사랑은 거의 본능적인 것이다. 그의 의식이 제도권 속에 안주하면 안주할수록 그의 무의식적 본능은 끊임없이 그로부터의 탈출과 해방을 꿈꾸었고, 1981년에 그가 아프리카의 자연을 처음 대면했을 때, 신상호는 그의 무의식적 본능이 염원했던 이상의 대지, 영혼의 고향을 구체적으로 발견한 듯한 충격적인 기쁨을 맛보았다. 마치 폴 고갱 (P. Gauguin)이 타히티를 가보고 생명의 순수한 환희를 느꼈듯이, 신상호는 아프리카의 자연에서 생명의 때묻지 않은 숨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그 후 신상호의 작품에는 알게 모르게 작품의 일부에서 항상 아프리카적 요소가 발견되고 있다.

 특히 1995년에 영국을 여행하면서 런던에서 열린 《아프리카 미술전》을 보았던 경험은 큰 감동으로 가슴 깊이 새겨져서, 두고두고 그의 작품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가 최근에 만든 동물 형상의 작품들을 보면, 마치 고대 신화시대의 주술적 동물을 연상하게 하는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아프리카의 초원을 질주하는 듯한 동물들의 형상도 보이고, 기하학적 구조체와 결합된 특이한 동물 모양의 작품도 보인다. 이들 도조작품에서 나는 원시적 토템신앙과 무의식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신상호의 아프리카 동물에 대한 깊은 애착을 느낀다. 그의 작품 중에서 동물의 머리를 하고 몸체는 마치 장승처럼 길쭉한 도조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그 촛점없는 무표정한 눈빛과 함께, 의식행위의 몰아경 속에서 동물의 영혼과 하나가 된 신들린 원시 주술사의 긴장된 떨림을 느낀다. 동물의 머리만을 살려놓고 그 외의 다른 부분들은 원통형의 수직적 흐름 속에 단순화 시켜 가두어 버린 조형적 처리는 작품에 심리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원통형의 몸체는 매끄럽게 되어 있지 않다. 신상호는 여기에 의도적으로 우툴두툴한 표면처리를 함으로써 보다 자연스런 효과를 내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표면처리는 빛을 산란시킴으로써 작품의 외부에 시각적 움직임을 가져오고 이와같은 빛의 움직임이 형태를 압축시켜 단순화한 작품에 긴장된 떨림을 부여하고 있다. 마치 주술에 걸려 동물의 영(靈)을 뒤집어 쓴 주술사의 긴장된 떨림처럼 말이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질주하는 동물 형상의 작품들은, 신상호가 아프리카에서 보았던 수많은 소떼들의 뛰어가는 움직임을 변형해서 형상화한 듯한 작품이다. 신상호는 수많은 동물들의 질주에서 건강한 삶의 역동성을 느꼈고 그 역동적 에너지를 조형의 세계를 통해 새롭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만든 질주하는 동물들은 현실의 대지를 질주하는 동물이라기 보다, 인간 내면의 근원적 욕망의 대지를 질주하는 꿈의 동물처럼 다가오고 있다. 나는 신상호가 최근에 제작한 기하학적 구조체와 동물 형상을 결합한 작품들도 관심을 갖고 보고 있다. 기하학적 조형미와 유기적 조형미(造形美)가 조화를 이룬 이들 작품은 사람들에게 독특한 메시지를 띄우고 있는 듯 하다. 기하학적 구조와 결합되어 있는 동물형상은 분명한 구체적 사실성을 지니지 않은 채, 모호한 형상으로 만들어져서 마치 생성단계의 미지의 동물과 같은 느낌을 준다. 여기에서 기하학적 구조체는 차가운 기계문명의 구조적 틀을 상징하고 있는 듯 하며, 생성과정의 유기적 동물 형상은 근원적 자연의 숨결을 상징하는 듯 하다.

 즉 신상호는 이 작품에서 차갑게 짜여진 기계문명의 틀 속에서도 생명의 근원적 힘을 살릴 수 있다고 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띄우고 있는 것이다. 신상호는 흙의 무한한 가능성을 신뢰하고 있는 도조작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아프리카의 동물들을 대상으로 할 때에도 대부분 분청사기의 색을 연상하게 하는 흰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그는 분청사기의 흰색에서 한국의 고유색을 보았고 그것에 매료되어 오랫동안 분청사기를 연구해 온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분청색을 주조로 하면서 그 위에 다양한 원색들이 작품의 일부분에 투명하게 칠해지곤 하는데, 이것은 회화적 요소와 조각적 요소를 결합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회화적 처리는 작품의 시각적 명랑성과 주목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 한국인의 심리 밑바닥에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다른 우리 고유의 보이지 않는 어떤 요소가 잠재해 있다. 논리적 언어의 영역을 넘어서는 이러한 요소는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 큰 힘을 발휘하며 각 시대마다 독창적인 미술문화를 창조해 왔던 것이다. 즉 전통이란 새롭게 창조하면서 형성해 나가야 할, 끊임없는 창조적 자유의 소산인 것이지 결코 과거의 것에 대한 수구적 태도에서 형성되어 갈 수는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조선시대의 도공이 고려시대의 청자를 모방하려고 했다면 결코 조선 특유의 백자는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각 시대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전통을 창조해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미술문화 전통이 진정으로 풍요로와 질 수가 있는 것이다. 신상호는 오래 전서부터 한국적인 것이란 이러이러한 것이다 라고 하는 이론적 규정을 거부해 온 사람이다. 그는 작가가 그 스스로의 내면에 충실할 때, 그리고 그 충실함 속에서 자기의 것을 찾아 표현해 나갈 때, 그 속에서 한국적인 것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신상호의 생각은 이제까지 그가 해 온 작업 속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특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그 자신의 내면이 시키는 대로 자유롭게 제작한 작품들은 한국의 현대 도예사에 새로우면서도 독특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도예계에서 신상호 만큼 강렬한 개성을 지닌 작가는 몇 명 되지않는다. 그는 다른 작가들과 구별된다는 점에서만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 그가 추구하고 있는 방향이 오늘의 사회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고 있는 절실한 시대적 요구사항과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사람이다. 신상호의 작품에서는 오늘날 후기산업사회의 현대인들이 까마득히 잃어버린 생명(生命)의 저 순수한 근원(根源)을 향한 끊임없는 귀향(歸鄕)의 의지가 용솟음치고 있는 것이다. (편집자주 : 편집사정으로 도록원문의 일부내용을 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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