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로 회고전 《무제 無題》
8. 5. ~8. 20. 아트 살롱 드 아씨 갤러리
이일로(李一魯, 1944–2020)의 회고전은 애초 그의 팔순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되었으나, 갑작스러운 부재 이후 3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유고전으로 전환되었다. 이번 전시는 가족이 주도한 아카이브 정리와 작품 선별 과정을 통해, 작가의 실험적 도자 세계를 재조명하는 동시에 한국 현대 도자의 전 환기를 다시 묻는 자리가 된다.

이일로(1944–2020)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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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일로 교수 작품전에 부쳐
나는 전공을 같이 한 대학 동기동창으로서, 이 교수와는 졸업 후 평생 동안 가끔씩 만나기도 하고 전화로 대화하던 친한 친구로, 작고한 후 사모님과 자녀들이 힘을 합쳐 아버지의 작품전을 열게 되어 기쁘게 생각 합니다.
이 교수의 작품은 초기에는 물레를 사용한 도자기 성형을 십여 년 넘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자기의 작품 개성을 찾기 위하여 점토판을 이용한 조형작업으로 바꾸어 대량생산이 아닌 자기만의 독특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디자인을 한 후 점토판을 만들고 잘라서 하나하나를 이어 붙여 형태를 만드는 작업으로 수분 건조 상태가 다르면 안 되는 작업으로, 작업이 시작되면 완성까지 몰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작업이었습니다. 작가의 끈질긴 노력과 혼과 집념이 만든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내가 물어보니 99개의 점토판을 이어 만든 작품을 만든 적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교수로서 제자들을 양성하기도 하였고, 문화센터에서 사회인들에게 교육하기도 하였고, 도예가회 임원으로 활동한 고 이일로 교수님의 전시회를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또한 이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갤러리 아트 살롱 드 아씨의 이혜숙 관장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양여자대학교 명예교수, 한 홍 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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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e B」 40×23×30cm | 1987 © 2024 LEEILRO
이일로의 궤적은 공업기술과 예술의 접합에서 출발한다. 경기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졸업하고, 은사의 권유와 가정적 배경 속에서 미술대학에 진학했다는 사실은 그의 예술관이 일찍부터 기술적 합리성과 물성 탐구에 기반했음을 시사한다. 대학 시절 물레 성형을 통해 기초를 닦았으나, 1970년대 중반 홍익공업전문대학에 부임한 이후 판 성형으로 전환하며 창작 도예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그의 작업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된다. 전승 도자와 실용도자가 중심이 된 기초기(1960~70년대 초반), 판성형을 도입해 구조적 실험에 몰두한 전환기(1977년 전후), 웨이브·비 대칭 구조, 건축적 긴장감, 고성古城을 연상시키는 질감으로 독창적 조형 언어를 확립한 성숙기(1980년대 이후).
작가는 생애 반복적으로 “도자기는 깨어지지 않는 한 영원 하다”라고 말하며, 불과 흙의 불가역적 만남을 예술적 영속성의 근거로 삼았다. 그는 애착과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불교적 사유를 창작 과정에 접목했다. “깨뜨리는 것부터 배워라. 욕심에서 해방되어라”는 언급은, 도예가의 태도를 단순한 제작기술을 넘어선 존재론적 성찰로 확장시킨다. 작품 대부분을 ‘무제 無題’로 명명한 점 또한 중요하다. 이는 관객 해석의 개방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작가 자신이 특정 기호나 의미를 강제하지 않으려는 태도였다. 무제는 결과적으로 그의 회고전 제목이 되었으며, 이는 작가론적 철학과 전시 전략이 일치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고독」 28×26×44cm | 1984 © 2024 LEEILRO
이일로의 작품은 전통적 도자의 기능적 차원을 넘어, 건축적 구조와 역학적 긴장감을 구현하는 데 주력한다. 판성형 으로 제작된 비대칭적·불균형적 형태는 불 속에서의 생존을 전제로 하며, 그 과정 자체가 일종의 실험이었다. 실제로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13점을 제작하고 12점을 폐기한 사례는 그의 집요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무제」 53×46×56cm | 1991 © 2024 LEEIL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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