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란형토기」 19×42cm와 「시루」 23.5×22.5cm
고려홍삼증삼기는 <지구촌 마을 시민성 학습>으로 도통리 중평마을 주민들과 열 번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구운 것이다. 중평마을은 천년의 숨으로 국가사적 제551호 진안도통리 청자요, 백 년의 흥으로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제7-8호 전라좌도 중평굿, 사람의 향으로 송계/동계/장학계가 있는 마을이다.
‘지구촌地球村’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던 것은 1980년대 초 경희대학교 교정에서였다. 그때 이 촌놈에게 ‘지구 + 촌 = 지구촌’이라는 말은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을 산다는 것은 말 그대로 지구촌이다. 여기 촌 중에서도 촌이랄 수 있지만 지금을 사는 삶은 지구를 붙들어야 하는 삶이지 싶어 마을 시민성으로 이 단어를 붙들기로 했다.
지난여름의 이야기를 보태자면 국방장관 후보 청문회 이야기다. 장군 출신인 야당의원과 방위병 출신 후보자의 투샷이 묘했다. 군정과 군령을 동시에 해야 하는 국방장관 역할을 병역 경력이 가벼운 사람이 할 수 있겠느냐는 야당과 병역 복무의 형태가 아니라 이해도와 철학이 중요한 시대로 문민통제 원칙을 실현하는 첫 순수 민간인 국방장관 상징성의 여당으로 대비되었다.

「취사의 고고학」
청문회를 보면서 이 사람도 방위병 출신이라 묘했다. 후보자와 같은 사단의 훈련소에서 비슷한 시기에 훈련을 받았다. 그때 구호가 “여기가 최전방이다. 여기서 초전박살!”이었다. 그때는 그 구호를 하라고 하니까 하고, 해야 하니까 했지만 ‘지구촌’이라는 말처럼 말이 아니었다. 훈련이 끝나갈 즈음 사단장(장군)의 당번병으로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하였다. 마침 사회문화잡지 『뿌리깊은나무』(1973), 03 창간호부터 1980, 08 폐간호까지 한 질을 구해서 보다가 입소를 하였는데 12·12 군사쿠데타 세력에 의해 폐간된 잡지이니 군부 독재 정부의 군부대 내에서는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 다. 아무튼 제안을 대단한 혜택처럼 말하는데 그 말도 요상하게 들리는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 짧은 14개월의 복무기간에도 여러 병과를 거쳤지만 작전지도를 그리고 작전지형을 만드는 일을 많이 했다. 그 일을 통해 지역을 전체적으로 평면 확대하거나 더러는 3차원적으로 구현하며 실감하다 보니 지역적 삶에 말 그대로 여기가 최전방이었다.

「고려홍삼증삼기」 66.5×9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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