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경 도자전
5. 28. ~6. 3. 경인미술관 아틀리에
필자와 도예가 안영경과의 만남은 몇 해 전 단국대 대학원에서 ‘미학 세미나’를 하면서 학문적 대화를 깊이 나누고 작가의 관심과 열정, 그리고 작업하는 진지한 자세를 가까이 접하며 시작되었다. 작품세계의 학문적 근거와 이론적 배경을 찾아 작품에 연결하고 마침내 연구를 완수하여 그 결과를 이번 전시에 집약하여 내놓게 되니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전통기법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해석하여 자신만의 고유한 기법을 무필연침無筆沿浸으로 고안해냈음은 도예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하겠다.

「푸른모란」 15×15×4cm | 무필연침, 1250℃
청화 도자 문양의 주요 제작 기법인 분수分水기법은 명나라 헌종憲宗대 15세기 후반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그리기와 농담의 변화로 이루어진 채색 방법이 주가 되었다. 분수기법은 기물에 따라 청화 안료를 다르게 배합하여 다양하게 농담의 안료를 만들고 도자기 기물에 도안을 그린 후 여러 색조로 표현한다. 청화 분수 붓은 채색 과정에서 분수기법에 사용하기 위해 특수 제작된 붓으로서 닭 머리와 비슷하여 ‘닭 머리鷄頭 붓’이라고 불린다. 이는 문양의 내부 또는 외부 윤곽선을 묘사한 후에 안료와 녹차물을 혼합한 청화안료를 여러 모습으로 채색하여 명암의 정도를 나타낸다. 분수기법은 색의 변화가 매우 풍부하고 색상을 고르게 나타낼 수 있으며, 재료의 질감이 지닌 특성을 충분히 활용하여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분수기법을 이용한 서로 다른 농담 표현은 풍부한 층차 효과로 인한 회화적 표현력을 증대시키고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하여 형상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나타내준다. 그렇지만 이러한 분수기법은 난이도가 매우 높아 세필로 묘사할 때 만약 붓이 멈칫하면 필세가 정체되어 소성된 뒤에 매우 진한 물결흔이 형성되기에 많은 경험과 숙련된 기교를 갖춰야 원하는 바대로 제작할 수 있다. 분수기법은 넓은 면적을 붓자국 없이 그라데이션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반면에, 도예가 안영경이 고안한 무필연침 기법은 넓은 면적을 그라데이션으로 표현하기가 비교적 용이하다. 무필연침 기법은 미세관을 사용해서 큰 면적을 자연스럽게 그라데이션으로 표현 할 수 있는 데 반해, 분수기법은 넓은 면적을 나누어 채색을 하거나 한번 소성을 하고 덧칠을 해야 된다. 분수 기법은 안료를 많이 머금을 수 있는 커다란 머리를 가진 붓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안료가 표면에 닿아 붓에 머무를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안료가 흘러내리거나 표면에 고정될지 예측 하기가 쉽지 않아 어려움이 따른다.

「푸른모란」 45×45cm | 무필연침, 1250℃
붓을 사용하는 분수기법과는 달리, 무필연침 기법은 세필 외에 미세관을 동시에 활용하여 안료를 입힌다. 그리고 더욱 미세한 원통형 관으로 다듬은 뒤, 세필을 이용해 미세 작업을 한다. 여기에 번지기와 다듬기를 하여 거친 질감과 안료의 효과를 강조하여 다양한 표현기법을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무필연침 기법은 붓이라는 도구를 일차적으로 사용하지만, 머리가 큰 붓을 쓰지 않고 세필을 사용하기 때문에 분수기법과는 두드러지게 구별된다. 도예가 안영경의 작품에서 붓 크기와 상관없는 붓질의 흔적보다는 그림에 손의 직접적인 움직임이 남긴 흔적이 보이며, 이 흔적이 그림 표현 성격의 일부를 이루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기 위한 제작 도구의 미묘한 변화가 청화백자의 질적 완성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청화 모란도는 푸른색과 모란의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푸른색은 예로부터 종교적인 의식의 평온함과 숭고함을 나타냈고, 모란은 부귀영화와 행복을 위한 상징이었다. 안료가 흐르고 번지는 효과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무필연침 기법은 우연성이 어느 정도 개입할 수 있으나 안료를 눌러 내용물을 뽑아 사용할 수 있는 용기, 세필 등을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우연한 효과를 조절하여 불어넣는다. 무필연침 기법을 통해 모란을 표현하는데 흘리기와 번지기 기법으로 활짝 핀 모란과 아직 피지 않은 모란을 적절히 변화를 주어 표현할 수 있다.

「푸른연화」15x15x4cm | 무필연침, 1250℃
안영경의 그림은 푸른색의 응용인 청록색을 추가하여 청화도의 전통을 살리면서도 삼색의 조화를 이루어낸다. 또한 안영경의 모란은 줄기가 세 개로 그려진 그림이 많은데, 두 개의 큰 줄기에서 파생된 상대적으로 작은 모란 가지는 불규칙해 보이지만 세 개의 틀을 일정하게 보임으로써 자연 속에 불규칙하게 내재된 질서를 조화롭게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안영경의 모란은 원圓에 가까운 모습으로 표현된다. ‘원’은 다른 어떤 기하학적 형태들보다도 안정적인 구도이며 여기에 우주적 질서와 조화가 느껴진다. 안영경의 모란도는 가장 두드러진 드러냄의 성격을 가진 원의 모양을 한 모란의 이면에 부귀영화를 함의하는 기호를 감추고 숨긴 채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드러냄과 숨김의 이중적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모란 그림은 꽃의 중심으로 갈수록 드러나고, 꽃의 외곽으로 갈수록 숨어있는 듯 하다. 모란의 중심은 진한 색, 모란의 외곽은 흰색에 가까운 옅은 푸른빛을 띠고 있는 것이다. 그림 속의 모란은 활짝 만개해 있으면서도 동시에 시들어가는 모습이다. 청색의 꽃잎은 현재 피어나는 모란이고, 청록의 꽃잎은 방금 절정을 넘어 이제 시듦에 접어드는 모습이다. 이렇듯 다양한 순간들이 동시에 공존한다.

작가 안영경은 단국대학교 대학원 조형예술학과 도자조형디자인 미술학 박사를 수료하고 인덕대학교 리빙세라믹디자인학과 겸임교수이자 (사)현대도예가협회 학술·홍보 이사, Slobbie C2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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