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업세계 CLAY WORLD OF ARTISTS
원 위에 숨
글. 김성철 도예가
사진_가나아트 보광 제공
현대 사회에서 호롱은 본래의 기능이 퇴화한 장식적 사물이다. 간편한 전기 조명이 자리를 대신한 지 1세기가 넘은 지금, 호롱에 기름을 넣고 불을 붙이고 먹먹한 불빛 아래 눈을 비벼가며 밤을 보내는 것은 잊힌 일상이다. 그럼에도 호롱불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 사람의 마음에 호소하는 존재감은 지금도 여전하며, 이는 오히려 현대인에게 더 절실한 정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호롱을 만든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상을 의식하였거나 사회적 가치 구현과 같은 거창한 목적으로 호롱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은 아니기에, 왜 내가 특정 대상에 마음을 기울이고 연구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나의 작업은 등불이 켜진 빈 방의 풍경이나 어스름한 빛이 새어 나오는 동굴과 같이 내 마음에 호소하는 이미지와 정서를 물질로 구현하는 과정이다. 호롱이라는 대상에 이르기까지의 나의 선택은 의도적이거나 필연적이지 않았다. 개인적 삶의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된 과정이다. 나는 백자 제작과 관련된 기예를 배웠고, 주된 성형 방법으로는 물레를 사용한다. 호롱은 나의 내적 이미지가 도자의 기예와 만난 결과이다. 만약 내가 다른 재료를 다루는 법을 익혔다면 다른 종류의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금속 다루는 법을 익혔다면 램프를 만들었거나, 열심히 두드려서 내부의 빛이 물처럼 반짝이는 전등갓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림을 그렸다면 등을 들고 어두운 숲을 걸어 가는 작은 사람이나 불 밝힌 창문이 있는 야경을 그렸을 것이고, 물레가 아니라 핸드빌딩 기법을 익혔다면 그러한 내부 풍경을 함축한 건축적 이미지나 동굴을 만들었을 것이다. 나무를 다루었다면 창호를, 유리를 다루었다면 스테인드글라스나 전등갓을 만들었으리라. 호롱을 향한 작업은 나의 주관적 이미지나 정서에서 시작했다. 주로 수평선, 창문, 집과 같은 오브제가 포함된 밤의 풍경이다. 이는 어둑한 가운데 부드럽고, 다정하고, 따뜻하다. 조금 불안하거나 모호해 보이지만 결코 부정적이지 않으며, 나로 하여금 그 안에 머물고 싶게 한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3년 4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 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