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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월호 | 작가 리뷰 ]

[해외 | WORLD] 콘노 토모코
  • 편집부
  • 등록 2022-10-04 15:55:00
  • 수정 2024-07-02 17: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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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 WORLD]

콘노의 작품은 주로 연리기법을 중심으로 하며 색태토에 의한 ‘부분’들을 집적한 것이다. 때로는 식물과 같은 모습이며 때로는 섬모纖毛생물과 같은 명확하게 형용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또한 부분의 집적과 섬세한 돌기가 생리적인 감각을 살아나게 하는 한편 부드러움과 공격성을 함께 갖춘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환기시킨다.

 

생명 에너지의 교감과 관계를 표상하는 콘노 토모코

글. 다이초 토모히로 교토국립근대미술관 주임연구원
글·편역. 우관호 홍익대학교 도예유리과 교수

 

콘노 토모코今野朋子,Tomoko Konno와의 인연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제 도자기 페스티벌 미노International Ceramics Festival MINO의 심사를 하고 동상 수상작인 콘노의 작품에 대한 심사평을 썼다. 생면부지의 작가인 만큼 작품에서 보이는 조형적 특징과 감수성으로만 한정시켰다. 이후 2013년 시가라키 도예의 숲 레지던시에서 만나 작가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작품의 치밀함과 조형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에 소개하는 글은 금년 5월 22일~6월 9일까지 일본 요카이치시 소재 메구로 도예관에서 열렸던 콘노의 두 번째 개인전에 대한 다이초 토모히로大長智廣의 서문에 근거하며,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편역하였음을 전제한다.

 


「Relation」 H66×W100×D77cm | porcelain | collection in Tokoname city | 2011 Grand Prize, Choza Contemporary Ceramic Exhibition (Japan)

 

콘노 토모코 개인전에 대하여
이 전시는 메구로 도예관에서의 콘노 토모코의 두 번째 개인전이다. 첫 번째 전시회에서 콘노는 전시회장이면서 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일본 정원을 포함한 야사토八鄕 옛 히라다平田 저택의 중후한 공간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였다는 반성에서 출발하여 이번에는 정원까지 전시공간을 확대할 예정이다. 그 전시의 이미지에 대하여 콘노는 “일본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정원과 저택을 연결하여, 이러한 일본이 있으면 이라는 가상의 낙원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였다. 아울러 정원에서의 작품 전시도 연간 지속하여 계절의 변화와 함께 작품의 표정이 변하고 이끼가 끼어가는 과정도 즐길 수 있도록 상정하고 있다. 확실히 지금까지의 콘노의 작품을 돌아보면 공간 전체를 사용한 인스털레이션과 개인전에 맞춘 퍼포먼스도 함께 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시도는 자신의 이미지를 최대한 전할 수 있도록, 자신을 항상 미지의 표현가능성을 향해 열려있는 상태에 놓아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유연한 자세는 콘노가 거의 독학으로 도예를 익혔다는 사실, 그리고 홍콩, 도코나메, 인도네시아 발리, 시가라키 등 제작환경을 바꿀 때마다 문화적 양분을 충분히 흡수하였던 것과도 관계가 있다.
콘노가 도예를 접하게 된 것은 결혼과 함께 1994년 홍콩으로 이주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곳에서 부터 “어릴 적 찰흙놀이에의 추억,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 어려움의 매력”, “지금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쌓아 온 지금” 이라고 자신의 현 위치를 말하면서 넘치는 표현의욕과 시행착오를 통해 도예의 기술과 방법론을 획득하였다.
전위도예의 기수인 야기 가즈오八木一夫는 태어나면서부터 도예의 세계에 들어간 것이 아닌, 자신의 의사로 그 세계에 뛰어들어 객관적이고 비평적으로 스스로의 위치를 확립할 수 있는 작가야 말로 ‘명공名工’의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역설하였다. 여기서 야기의 사고를 소개한 것은 콘노가 ‘명공’의 자격을 가졌다는 것이 아니고, 야기의 생각처럼, 도예를 통한 표현세계의 가능성을 넓힐 수 있는 조건이 우연하게도 콘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콘노는 지금까지의 활동을 통해 작품제작의 위치와 방향을 스스로의 의지로 쌓아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자신밖에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찾아가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라는 태도야말로 콘노의 창작의 근간이 된 것이다.

콘노의 작품은 주로 연리기법을 중심으로 하며 색태토에 의한 ‘부분’들을 집적한 것이다. 때로는 식물과 같은 모습이며 때로는 섬모纖毛생물과 같은 명확하게 형용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또한 부분의 집적과 섬세한 돌기가 때로는 생리적인 감각을 살아나게 하며 때로는 부드러움과 공격성을 함께 갖춘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환기시킨다. 최근 콘노와 같이 섬세한 부분을 집적하여 제작하는 작가가 다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표현이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의식의 ‘동일지점’에 멈추어서 부분을 집적하는 부류의 것이 아니고 또한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게 요동하는 자신의 내면성의 표출을 시도하는 것도 아니며, 심지어는 흙이 만들어내는 소재감이나 그 효과에 함몰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돌기물 등의 무수한 부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콘노는 자신의 작품을 되짚어 보는 가운데 2011년 제9회 국제 도자기 페스티벌 미노美濃에서 동상을 받은 「Creature-core」에 대하여 “살아있는 에너지의 흐름을 느끼면서 만들었으며, 그 에너지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생각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같은 해에 개최된 초자쇼우長三賞 도코나메常滑 도예전의 대상작 「Relation」에 대해서도 “서로 에너지를 주고 받으며 연결되고 있는 이미지에서 만들었다”라고 말하였다. 두 작품 모두 주머니 모양의 내부에 무수한 돌기물이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구조이지만 「Relation」은 그 구조에 호응하는 것과 같이 내부에 돌기물을 가진 꽃잎모양의 작품이 짝을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에서는 ‘마치 ~와 같은’이라는 여러 가지 비유를 하는 것이 가능하며, 그러므로 감상자들의 작품해석의 폭도 넓어진다. 그러면서도, ‘에너지의 흐름’, ‘에너지의 교환’이라는 곤노의 말에 주목하면, 그 창조세계에 보다 깊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찍이 콘노는 “나의 작품은 하나 하나가 세포의 이미지이다. 작품은 작은 것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에도 그 가운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이 무수히 많다는 이미지에서 만들고 있다.” 라고 했다. 에너지와 세포는 콘노에게 등가의 것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미지는 후쿠오카 신이치福岡伸一의 저서 『생물과 무생물의 사이』에 서술된 ‘동적 평형’이 아닐까. 후쿠오카는 생명의 조건으로서 ‘자기 복제 시스템’을 거론했다. 생명의 유지에서, 세포에 포함된 무수한 원자는 항상 바뀌고, 끊임없이 붕괴되는 질서가 다시 질서를 유지하기 때문에 생명체가 무너지지 않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동적 평형에 의한 생명 모델을 참고로 콘노의 작품을 보면 원자의 교체라는 동적인 상태를 시각화한 것이 돌기물과 부분의 결합이며 그것들의 구조화에 의해 도예 작품 내에 에너지의 흐름과 교환이 생기게 된다. 아울러 콘노가 사용하는 연리기법은 서로 다른 색태토를 일체화하는 장식기법의 하나이다. 콘노가 이 기법을 사용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우연일지도 모르지만 항상 교체를 계속하면서 평형을 유지하는 원자와 같이 서로 다른 요소가 동일체 가운데서 모순없이 존재하는 상태의 상징이 된다. 작품에 나타나는 색채도 색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과 인식을 표면화함으로써 사물과 사람 간의 에너지의 교감관계를 만든다. 이와 같이 콘노의 작품에서 중층적인 ‘에너지의 흐름’, ‘에너지의 교환’이 표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도예를 시작하였던 때 콘노는 지금의 것과 같은 입체물이 아니라 그릇을 제작하였다. 핸드빌딩으로 만든 그릇에 상감을 하거나 표면을 긁은 자리에 청화를 그려 넣거나 하였다. 그 가운데서 자신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여러 가지 자기토의 조합과 자기토와 도토의 조합 등을 시도하는 한편 색태토를 사용하면서 연리기법에 귀착한 것이다. 그러나 그릇이라는, 형상을 전제하는 제작에서는 다양한 이미지들을 구현하기에 많은 제약이 있다. 앞서 야기의 말을 인용하면서 콘노는 외부로부터 도예의 세계를 보는 입장에 있다라고 서술하였다. 그러나 당초 콘노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무자각적으로 도예의 기물성을 출발점으로 여겼다고 생각된다. 거기서 비약하게 된 것은 콘노가 도코나메시대에서 출산의 경험을 계기로 ‘입체’를 만들기 시작하였을 때 “마치 머리와 손이 하나가 된 것 같은” 깨달음을 체감한 것이었다. 이후 콘노는 만들고 싶은 형태가 지금까지 쉼없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환언하면 그릇이 도예 제작의 전제가 된 것도, 거기서부터 비약한 것도 우연한 계기들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우연과의 만남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콘노가 결코 ‘도예’라는 폐쇄적이고 전통적인 세계에 함몰되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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