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 WORLD]
’센다’는 행위는 박자가 되어, 리듬으로써 세상의 일부가 되고 우리 존재를 구성하는 동시에 재현된다. 찰흙이라는 매개를 통해, 이 리듬을 표면으로 끌어올려 의식하게 하는 시도는 어떤 모양일지 알아본다.
수(手), 그리고 수(數)의 방법론
요한나 빌링 Johanna Billing
ⓒ Anna Drvnik
공동체와의 협업을 통해 이뤄지는 이벤트나 워크숍을 퍼포먼스, 음악, 움직임으로 엮어 영상에 담아내는 작가 요한나 빌링Johanna Billing의 「What Else Can We Portray (Figuring Out)」 (가제)는 숫자와 숫자를 세는 행위가 만드는 반복적인 리듬의 의미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2017년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조각 워크숍 (Edinburgh Sculpture Workshop, 이하 ESW)에서 진행한 한 찰흙 모델링 워크숍에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수를 센다’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행위가 만드는 리듬, 속도, 박자가 신체의 수행과 행동양식에서도 반복되는지 관찰한다. 작품의 제목은 ‘묘사하다’는 의미의 ‘portray’, 그리고 ‘수치’, ‘어떻게 할지 생각하다’, 또는 ’구체적 모양’의 의미를 가진 단어 ‘figure’를 활용한 표현 ‘Figuring Out’를 통해 이중적인 의미를 담아낸다. 이 이중적 의미는 머릿속에서 추상적으로 일어나는 ‘세는’ 행위가 물리적인
모양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통해, 세는 행위가 우리에게 주는 신체적, 정신적 영향을 의식하게 하는 작품의 시도를 반영한다.
ESW의 커미션이기도 한 이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이 찰흙 워크숍을 중심으로 촬영한 영상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작품 활동을 조각으로 시작하며 찰흙을 다루기도 한 빌링은, 신체와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는 매체로써 찰흙을 주목하여 이를 프로젝트의 매개로 잡았다. 찰흙은 유연하고 접근성이 낮은 성격을 가진 동시에 신체적 힘과 의도성이 필요한 매체이기 때문에, 의식적이며 무의식적인 행위가 손을 통해 형태가 잡히는 과정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여자들의 워크숍 과정과 공간을 중심으로 촬영된 영상은 공간성에 대한 관찰, 사운드, 그리고 음악적 요소를 포함한 작품으로 확장될 예정이다.
에든버러 조각 워크숍(Edinburgh Sculpture Workshop) 내부 작업실 모습.
에든버러 조각 워크숍 외부 전경
「What Else Can We Portray (Figuring Out)」 (가제) 프로젝트의 일부로서 2017년에 진행된 찰흙 모델링 워크숍 현장 스케치. ⓒ Zoe Hamill
빌링은 영상이 만들어진 사건과 실제 상황들이 겹쳐지는 지점을 드러내는 방식을 탐구한다. 따라서 프로젝트는 ‘숫자 세기’의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조직된 찰흙 워크숍에서 일어난 제작뿐만 아니라, 워크숍 공간과 환경 자체가 형성하는 박자, 이를 영상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지와 사운드가 형성할 새로운 리듬과 그 의미를 메타적 시선으로 관찰한다.
‘세는’ 행위는 1부터 10까지, 숫자를 차례대로 나열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어나서 씻고, 일하고, 귀가하고, 쉬거나 식사를 하는 등 모든 일과의 반복적 행위의 리듬은 이 의식적인 동시에 무의식적인 ‘세기’와 연관된다. 우리의 존재 그리고 존재 방식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우리가 향유하는 공간과 거리, 우리의 움직임, 이동, 소통하는 박자, 그리고 언어와 소통의 변형에도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접하는 영상, 음악 등, 미디어의 박자와 서사의 흐름과도 상호작용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일상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 ‘센다’는 의식하기 힘든 행위가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과정과 그 형태에 대해 반추해 보고자 했다. 더 나아가 이를 공간, 신체의 수행, 리듬, 박자, 일과, 제작, 성과와 연결하여 사회 속에서 수량의 측정, 수치를 통한 평가에 대한 이야기도 담아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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