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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월호 | 작가 리뷰 ]

이정석
  • 편집부
  • 등록 2020-09-07 15:06:00
  • 수정 2020-09-07 17: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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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도예의 물질성에 대한 탐구
이정석

글_김기혜 기자 사진_ 편집부

흙이라는 물질이어야만 하는 근원적 이유, 흙의 가소성과 용해성 등 물질의 특성에 대한 탐구적 태도를 견지해온 이정석은 돌을 형상화한 일련의 「탐석 探石 」 시리즈를 새롭게 선보였다. 지난 9 월 25 일부터 10 월 8 일 까지 윤현상재 Space B - E 에서 열린 「탐석」 전에서 그는 흙을 만지는 행위 자체에서 나아가 물질 그 자체를 구현했다. 전시장에 배치된 일련의 도자기 돌은 도예가 돌-흙으로부터 기인하며, 흙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노골적인 선언으로 읽힌다. 공예의 물질이 갖는 천성적 한계를 날것으로 드러냄으로써 이정석은 현대의 도예가들이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혹은 만들어야 하는지 , 무엇이 가장 도자기를 도자기답게 하는지를 자문한다.
전시장에서 관람객은 전략적으로 배치된 돌의 정원으로 초대된다. 길게 곧추선 돌, 넙적하게 드러누운 돌,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만한 작은 돌부터 올라가 앉아 명상해도 되겠다 싶은 넓적하고 커다란 돌에 이르는 일련의 도자기 돌은 언뜻 보면 자연 속에 놓인 돌과 다를 바가 없다. 도자기-돌 사이를 걷는 관람자는 물질성과 개체성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영역에 서게 된다. 그러나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도자기 돌이 금이나 은, 유약과 안료, 전사지 등으로 치장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정석은 익숙한 도예의 장식 기법들을 도자기 돌 위에 덧씌우는 방식으로 도자기와 돌을 의식적으로 구별 짓는다. 심지어 어떤 도자기들은 일부러 금이 가고 깨진 채로 진열됨으로써 구워진 흙-개체로서의 면모를 적나라하게 노출하고 있다.

작가는 도예의 근원인 흙이라는 물질 자체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공예에 지워진 당위성의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한다. 공예는 본질적으로 특정한 물질의 특성과 결부된다. 그는 하나의 작업을 할 때 여러 덩어리의 흙을 준비하고 늘이기, 붙이기, 파기, 물레 차기 등 다양한 기법으로 만들며 흙의 물성을 탐색해 왔다. 그는 흙을 뭉개고 짓이기는 즉흥적이고 우연한 성형 과정과 행위를 즐긴다. “뭐가 나올지 모르면서 작업하다가 무언가 나오는 게 재미있어요. 물레를 찰 때부터 어느 부분이 만들어지는지 보이면 흥미를 잃어요.” 그의 작업 방식은 흙의 물성과 제작 과정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지극히 공예적이며, 만들어진 공예품은 필연적으로 흙으로 만들어져야만 했던 결과물이 된다.

초기 작업에서 그를 대표하는 작품은 동물 형상을 띤 인형들일 것이다. 재학 중 리서치를 통해 자신이 동물 형상에 흥미를 느낀다는 것을 발견한 뒤, 그는 흙의 가소성을 활용해 긴 형태의 흙 덩어리를 늘리거나 넓히 고 파내는 방식으로 상형 도자 조각을 만들었다. 작가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 아닌 작업을 하면서 생긴 자 연스러운 결과를 추구하는 모험의 기량 workmanship of risk 은 이정석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 방식이 공예와 오브제에 대한 논쟁 속에서도 경계를 구분짓지 않고 자유롭게 작업해온 스승 코이에 료지 鯉江良二 의 작업 태도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즉흥성이 돋보이는 라쿠소성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일본 미노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경력은 그가 도예가로서의 삶을 지속해나가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

도자 조형 작업을 지속해오던 작가는 조형물이 온전한 도자기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며, ‘도 자기가 가장 도자기스럽다고 받아들여지는 때는 언제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그는 한국적 전통 안에서 사람 들이 떠올리는 도자기가 과거의 유물, 깨진 도자기 파 편에 가깝다는 것에 착안해 물에 녹는 흙의 용해성을 활용한 일련의 「프레자일 fragile 」 시리즈를 만들었다. 막 가마에서 구워져 나온 새로운 작품이지만, 나오는 순간부터 아주 오래된 유물을 땅속에서 끄집어낸 듯 풍화된 표면과 깨진 단면은 소성 전 기물을 물에 담가 의도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도자기-돌의 갈라진 단면은 가장 순수하게 그 물성을 드러내는 순간을 포착한다.

“도자기를 만드는 건 사람이니까 아무래도 악력이 존재해서, 물에 담그면 어떤 곳은 좀 더 밀도가 높고 어떤곳은 밀도가 약해요. 물이라는 게 밀도가 약한 곳을 파고 들어가요. 사람이 감기에 걸리면 제일 먼저 취약한 기관이나 부위가 두드러지게 안 좋아지는 것처럼요. 도자기에도 밀도가 약한 곳이 기억되어 있으니 거기서 부터 깨져나가거나 녹아가거나 해요. 그런 흙의 성질 을 이용했을 때 제가 의도하는 패턴과 똑같이 나오지 는 않아요. 패턴이 무너지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 하나 하나가 저에게는 즐거워요.”

「프레자일」 에 이어 이번에 처음 선보인 「탐석」 작업은 문자 그대로 마음에 드는 돌을 찾아 손질하고 다듬는 과정이다. 돌을 다시 돌로 돌려놓음으로써 도예의 순수한 물질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겠다는 그의 작업 태도는 이제 아예 공예 또는 미술의 인위적, 기술적 맥락을 삭제한 것처럼 보인다. 이 도자기의 외형은 도자기가 근원적으로 돌-흙에서부터 왔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깨닫게 한다. 그러나 이 도자기 돌이 더욱 돌처럼 보일 수록, 이 작업이 도예가의 뛰어난 기량을 바탕으로 성립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금 인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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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19년 11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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