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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월호 | 작가 리뷰 ]

손끝을 통해 찾는 깨달음의 길, 수작선 <변승훈>
  • 편집부
  • 등록 2020-05-16 22:22:02
  • 수정 2020-08-19 03: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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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손끝을 통해 찾는 깨달음의 길, 수작선<변승훈>
글.이수빈 기자 사진.편집부

도예가 변승훈이 흙과 자연에 대한 소회를 담았던 <대지의 노래>에 이어 새로운 주제 <수작선手作禪>전을 선보였다. (3.18~3.29 인사동 통인화랑) 전시 준비가 한창이었던 3월 중순, 작가의 작업실에서 만나 작가로서의 일대기와 작품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하게 툭툭 던지는 농담 속에도 그의 작품과 삶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의 것을 찾고자 향한 가마
변승훈은 대학에서 섬유 미술을 전공했다. 졸업 후 미국 유학을 계획하던 중 ‘이방인에 불과한 내가 그들이 구축한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남길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됐다. 우리의 것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 예술가로서 성공할 길이라고 생각한 서른살 청년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 토기에 남아있던 수 천 년 전에 찍힌 누군가의 지문을 떠올렸다. 도자예술의 특징인 영속성과 당시 높아지기 시작하던 우리도자의 영향력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도자를 배우기 위해 광주 분원의 백자 재현공장, 산곡의 분청요, 광주의 흙공장, 곤지암의 옹기공장 등 작업장을 돌게 된다. 먹고 자는 것만 해결해주면 감사하다며 흙 수비부터 배우며 일했다. 흙먼지 풀풀 풍기는 수비터에서 즐겁게 흙을 만지는 ‘서울에서 대학까지 나온’ 청년을 보며 공장의 모든 사람은 의아해했다. 그 후로 그는 흙 공장에서 흙 제조를 배우고, 도자기에 난을 치는 화공으로서 그림을 배우고, 청자에 문양을 상감하며 우리의 문양과 세공기술을 익혔다. 책에서 배우는 게 아닌, 몸으로 배운 도자기는 작가의 내면에 깊이 각인되었다.

 

 

나는 ‘분청’을 하는 작가
3년간의 공장 생활 후 변승훈은 도예가 윤광조를 만나게 된다. 곤지암에서 멀지 않은 초월면에 도자예술을 하는 사람이 있다며 소개받은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반년간의 조수 생활을 하게 된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변승훈이 ‘분청’을 하는 작가가 될 기틀을 마련하게 되고, 그가 어떤 도예가로 성장해야 할지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게 된 시기였다. 변승훈의 작업은 생활자기, 항아리, 벽걸이형 평면작업, 벽화 등 그 폭이 다양하지만, 공통으로 분청에 그 근원을 둔다. 작품의 형태와 흙의 상태에 따라 다양한 분장기법을 통해 그때그때 다른 표현으로 완성되는 분청은 그 날의 본인을 담는 일기와 같고, 반복되는 제작과정은 자신감과 기법을 숙련하게 할 때까지 수행하는 수련과 같다. 분청은 변승훈에게 단순한 장르가 아닌, 작가 본인의 생각과 정신을 담는 그릇이자 수단이다.

 

바람 부는 미리내 골짜기
변승훈의 작업실이자 살림집은 경기도 안성의 끝자락, 미리내마을에 위치해있다. 작가는 다양한 곳에서의 공부를 끝낸 후 경기도 송정리 양계장의 낡은 가마터를 거쳐 1988 년, 이곳에 터를 잡았다. 작가의 작업실과 두 아들을 키운 집 곳곳에는 그의 작품을 빼곡하게 메웠다. 벽면에는 나무의 추상성을 그려 넣은 드로잉과 도판을 조합해서 만든 「신 목」을 비롯한 작품들이, 화장실의 타일과 외벽에는 그의 분청 모자이크 작업으로 마무리되어있었다. 거실 한쪽은 여 러 장의 가족사진, 장성한 아들이 어렸을 적에 그린 스케치와 가족간 나눈 짧은 편지들이 빼곡히 붙어있었다. 집이 곧 작가의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의 작업실에서 창밖을 통해 보이는 풍경은 먼 산과 흔들리는 나무가 채운다. 마을은 산의 골짜기에 위치해 바람이 거세다고 한다. 그의 이전 주제인 <대지의 노래>에서 느껴지던 바람이 미리내 골짜기에 부는 바람에서 연유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나의 터전과 ‘미리내토’
그는 생활자기부터 조형 작품까지 작품에 쓰이는 흙을 직접 만든다. 어머니 산소가 있는 작업장 뒤편의 선산에서 흙을 채집해 이를 분쇄하고 시판 청자토와 섞어 점성과 색상을 조절해 사용한다. 그는 본인이 직접 캐는 흙을 그가 머무는 마을의 이름을 따 ‘미리내토’라 명명하는데, 철분과 불순물이 많은 미리내토는 변승훈 특유의 색과 질감을 만드는 일종의 ‘물감’이 된다. 분장을 위해 사용하는 백색의 화장토와 검은빛의 미리내토가 어떤 비율과 형태로 어우러지는지에 따라 그의 분청작업은 다양하게 변주된다.

미리내토와 흙의 성질에 의한 색감은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이는 원형 분청 항아리에서 두드러진다. 항아리 기면에 동그랗게 자른 한지를 붙이고 화장토를 바르는 과정을 한 겹, 두 겹씩 여러 차례 반복 후 한지를 바늘로 가볍게 떼어 내면 한지를 붙인 시점과 화장토가 발려진 횟수에 따라 명도의 대비가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그가 ‘돌항아리’시리즈 라고 부르는 거친 표면의 비정형 항아리도 흙의 사용에 따라 그 빛깔이 다르다. 실제 돌을 찍어내며 자연의 돌을 담아낸 질감에 하얀 화장토를 바르며 태토의 색상 차이가 발생하게 되고, 연작 제목처럼 태초의 돌을 연상하게 한다. 그가 최근 작업에서 주로 사용하는 분장기법은 덤벙과 흘리기 기법이다. 작가는 기형에 화장토와 미리내토 슬립을 부으며 그만 멈춰야 할 때를 배운다고 한다. 욕심이 나서 이리저리 반복하다 보면 수분을 이기지 못한 흙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전 과정이 흙에 대해 알아가고, 흙을 통해 삶의 이치를 배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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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20년 4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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