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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월호 | 작가 리뷰 ]

김명주의 예술, 다시 마음의 길로 따라나서기 〈Flowing〉
  • 편집부
  • 등록 2019-01-07 15:46:44
  • 수정 2019-01-07 17: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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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주의 예술,

다시 마음의 길로 따라나서기〈Flowing〉


10.17~11.11 갤러리밈

심상용 동덕여대 미술사학 박사

‘예술은 인간의 언어이고, 인간에 대한 언어여야 한다. 그리고 예술가는 그것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사람이다. 시인은 자기 몫의 생의 분량을 넘어서는 세계를 소망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자신의 인생으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한 사람이다. 나는 예전에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생각은 지금까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자신의 삶의 경험으로부터 추대되고,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을 넘어서는, 해서 자신의 존재의 단위로는 계량할 수도, 품을 수도 없는 것을 따르는 예술은 무엇보다 먼저 작가 자신을 무덤으로 이끌 것이다.”
오늘날처럼 예술이 사회정의를 입에 달고 다녔던 시대는 이전에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오늘날처럼 바로 그 측면에서 무기력했던 적도 이전에 없었다. 수많은 글로벌 비엔날레들, 블록버스터 전시들은 마치 UN의 원탁을 오르내리는 인류의 의제들을 섭렵하는, 과시적인 이미지들로 시끌벅적하다. 자신을 여의도나 UN의 사무처 직원과 혼동하는, 감당하지 못할 이념의 주역이기를 자처하는 예술가들이 그 같은 무대에서 덧없는 조명을 독차지 한다. 그러면서 실상 그것들이 하는 일이란 예술이라는 신비롭고 유일무한 활동을 문화적 소비에 적절한 교양식단으로 전유하는 것이다. 
‘자기 분량만큼의 예술’은 마음에서 시작하는 예술이다. 생의 순간들을 타고 마음으로 전해오는 경외감, 환희의 느낌, 피할 수 없는 상실로부터 듣는 예술이다. 김명주의 세계가 그렇다.
이 세계는 삶의 공식이나 그것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추상적인 표지를 제시하는 데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그런 것들은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동떨어진 것들일 뿐이다. 매일 살아있는 감정과 감각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루돌프 아른하임Rudolf Arnheim이 옳다는 것을 안다. “우주의 떨림을 느끼지 못하는 그 누구도 행성운성의 수학법칙을 깨우칠 수 없으리라!” 행성 운행의 법칙을 깨우치는 것보다 더 앞서서 일어나며 더 시급한 일은 우주의 떨림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우주의 떨림을 전하는 고도의 임무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의 소관이다!

 

이하생략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1812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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