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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월호 | 작가 리뷰 ]

강준영 KANG JUN YOUNG
  • 편집부
  • 등록 2018-02-08 14:5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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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기본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최초의 사랑은 가족으로부터의 사랑이다. 본질적인 사랑의 허약함을 극복가능하게 만드는 힘은 가족에게서 경험한 조건없는 사랑이 바탕이 된다. 강준영의 작업은 이러한 ‘사랑’에서 출발한다. 작가 본인이 직접 겪어 온 개인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짓고 만들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형태의 사랑 이야기를 말한다.

 

<2015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여주 특별전, 섬유공예가 이준과 강준영의 협업전시 모습 「“With You...”」

 

입체적 자서전

 

verse1.
작가에게 창작은 자신이 느끼고 본 것들을 기록하는 일이다.기록이 끝난 뒤에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본 것들을 말하는 일로 이어진다. ‘기록적’ 성향이 두드러지는 강준영의 작품에는 작가의 정체성과 그가 바라보는 세계의 구조가 고스란히드러난다. 전시장에는 언제나 그가 실제로 사용하고 있거나 사용했던 것들을 함께 배치하는데, 턴테이블 위에 도자기가신기하다고 하니 “전혀 심오할 게 없다”며 그저 생활의 일부를 가져다 놓았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작가의 취향이나 혼자아는 추억의 소품들은 타인에게 암호같을 수밖에 없지 않냐고 다시 물으면 “얘기해줄 수 있는데 들을 준비되셨냐”고 되묻는 사람. 그는 말한다.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임무는 ‘듣는 일’이라고.

 

The first duty of love is to listen
그의 작업 속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소재들은 그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를 짐작하게 만든다. 예컨대 집과 항아리, 꽃은 모두 작가의 실제 삶에서 한동안(어쩌면 지금도) 의미있게 작동했던 기호들이다. 자주 인용하는 Pray for you,You make me happy 등의 메시지들을 굴절없이 내보내는것은 그가 믿는 세계관의 기초를 보여준다. “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것에 큰 의의를 둡니다. 일시적인 경험이 아닌 늘 내 삶 속에 있거나 했던 경험들. 그걸 중요하게생각해요. 제 작업을 알려면 힙합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제 모든 정신은 그것으로부터 탄생했거든요.”
얼핏보면 두서없는 낙서에 가까워 보이는 이미지와 수수께끼같은 부호들이 흩어져 있는 도자기는 작가의 손이 그래피티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어린시절부터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다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바라보는 진솔한 인생의 비평을 랩으로 옮기고, 거리에서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는 스트릿 아트, 힙합문화가 생활의일부였다. 백남준과 앤디워홀, 바스키야의 전시를 보며 성장한그는 공기처럼 흡수한 이국의 문화를 양분으로 도자기에 그들처럼 자신의 ‘말’을 입히게 됐다. 표현 형식은 이국에서, 말의 기원은 한국의 가족에 뿌리를 둔다.
건축가였던 아버지가 설계한 공간에서 형과 부모, 조부모와 함께살던 그는 불시에 닥친 삶의 ‘통과의례’를 한꺼번에 경험하게 된다. 그가 힘겹게 겪어낸 시간 속에서 길어올린 것은 자신에 대한연민이나 비관이 아닌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이었다. 특히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족 중 절반이 사라진 상실의 경험은그를 지금의 작업을 하도록 이끈 동력이 됐다. “그 전에는 어떤추억을 항아리에 넣는 것이 다였어요. 조부모님과 아버지의 죽음이후 세상에는 제가 모르는 사랑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내 일이 되고보니 내가 몰랐던 사람들의 불행을 알게 된 거에요.”여섯 가족이 행복하게 살았던 기억은 ‘집’의 의미에 대한 탐구로,할머니의 장독대 항아리마다 낙서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쓰던 추억은 현재 항아리 작업의 근간을 이루게 됐다.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작업이지만 서사는 함축적이다. 몇 가지이야기의 기본 골조를 중심으로 단순한 단어들을 나열하는데,그것들을 이루는 꼭지점을 연결하면 특정한 형태를 갖추게 된다.‘LOVE’ ‘WITH’ ‘YOU’ 같은 단어를 점으로 치환해서 잇게 되면집의 형태가 되는 것이다. 점들을 순서대로 이으면 형태가 생기는 그림책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작업은, 집이라는 장소에 대한작가의 의식적 회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verse2.
예술 안에서 미술이라는 장르, 그 안에 도예의 위치는 이런 것같아요. 도자기 만든다고 하면 ‘나 그릇 만든 거 있음 주라’이런반응을 받는 거요. 도예가 ‘그릇’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더 알려서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면에서 외국에는 다른 장르와의협업을 통해 좋은 사례를 만든 경우가 많아요. 무라카미 타카시가 루이비통과 협업을 해서 패션계와 미술계에 큰 이슈를 만들어낸 것처럼 우리나라도 협업과정에서 좋은 작가가 기업과 함께 할수 있는 기회가 늘었으면 해요. 미술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많이 전파가 돼서 미술이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으면 하는 게 작가로서 꿈이거든요.

Collaboration with
그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글을 쓴다. 처음 미술을 배울 당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쓰고, 그림으로 표현한 뒤 구체화시키는과정을 배운 덕분이다. 이 때 ‘매체’라는 것은 이야기에 어울리는당위에 합당하면 선택되는 부차적인 것이 된다. 그래서 그는 작가만의 고유하고 남이 따라할 수 없는 독특한 기술을 연마하기보다 이미 잘 만들어진 훌륭한 재료들을 어떻게 작업에 활용할지에 더 관심을 둔다. 달항아리 위에 세라믹 펜슬이나 금으로 그림을 그리고, 기존에 나와있는 전사지를 쓴다. 특별한 기법은 보이지 않지만 작가가 직조한 이야기를 조화로운 이미지로 구성하는 능력이 특기다. 도자기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들은 캔버스에담고, 움직이는 이야기가 필요할 때는 영상을 만든다. 그에게 도자기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입체 노트인 것이다.
“저도 도자를 전공하고 공부했지만 도예 하나만을 가지고 평생을 다루는 분들을 존경해요. 흙은 손으로 만드는 비율이 큰데 전그걸 잘 못하거든요. 그래서 제 작업은 조형적으로 다가가기 보다는 그림이나 메시지에 집중해서 봐야 해요. 도예만 하는 사람이도예가라면 전 그런 면에서 도예가로 보기 어렵죠.”
본래 만드는 일보다 그리는 일에 소질도 적성도 맞았던 그가 선택한 것은 타 예술 장르와의 배척없는 협업이다. 재료와 장르의 구애받지 않고 그는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들을 했다. 그런 이유로 도예계에서는 “네가 도자기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니까 다른 것에 집중하는 게 아니냐”는 공격적인 말도들어야 했다.
“내 역사를 보여주는데 도자기 형태로 보여줄 수 있는 게 있고,때로는 그걸 걷어내고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아이러니한 것이회화를 전공한 사람이 조각을 하면 저 사람이 조각도 하는구나,하나의 현대미술 장르라고 생각하는데 도예를 한 사람이 그러면‘너 요즘 이것도 한다며?’이런 질문을 해요. 도자를 전공해서 도자를 활용한 표현을 했을 뿐인데요. 제 회화작업은 물감을 흙처럼 이용해서 손으로 그리고 있어요. 물감을 귀얄처럼 표현하는거죠. 이건 제가 도예를 전공해서 영향을 받은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단지 조형적으로 만드는 것에 기여한 부분이 적다고 한쪽으로 몰아갈 필요가 있나요. 도예가도 다 현대미술가인데. 만드는 걸 어려워하는 저한테 초벌기는 화방의 캔버스 같은 거에요.직접 만들지 않은 것에 대해 지적하는 분들이 당연히 있었지만제가 원하는 매끄럽고 동그란 달항아리가 이미 너무도 잘 만들어져 있는데, 굳이 왜 내가 만든 찌그러진 항아리로 작업을 해야하는지 생각했죠. 어디서든 밝히는 부분이에요. 모양이 아주 동그랗고 예쁜 건 사온거고, 그렇지 않은 건 제가 만든 거에요.(웃음) 다음 전시를 도자기 작품으로만 다 낸다고 하면 아마 강준영이 ‘다시’ 도자기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거에요. 그건 내가 늘 해왔던 것이자 일상인데 말이에요.”

verse3.
예전부터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이에요. 내가 남들보다 더 받은축복이 뭘까. 그건 제 생각을 시각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거에요. 동시에 하는 질문은 작업으로 사람들에게 뭘 전달할 수있을까를 생각해요. 제 작업을 통해서 사람들이 느끼지 못했던가족의 사랑이나 ‘Love&Peace’ 이런 걸 느끼면 좋겠어요. 우리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이 세상이 그리 무섭고 험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게 제가 추구하는 바입니다.

New born again
지난달 작가는 두 개의 다른 전시에 참여했다. 섬유공예가 이준과 협업을 통해 완성한 작업은 <2015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4.24~5.31, 여주도자세상 여주 특별전에서 ‘New born again’이라는 테마로 전시되고 있다. 전시작의 2/3는 깨지거나 모양이 흐트러진 흠이 있는 도자기다. 9년 전 만든 도자기가 마음에 차지 않아 먼지가 수북하도록 방치됐던 것도 있다. 이들은 새로운 작가의 손에서 다시 생명을 얻어 사람들 앞에 나오게 됐다. 다른 하나는‘Full bloom’4.24~6.13, 청안갤러리이라는 주제의 회화작업 위주로 구성한 개인전이다. 사회의 여러 이슈에 대해 작가 나름의 응답작들인 이 전시는 2014년 4월 이후우리 사회 깊숙이 침윤한 우울함의 정조, 무기력한 회의감으로부터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만개’한 꽃들을 그려낸 것이다.“그려진 꽃들은 전부 현실에 존재하지는 않는 상상의 꽃들이에요. 제가 꽃을 무척 좋아하는데요. 작업도 안 팔리고 수입이 없던 시절에 비싸서 살 수 없으니까 꽃시장 한켠에 서서 드로잉을했었죠. 요즘 이런 저런 일들 때문에 사회가 어둡고 사람들도 희망을 기대하지 않는데, 전시장에 ‘만개’한 꽃들처럼 이제 다들 활짝 피면 좋겠다는 의미에요.”
그의 작품은 위로의 본래 정의를 환기한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에는 거창한 수사가 필요하지않다는 것. 멋지고 그럴싸한 말을 고르느라 가장 필요한 말은 뒷전으로 밀어두는 이들에게 이단순한 위안의 정석은 참고할만하다. 그러므로 ‘Pray for you’는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누군가의 고민에 보내는 막연하지만 진심이 담긴 응원, ‘네가 잘 됐으면 좋겠다’를 소원하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우리의 삶을 감싸고 있는 당연한 일상들과 잊고 지낸 다정한 인사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5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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