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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월호 | 작가 리뷰 ]

진혜주-She 그리고 In her box
  • 편집부
  • 등록 2013-03-06 13:49:04
  • 수정 2013-03-06 13: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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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혜주 Jinny Chin

She 그리고 In her box

김효진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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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속의 여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불균형한 인체와 새하얀 피부색을 지닌 ´그녀She´는 작가 진혜주(31)의 작품 안에 살고 있다. 여인은 표정보다 몸짓으로 자신의 말을 전한다. 그녀는 상자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이내 그곳에 익숙해진 모습으로 존재한다. 모호한 동작 속에서 보이는 조심스런 감정들은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느껴진다. 상자 안의 여인이 감정은 표출 하지 않음에도 절제된 행동으로 의미가 전해지듯, 진혜주 역시 작품으로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를 건넨다.

 

She...그녀...

여성의 곡선형 인체는 그 자체가 예술이라고 불리 울만큼 역사 속에 오래전부터 언급되어 왔다. 복잡다단하며 미묘한 여성의 감정선 역시 여성이 지닌 고유한 특질로 인식되어진다. 표현하기 어려우며 정의하기 까다로운 여성이라는 존재, 그들의 삶을 작가 진혜주는 자신의 작품 속에 그려낸다. 그의 작품에서 먼저 느껴지는 감정은 처연함이다. 그것은 과다한 슬픔이 아닌, 작품의 색처럼 절제된 감정이다. 상자 속의 여인은 그 안에 갇힌 것에 슬퍼함과 동시에 안주해 있는 듯하다. 어찌보면 기괴한 형태의 몸동작들은 이상하다는 느낌보다는 여인이 상자 모양에 자신의 몸을 맞추며 상자 속 인생과 타협해 가는 모습들로 보여 진다. 그것은 또한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균형을 잡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연상시킨다. 이렇듯 그의 작품 속 여인은 자아를 지닌 채 살아있고, 진혜주는 여성을 주제로 그러한 여인들의 삶을 대변한다. 작가는 “예전부터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수필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러한 것들이 저의 정서적 배경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인데 그런 소소한 것들이 쌓여 ‘여성’이라는 대상에 관심을 가지게 됐던 것 같습니다.”고 말한다.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개인적 경험과 그가 만난 수많은 여인들의 삶을 농밀한 감성과 함께 덤덤한 어투로 풀어나간다.

 

일본-한국-미국으로 이어진 흙과의 인연

미술을 시작하게 된 것은 집안내력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머니와 이모 두 분 모두 미술을 전공 하셨기에 진혜주는 어렸을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이후 아버지를 따라 살게 된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도자기를 접하게 된다. 그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일본식 도자기에 마음이 끌렸고 흙이라는 매체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고등학교 때 한국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흙으로 필통을 만들어 보게 됐다. 처음 만져본 흙은 촉감이 좋았고 누르면 누르는 형상대로 변하는 물성도 신기했다. 흙으로 무엇인가 만들고 또 그것이 완성되어지는 희열을 맛보게 된 뒤, 서울여대 공예학과에 진학했다. “대학교 재학 당시에는 작업에 대한 고민 보다는 그저 흙으로 무엇인가 만든다는 기쁨이 컸습니다. 그러다 졸업 후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다 다시 흙을 선택하게 됐습니다.”고 말하는 그는 홍익대 일반대학원 도예과를 진학,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학원 재학 시절 그는 다양한 삶속의 경험과 여러 단체전 참여를 통해 작업의 지경을 넓혀갔다. 특히 2007년 미국 롱비치 대학과 2008년 알프레드 대학에서의 여름학기를 경험한 것은 자신만의 작업색깔을 찾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미국에서의 여름학기 도중,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자신의 작업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를 만나게 된다.

 

영향을 받은 작가들

미국에서 루이스 부르주아의 전시를 접한 뒤, 진혜주는 그의 주된 작업 주제인 ‘여성’에 대해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그는 “부르주아의 작품을 보고 한동안 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특히 글과 함께 전시된 드로잉 작품을 보고 작가의 삶과 여성이란 존재의 슬픔을 느껴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고 털어놨다. 오늘날 고백 예술confessional art의 창시자로 인정받고 있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은 추상적이지만 인간의 형상이 보임과 동시에 걱정과 외로움 등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부르주아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진혜주의 작품 또한 자신의 경험을 통한 감성적 표현의 결과물이 된 것이다. 그가 영향을 받은 또 다른 예술가는 독일 표현주의 무용의 선구자인 마리 뷔그만Mary Wigman 1886-1973이다. 뷔그만은 ‘몸’을 이용, 세밀한 움직임과 동작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표출시켰다. 뷔그만의 작품에서 감정 표현기법의 영감을 받은 진혜주는 상자 속의 여인의 모습을 다양한 몸짓으로 그려냈다. 이밖에 중국의 전족과 하이힐을 연결하고 여성의 몸을 표현한 이정윤 등 여성의 인체와 감정들을 그려낸 여류작가들로부터 느낀 상상력과 원동력은 그의 작품세계를 구축하는 배경이 된다.

 

주인공 ‘그녀´로 부터 떠오른 영감들

진혜주의 주된 작업방식은 핸드빌딩과 도판작업이다. 형태가 완성이 되면 초벌 후 연필, 콘테 등으로 드로잉을 한다. 드로잉을 그리고 문지르고 지우는 것을 자신이 생각하는 느낌의 형태가 나올 때까지 거듭한다. 그로인해 그의 작품은 콘테의 부드러운 색감과 동시에 금속과도 같은 질감이 느껴진다. 대학원에 처음 들어갔을 무렵, 진혜주는 하이힐이란 주제를 선택해서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여자의 신체와 하이힐을 결합시킨 작품을 만들며 여성의 인체를 본격적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작품은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한 슬픔이 작용, 색은 빠지고 형태는 더 단순해진 상자의 모양을 갖추게 됐다. 그는 첫 개인전‘She’ 2010.6.18~7.1 소노 팩토리에서 「In her Box」시리즈를 선보였다. 상자 모양의 작품 안에는 각각의 주인공인 ‘그녀She’가 있었다. ‘그녀She’는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 아는 아주머니 또는 그에게 인상을 깊게 남긴 여자들 이었다. 관람객이 더 깊이 작품을 이해하도록 작품의 여주인공에 대한 이야기, 또는 영감들에 관한 글을 각각의 작품과 함께 소개했다.

 

박물관을 나오는데 후두둑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온통 하얗게 쏟아졌다.

이러다가는 약속시간에 맞추지 못할텐데...

갑자기 쏟아지는 하얀색 여름비 향기는 아주 오래된 기억까지 불러온다.

11살 소녀 앞에 여인과 기린과 여인의 아버지가 나타났다.

가느다란 목소리의 여자는 쉬지않고 그녀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소녀는 희미한 소리에 깨었다가 그녀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여인이 많이 울어서 밤이 온통 하얘졌다가 소녀는 이내 잠들었다.

언젠가 그녀의 아버지가 사주시기로 한 기린이 빗속을 지나간다.

-작가노트 #1-

 

진혜주는 오는 0월00일부터 0월00까지 서울 미엘 갤러리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지금과 같은 색깔을 유지하지만 좀 더 몽환적이며, 이야기가 풍성한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글도 계속적으로 작품과 함께 써가고 있다. 그는 “물론 작가는 작품으로 이야기를 하지만 글을 통해 저의 감성을 더 가까이 느끼길 바라고 이것 또한 하나의 표현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한다.

 

젊은 여성작가 진혜주가 그려내는, 마치 한 일생을 다 보낸 여인의 삶의 회고록 같은 작품은 시대관습에 갇혀 살아온 우리 어머니들의 삶이며 또한 딸들의 삶, 슬프지만 아름다운 여자의 삶에 대해 말하는 듯하다. 장식적인 요소도 없이 가만히 멈춰 있는 듯한 상자 속 ‘그녀she’안에 엿보이는 세밀한 열정들은 삶에 대한, 또 좋은 작품을 향한 작가의 숨길 수 없는 열정이기도 하다. 도예가는 따뜻한 감성을 전하는 것이라고 믿는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그러한 감성들이 흘러가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독일의 하얗게 내리는 빗속에서 만난 기린에 대한 환상을 얘기하는 작가 진혜주는 세밀한 여성성을 지닌 작가 그리고 ‘그녀she’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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