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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9월호 | 작가 리뷰 ]

권영식 Kwon Young Shick
  • 편집부
  • 등록 2011-11-30 11:53:23
  • 수정 2011-11-30 14: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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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가치를 찾아서

최  건 한국도자사가

 

습관, 그리고 낡은 가치
누구나 다 알고 있다시피, 습관이란 오랫동안 다듬고 길들이고 익숙해진 몸의 일부와도 같아서, 제작자의 경우 습관에 젖어들면 효율성과 안락함이 보장되어 좀처럼 벗어날 수도 없고 또 벗어버리려고 하지도 않게 된다. 물론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 많은 시행착오를 이겨내는 노력과 이성적 분별력, 그리고 그에 따른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번 습관이 자리 잡게 되면 이내 몸에 익숙해지고 숙련된 기술과 관행적인 모방을 되풀이 하면서 속도가 붙게 되는데, 점점 가속도가 높아져 정점을 향하게 되면서부터 갈수록 그 힘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제작자에게는 익숙해진 습관이 주는 안락함은 벗어버려야 할 낡은 가치로 여겨지며,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의지를 처음부터 무력화시키고 안락함 속에 맴돌게 하는 장애요인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환경과 제작 요소들
권영식의 작업은 익숙해진 습관의 틀을 벗고 새로운 가치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사십 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져 온 변화였으며, 제작자로서 교육자로서 생활인으로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받아들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권영식의 경우는 주변 환경이 어떻게 바뀌던지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연스런 수용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특성은 작가의 타고난 심성心性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감내하면서 조용한 미소를 담은 특유의 표현방식도 예측하기 어렵게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적응하면서 자리 잡게 된 표정이었을 것이며, 끊이지 않고 부딪쳐오는 낯설은 변화와 충돌하지 않고 너그럽게 감싸 안으려는 특유의 수용방식도 어느 틈엔가 권영식의 성정으로 굳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인격 형성에 중요한 요소로 등장해 있다. 
권영식은 해방과 한국동란의 혼란시기를 고향 제천에서, 빈곤을 벗기 위한 산업화운동의 6-70년대를 대학과정과 산업도자 생산현장에서, 그리고 한국사회 전반이 안정되기 시작한 80년대 중반부터 오늘까지 대학교육의 담당자로 임하면서, 그때그때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작업의 형식은 물론 내용에까지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면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여 왔다.
여기서 ‘새로운 가치’란 생동감과 신선한 기운으로 창조적 영감을 주는 것으로 새롭고 또 새로워서 온몸에 전율이 오는 감동을 주는 에너지의 실체를 가리키며 내용을 의미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 내용은 동적이어서 쉽게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 수 있지만 형식은 정적이어서 쉽게 변하지 않는 성질을 갖고 있다.
형식의 이러한 성질은 내용이 활성화 되면서 새로운 가치 개념으로 변화하게 되며 그때까지 유지하고 있던 자신의 틀을 깨고 변화된 내용에 맞추어 새로운 형식으로 변모가 불가피해 진다. 내용은 새로운 형식을 갖게 되고 낡아서 쓸 수 없게 된 형식은 폐기되어 버리는데,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작품은 종래와 다른 ‘새로운 가치’를 찾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작품의 여정들
권영식이 발표한 대학졸업 후 70년대 후기 작품은 산업도자의 현장이라는 특수한 현실에서만 실현 가능한 것으로, 고품위의 재료를 이용한 물체 본연의 존재방식에 대한 탐구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여기 사용한 물수건은 White Slip을 쉽게 흡수하여 형상을 유지할 수 있는 올이 성글고 굵은 투박한 섬유로서 본차이나라는 고품위의 점토를 흡수했을 때 나올 수 있는 기묘한 효과를 이용한 작품이다. 물론 이 경우 물수건을 의식적으로 조작하지 않고 무념의 상태에서 던져 놓은 듯한 모습에서 물성物性을 발견하는 데 의미를 둔 것 같이 보인다.
물론 이러한 계획된 일련의 오브제 작품들은 산업도자의 현장이란 특수 상황과 그 안에서 그가 발견한 실현 가능한 소재의 조작에서 이루어 질 수 있었던 것이다.
80년대 후기 작품은 내용과 형식에서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산업도자의 현장을 떠나면서 익숙해 있던 특수 재료와도 멀어졌을 뿐 아니라 대학교육 일선에 서면서 몸과 마음과 내용과 형식의 조정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조정기간에 작업의 방향은 기존의 틀을 깨고 ‘거듭나기’였다. 1987년 1회 개인전에 출품한 철옹성鐵甕城을 깨고 나오는 소년상은 그래서 의미가 깊다. 소년의 단호하게 꾹 다문 입과 굳세게 밀어내려는 팔 다리에서 나오는 역강力强한 힘은 오랫동안 다지고 다짐해왔던 ‘거듭나기’를 향한 외침으로 추측된다. 상징적인 두툼한 연꽃과 태아의 형상을 비운 자궁을 연상시키는 일련의 작품들도 그러한 ‘거듭나기’와 ‘새로운 탄생’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때마침 다소 늦은 큰딸의 잉태와 탄생도 80년대를 지나는 권영식의 심상心象에 신묘한 기운을 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숨김없이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에 형식을 구성하는 제작방법은 산업도자 현장의 기법을 응용했다고 권영식은 말하고 있다. ‘점토틀 뜨기(점토몰드성형)’라고 이름붙인 그가 창안한 기법은 전후 양면성을 갖는 마치 부조풍浮彫風의 화강암 조형작품을 연상케 하는 성형기법으로, 작가는 입체적 작품 제작에 늘 이 기법을 이용하고 있다.
90년대 전반 2회 개인전은 ‘젊은 영혼을 위한 기념비’라는 제하에 추모비를 연상시키는 일련의 작품들이다. 단순한 선과 면의 추상적 요소로 구성된 이 작품들은 구체적 내용을 상징화시킴으로서 심상을 표현했던 기존의 형식을 버리고 새로운 형식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권영식의 작업 방향이 구체적 내용을 상징화하고 새로운 구성으로 관객의 호기심을 이끌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등장하는 모든 조형적 요소들은 어느 정도 구체성을 가질 필요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후에 작업에는 기존에 방식과 새로운 추상적 표현방식들이 서로 융합하면서 추상적 상징성을 갖는 오브제로서 나타나게 된다.   

초로에 접어들면서 새삼 자연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비단 권영식만이 아닐 것이다. 90년대 후반의 작업 방향은 새롭게 발견한 자연의 신비감에서 시작하여 외경심畏敬心에 이르는 과정을 표현한 것으로, 여기서 작품의 제작주체인 권영식의 환경과 구체적 사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던 기존에 방식을 벗어 버리고 그 빈자리에 관객을 등장시켜 자신이 오랜 동안 생각하고 느껴왔던 자연과의 이야기를 풀어가려 하고 있다.
권영식의 작품을 보면 그 안에 표현되어 있는 자연이 일상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는 마음속의 자연이라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된다. 등장하는 자연물들은 작품의 틀인 무대 위에 오르면서 원래 의미를 벗어난 선택된 오브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고, 다시 이들은 동일 공간 안에 자리 잡은 전혀 다른 세계를 연상시키는 또 다른 오브제들과 함께 융합하면서 관객들이 과거에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상상의 공간을 창출해내는 배경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하고 있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갖가지 모습의 새와 패각류와 초목들, 그리고 인체로부터 분리되어 무한의 상상과 연상 작용을 부추기기에 적합한 오감五感의 감각기관 조각들은 좁은 무대 위에 올린 의미 깊은 소품으로 강력한 메시지의 배경이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일부 내용이 생략됩니다. 월간도예 2011.09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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