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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7월호 | 작가 리뷰 ]

Suh Kyu Churl 서규철
  • 편집부
  • 등록 2011-09-05 14:58:44
  • 수정 2011-09-07 09: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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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감에 스미는 찻사발

대구시 도평로 51길을 따라 동구 도동에 다다르면 불로천과 관음사가 위치한 곳에   서규철(66)의 작업실이 보인다. 차실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선반위에 촘촘히 쌓여있는 찻사발과 발 디딜 틈 없이 바닥에 꽉 들어차 있는 다양한 도예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뒤편에는 측백수림(천연기념물 1호, 향나무 일종)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바위틈새로 데롱데롱 군락을 이루고 있어 주위는 늘 숲 향이 은은하게 풍긴다. 그래서 작업실의 이름도 ‘향산도예’이다.

제2의 인생으로 선택한 도예
서규철은 1965년 영남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ROTC학생군사교육단 7기로 임관, 군복무 후 대구 대중공업고등학교 교사로 입사해 1978년부터 2008년까지 30년간 교직에 몸담았다. 또한 고교 시절 1년간의 빙상선수실력(스피드 스케이팅)을 살려 피겨 스케이팅 국제심판 및 대한빙상경기연맹 피겨 심판, 대구빙상연맹 부회장으로도 30여 년간 일했다. 김연아 피겨 선수의 국내, 국제 경기 심판을 봐왔을 정도로 당시 국내 피겨 심판으로서의 입지는 상당했다. 이후에도 수영, 스키, 골프 등 젊은 시절 주로 예술 분야 보다는 운동 쪽에 관심이 많았던 그였다. 하지만 퇴직 후 운동으로 제2의 인생을 설계하기에는 생산적이지 못했고 무엇인가 부족했다. 그러던 차 1999년 대구공업대학 도예과 방학 특강으로 도예 수업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됐고 직접 찾아가 김기택 교수로부터 첫 도예 수업을 들었다. 이후 단국대학교 강진도예연구소에서 제 1,2,3기 동계, 하계 계절대학을 수료하며 박종훈 단국대학교 교수로부터 사발 제작기법과 그에 담긴 정신을 배웠다.

 

불과 이야기로 빚어낸 찻사발
서규철은 2006년 8월 대구 동구문화체육회관에서 자신의 첫 번째 개인전을 가졌다. 찻사발을 비롯해 다양한 다기셋트 작품을 선보인 그는 첫 전시에서 모든 작품이 판매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하지만 대부분 안면이 있는 지인들이 구매를 했기에 작품의 결과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에는 어려웠다. 그의 두 번째 개인전은 올해 5월 대구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열렸다. ‘연蓮, 흙에 피어나다’를 부제로 한 전시에는 분청사기, 진사, 백자 등 장작가마에서 무유번조로 완성된 50여점의 찻그릇을 선보였다. 2회 개인전에서도 대부분의 작품이 판매가 됐지만 구매자는 대부분 그와 처음 대면한 일반인들이었다. 단순히 그의 이름을 보고 구매한 것이 아닌 작품이 마음에 들어 구매를 한 것이다. 비로소 그는 점점 자신만의 특색이 갖추어진 찻사발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울긋불긋한 검붉은 색감이 자연스럽게 그을려져 마치 뜨거운 가마 속 기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한 느낌의 「향산 사발」은 그만의 트레이드마크다.
서규철은 자신의 찻사발이 완성되기 위한 중요한 요인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첫 번째는 성형과 발색, 불심의 궁합이다. 이 중 불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작품 완성을 위한 성형과정 중 자신의 손이 해 내는 일은 10%밖에 안 되며 나머지 90%는 불이 완성한다고 말한다. 그도 그런 것이 장작가마에 작품을 구워내면 보통 10개중 9개는 깨어버린다. 조그만 결점도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작품에 대해 냉정하다. 두 번째로는 스토리텔링이다. 단지 작가의 이름값으로만 팔려나가는 사발이 아닌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그 안에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조선인이 만든 일본의 국보 「정호다완」에는 과거 조선과 일본 에도막부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며 “국보가 된 데에는 그런 스토리들이 힘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잘 짜여진 스토리텔링이 담긴 그의 찻사발은 단순한 이야기뿐만이 아닌 다른 여러 감각기관, 즉 시각, 청각, 촉각의 오감을 자극함으로써 사람들이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는 현재 자신의 작업실에서 사발을 공부하는 수강생들에게도 작업을 진행할 때 작품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라고 말한다. 그저 잘 만들어진 도예 작품으로 이야기 되거나 과거 도자 유물의 재현으로 생각될 수 있는 부분이 이러한 스토리텔링으로 인해 자신만의 작품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태토는 주로 진분홍색 고령토를 즐겨 사용한다. 자연스러운 붉은 색을 내기 위해서는 그만한 흙이 없다. 흙을 구하기 위해 틈만 나면 트럭을 몰고, 주로 경상도 지역의 가야, 산청, 고령, 성주 등지를 돌아다니며 흙을 직접 캐서 수비해 사용한다. 또한 그는 “사발 제작 방법은 일종의 공학을 적용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흙은 재료공학이고 불은 열역학, 유약은 유기화학이다. 유약을 바를 때에는 비중계로 측정해 농도의 정도에 따라 색감을 체크하고, 불을 땔 때에는 세기를 달리해 작품의 차이를 살펴 번조일지에 정리한다. 유약은 주로 반투명 계열 유약으로 콩깍지 재와 오래된 연밭 흙을 이용해 만든 유약을 사용한다.
그는 2년 전부터 고향인 대구로 내려가 작업실을 차렸고 오랜 시간의 교직생활이 몸에 베인 탓에 10년간 익힌 도자기술을 알려주고 나누고 싶었다. 어디서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가 소문을 내기도 전에 일반인들이 먼저 하나 둘 작업실을 찾기 시작했고 그는 18명의 인원을 수강생으로 받아들였다. 학교 선생을 비롯해 신부, 의사 등 수강생들의 직업도 다양했다. 그렇게 수강생들과 함께 말동무가 되어 즐겁게 흙작업을 해나갔고 올해 열린 제12회 사발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서현주를 비롯해 다수의 수강생들이 입상했다. 그는 자신의 자랑거리라며 “모두가 열심히 한 덕분에 뜻밖의 결실을 거뒀다”고 말한다.

 

일부 내용이 생략됩니다. 월간도예 2011.07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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