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삶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도예가가 있다. 삶에서 얻는 소소한 감성, 유희적 이미지들을 항아리 위에 얹기도 하고, 오브제로 표현해내기도 한다. 문학작품에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화자가 있기 마련인데 도예가 전창현은 흙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을 유머러스하고도 넉살스럽게 이어간다.
발자국을 남기며 유유히 걷고 있는 말, 항아리 전을 우걱우걱 뜯어먹고 있는 말 등 전창현의 작품에는 예상치 못한 말의 행각들로 가득하다.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먼저는 그 유쾌한 회화적 내러티브에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후에는 작품의 전통적 형태와 말, 집, 호랑이 등의 미적요소 간의 묘한 어울림에 대한 완성도에 놀라게 된다.
계명대학교에서 도예를 전공한 전창현은 지난 세 번의 개인전을 통해 작업을 선보여왔다. 첫 개인전에서는 3년여 기간에 걸쳐 제작한 말 오브제 50여점을 선보였는데 이것은 최근 작업인 기器에 어미 말과 아기 말이 올려진 것의 근간이 되었다. 두 번째 개인전의 주제는 말의 말Horse Story, 어미말의 아기말, 말馬의 말言 등 언어가 가지는 다의성多義性이 하나의 작품으로 모아지는 효과를 기대하며《말의 말Horse Story》로 정했다. 여기에는 다양한 의미로 확장되는 담론이 담겨져 있었다. 용用과 미美의 조화를 고려해 앞서 선보인 말 오브제를 ´이야기story´로 확장시켜나가기 시작했다. 세 번째 개인전에는 말과 함께 호랑이를 새롭게 등장시킴으로 기존의 것에 더 흥미롭고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전개했다.
그가 말馬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신문에서 우연히 접한 ‘고구려 고분에서 출토된 철마군단 사진’에서 강한 인상을 받으면서부터다. 이후 말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던 중 몸집은 왜소하지만 강건한 조랑말을 발견하게 되면서 고구려인의 말과 조랑말을 접목한 새로운 말을 탄생시켰다. 전창현의 작품에는 유년시절의 유쾌함이 묻어있다. 어릴 적 못 말리는 개구쟁이, 골목대장이었던 그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가재, 개구리, 물고기, 도롱뇽 등을 잡으러 다녔다. 잡은 도롱뇽을 아파트의 물탱크에 넣어 키우다 이웃 아주머니에게 들켜서 혼쭐이 난 적도 있다. 이후 초등학교 4학년 미술시간, 찰흙으로 만든 공룡을 선생님께서 칭찬해 주시며 복도에 전시해 주셨다. 복도를 오가는 친구들이 그 작품에 관심을 갖는 것이 당시 그에게 무척 흥분되고 유쾌한 일이었다. 그저 뛰어놀고 뒹굴고 밟는 ‘대지’로서만 존재했던 흙이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 왔으며 ‘도예가로서의 삶’이라는 작은 씨앗이 마음에 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작업에 소다가 첨가된 장석유(카본트랩시노), 장석이 80% 이상 함유된 장석유를 사용한다. 장석유만의 독특한 변화와 색감이 매력적이라고 한다. 작업 초기에는 고화도의 융점, 태토와 유약의 수축계수 차이, 가마가 식는 온도 등에 예민해서 실패를 거듭하기도했다. 정교하게 성형한 기물이 고화도를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려 한 가마 전체를 망치는가 하면 초벌까지 멀쩡하던 작품이 재벌 후 가마에서 꺼내는 순간, 작품의 80%가 금이 쩍쩍 가서 못 쓰는 폐기물로 변하는 좌절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장석유의 아름다운 색과 질감은 그로 하여금 연구와 실험을 멈출 수 없게 했고 결국 반복되는 시행착오와 실험 끝에 본인만의 안정된 유약을 얻을 수 있었다. 손끝이 가는대로 순응하는 흙이 매력적이라 말하는 그는 자신의 작업과정에 대해 “자유로운 성형을 위해 흙의 굳기는 무척 중요한데 조금 무르거나 또 반대로 조금 단단해 제가 원하는 형태를 만들 수 없어요. 그 예로 <말과 항아리> 같은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항아리를 물레차서 굽을 깎을 수 있을 때까지 건조시키면 전이 먼저 꾸덕꾸덕하게 마르고 목은 조금 촉촉해요. 그러니 전을 목까지 찢어내는 자연스러운 느낌을 표현하려면 쉽지 않아요. 그래도 자연스럽게 찢을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 있어요. 그 순간을 찾아내서 조심스럽게 또는 과감하게 표현할 때 매우 긴장되곤 합니다.”라고 말한다.
일부 내용이 생략됩니다. 월간도예 2011.04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