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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 Kwan-Ho 우관호
  • 편집부
  • 등록 2011-05-13 10:53:05
  • 수정 2011-05-13 13:3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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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한국의 도예적 표현의 작법作法

이시자키 야스유키石崎泰之
일본 야마구치현립 하기미술관 우라카미 기념관 학예과장日本山口縣萩美術館·浦上記念館 學藝課長

 

천정에서부터 늘어뜨려져, 다다미 네 장 반의 다실공간을 가득 채운 약 5,000여 개의 작은 인형의 머리는 어렴풋이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인형들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좋지 않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물건인 인형 본래의 사랑스러움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한 때는 사이키델릭했었던 것이 퇴색된 것 같은 차가운 색조가, 오랜 시간이 지난 듯한 리얼리티를 더하고 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작은 머리들이 움직이고 있는 수많은 시선의 끝에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잔영이 비춰지고 있는 것 같은 한편, 격심한 고통을 머금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등의 부족한 지식과 경험을 짜내는 상상의 시간을 계속하였다. 결국 그것은 다다를 수 없는 비밀의 유적에 가까워지는 것과 같은 느낌과 한 장밖에 없는 종교화를 주시하는 태도와 비슷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홍익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우관호는 표현으로서의 도예의 방법을 탐구하는 연구자이면서 동시대적 사고와 감각을 근본으로 하는 도예적 조형을 추구하는 표현자의 한 사람이다. 그는 지금까지 현대사회의 다양한 위상에 걸쳐 있는 인간의 삶을 꿰뚫는 통찰을 인스톨레이션의 수법을 사용하여 다원적으로 작품화하였다.
전통적 일본공간의 한 전형인 다실에, 이 글의 앞머리에 거칠게 서술한 내용들을 전개한 것이 본 미술관의 아티스트 기획전인 <우관호의 다실-인간이라는 것>2010년 4월 3일~ 2011년 3월 21일, 야마구치현립 하기미술관이다.
우관호는 여러 차례 같은 종류의 형태를 집합체화하여 표현하여 왔으나 특히 최근에는 기존의 사물들을 슬립캐스팅으로 성형하는, 다시 말해 틀에 의한 ‘물건’으로 제작함으로써 복제의 이미지가 강하였다. 그러나 한편 틀에 의한 ‘물건’은 슬립에 혼합한 색의 변화와 틀에서 뽑아내었을 때의 부드러운 상태에 힘을 가한 변형에 의해 규격화된 조형이라는 의미에서의 모조품이나 양산품과는 다른 개별성이 각각의 형태에 불어넣어졌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복제의 이미지의 가운데 엿보이는 약간의 차이. 이러한 획일화되지 않은 감각에 개성이 겹쳐져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인형들의 인스톨레이션이 피력하는 것은, 예를 들어 인종과 민족, 부족, 국가, 부부 등에 의한 혈연과 지연, 신앙 그리고 국가, 기업, 단체라고 하는 제도와 계약 등에 의해 성립되는 각각의 집단 내에서의 개인생활과 서로 같은 삶을 영위하는 여러 가지 레벨의 사회 속에 있는 보다 거대한 존재와 보다 작은 존재와의 관계성을 묻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부연하자면, 이 작품은, 겉으로는 서로 닮은 하나의 집단내부에서의 개인간(말하자면 보다 작은 집단간의)의 사상과 주장의 대립이나 적응이라고 하는 동적인 상호작용이 특정 개인의 행동과 행위에 끼치는 영향의 지대함과 이와는 별도로 그것과 거슬리는 것이 집단전체의 의지를 방향 짓게 하는 것을 동시에 재인식하게 하는 구조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조형사고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현대의 한국에서, 1970년대 말 부터 80년대에 걸친 대학 재학 당시 반복되는 정치의 폐색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격렬하게 몸을 던지면서, 또한 급격한 사회의 변화 속에서 와해되는 전통에 경모의 뜻을 안고 있는 세대의 특징적인 것인가? 오랜 기간 군사적 긴장감을 강하게 받아 온 사람들의 심정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로서는 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그러나 현대 일본의 동세대 가운데서 이렇게까지 절실한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존재할까? 그의 작품은 개인의 존재와 개성이라는 인식이 단지 자신의 깊은 내면의 탐구에만 기울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일본의 사변적인 조형표현과는 명확하게 작법이 다르다. 자신이외의 것에도 자신을 투영시켜 보는 것이 가능한 사회의 건전함, 젊음을 현대의 한국은 아직 잃어버리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관호는 개인의 심정의 구체화를 극한까지 깎아 낸 복제를 집합하여, 거꾸로 동화시켰으며 깨달을 수 없는 개인의 존엄에 빛을 더하여 개개의 존재와 집단과의 관계를 선명하게 대비시켰다. 이 작품은 그만이 가진 경험적인 강력한 조형사고에 끌려들어가게 하는 것은 물론, 다실 공간에서의 행위의 본원적인 의미, 특히 끽다에 기울이는 인간 심성의 간절한 곳을 건드리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일부 내용이 생략됩니다. 월간도예 2011.03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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