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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2월호 | 작가 리뷰 ]

내면의 언어가 존재하는 공간 - 방창현 Bang Chang Hyun
  • 편집부
  • 등록 2011-02-10 10:35:26
  • 수정 2011-02-10 12:5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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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희 본지기자

 

의식이 미처 닿지도 못하는 깊은 영혼의 공간. 그 안에 펼쳐진 감정의 그물은 여전히 치워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그물의 움직임은 때로는 잠잠한 듯 때로는 꿈틀거리며 깊이 내재된 비원이라는 공간을 기어코 비집고나와 이내 영혼의 모든 영역에 침범해 덮어버릴 기세로 몰아치기도 한다. 봄이 지나고 여름, 가을이 가고 겨울이 다시 찾아오기를 반복하며 흐르는 시간의 강물 저 아래 침전된 트라우마의 그물. 그로 인한 영혼의 유리함은 계수되고 그 눈물은 병에 담긴다.
작가는 흙이라는 질료를 통해 ‘건축물과 동물 오브제의 조합’이라는 예술언어를 사용해 내면의 퇴적층을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걷어낸다. 동시에 ‘언어’라는 질료를 이용해 그것을 탄탄하고도 구체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작품을 완성해낸다. 이 두 가지 질료는 방창현에게 있어 익숙한 ‘표현의 수단’이면서 결국은 ‘치유healing’의 도구이기도 하다. 

방창현은 직선과 사각면으로 구성된 건축물을 만들고 그 위에 돼지라는 동물 오브제를 얹어놓음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주로 보여준다. 흙으로 빚어진 방창현의 건축물은 작가가 몸담고 있는 공간을 의미하며 물리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이전의 경험에 대한 기억과 감정이 부유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이것은 이성적인 사유들이 배제된 오직 트라우마에 의한 감정과 심리적인 언어만이 존재하는 ‘밤’을 말하며 낮에는 망각했었던 자신의 트라우마, 무의식적으로 침전되어 온 불안, 고통 등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실체를 드러내며 유리하는 시간, 공간인 것이다. 그 위에 존재하는 또 다른 ‘오브제’-의인화시킨 ‘작은 돼지’는 몸 언어를 통해 작가의 감정을 전달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3월,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2010.3.24~3.30 인사아트갤러리>는 미국에서 가진 네 번의 전시에 이은 다섯 번째 개인전으로 작가가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에 엄습해오는 불안과 심리적 고통을 건축물과 동물 오브제 돼지에 이입시켜 드러낸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 중 온 몸에 꽃문신이 새겨진 돼지 오브제는 마치 지워지기가 불가능하듯 존재를 덮어버린 문신을 통해 과거의 상실감과 두려움의 깊은 상처의 흔적이 내면에 깊이 뿌리내려져 있음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블루, 그린 계열의 건축물에 흰 색상 혹은 화려한 꽃이 전사된 돼지들이 존재하는 기존의 작품과는 조금 다르게 작가의 최근 작업에서는 화려한 꽃문신이 건축물 전면으로 옮겨진 것을 찾아볼 수 있다.
20대 중반까지 소설가를 꿈꿨던 작가는 경희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던 도중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때마침 터진 IMF의 영향으로 계획했던 유학과정을 모두 마치지 못한 채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대학교 복학 이후 영문학과 함께 도예를 복수전공하게 되면서, 작가는 이전에 ‘글text’로 표현해내던 자신의 내면과 의식을 ‘흙clay’이라는 대체되어진 질료를 통해 함축적으로 전달해내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뉴욕주립대학교State Unversity of New York at New Paltz 대학원에서 도예학 석사를 마친다. 대학원 재학당시 미국 도예전문잡지 ‘아메리칸 세라믹스 매거진American Ceramics Magazine’ 연구기자로 활동하며 세계 도예계 현황과 소식들을 다루고 접하는 기회를 가졌고 졸업 후에는 뉴욕주립대학교State Unversity of New York at New Paltz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는 분당구 수지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흙작업을 하며 경희대학교 도예과에 출강하고 있다. 가정에서는 아내와 두 딸의 가장이며 학교에서는 가르치는 선생, 낮에는 작업하는 도예가이고 오후에는 영어학원 강사까지 여러가지 역할을 해내는 작가는 ‘작업만 하고 싶다’라고 언급한다. 그러나 그는 주어진 삶 안에서 이미 풍성함을 맛보고 있는 작가이다. 다섯 번의 개인전 외에도 다양한 그룹전에 지속적으로 참여해오며 활발히 활동하는 그는 12월에 있을 공예트렌드페어 참여도 준비하고 있다.
 내면 언어를 흙으로 빚어내는 작가 방창현. 숨막힐 정도로 농축된 그만의 텍스트들은 도저히 흙으로 다 풀어지지 못한 채 단순하고 함축적으로 표현된다. 굳이 모든 것을 풀어 설명할 필요도 설명하지 않을 필요도 없다. 보는 이의 공감 영역에 따라 작가는 유쾌한 돼지 작가가 되기도, 타인의 오랜 상처를 만지는 작가가 되기도 한다.

Secret Garden
나의 의식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작은 기억의 비원이 있다. 세월의 더께위에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간 그곳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순결한 꽃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꽃들의 순결과 관능 위엔 언제나 시원의 욕망이 나부끼고 욕망은 가열한 폭력을 불렀다. 닿을 수 없었던 꽃들의 정조에 알뜰히 소외된 나의 청춘은 비린 기억과 상처로 불명의 밤을 새웠다. 셀 수없이 많은 밤이 지난 지금 그 상처의 기억과 무늬, 그리고 그 무서운 강박성은 내 기억 속에 퇴적되어 아련히 사라진 듯했지만 어느 순간 그 기억들은 내 의식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나의 일상을 마비시키곤 했다. 결국 내 기억에서 멀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것이 내가 아직도 예술을 하고 있는 절박한 이유이다.”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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