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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5월호 | 작가 리뷰 ]

하태훈 : 만개(滿開)하다
  • 편집부
  • 등록 2010-06-11 10:52:55
  • 수정 2010-07-05 16: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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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 : 만개滿開하다

한정운 통인화랑 큐레이터

결정유는 번조과정의 온도 차이에 따라 자기표면에 결정체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다. 온도와 환경의 미묘한 차이에 따라 결정이 피어나는 여부가 결정되어지기 때문에 매우 까다로운 번조방법에 속한다. 게다가 훌륭한 조합비가 있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방법을 모르면 아름다운 결정체를 얻지 못한다. 조합비와 번조방법을 동시에 찾아가야 하는 것이 결정유를 연구하는 도예가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라 할 수 있다.
결정유는 19세기에 이르러서야 그 명칭과 연구방법의 체계를 설립하게 되었다. 제조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실수에 의한, 혹은 우연에 의해 번조될 수밖에 없었던 결정유자기는 흔하지 않은 도자기였다. 방법적인 까다로움으로 인해 수많은 연구과정을 거친 결정유는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상업적인 진흥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대중화된 유약으로 자리잡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래서 소수의 도예가들이 그 길을 걷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중화된 결정유자기는 주로 전통적인 형태와 색감을 유지하고 있으며 결정과 형태의 완벽성에 부합되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하태훈 또한 결정유자기를 빚고 있는 도예가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이 일반적인 결정유자기와 구분되는 현대적 성향을 가진다는 점이 그가 가진 메리트라 할 수 있다.
하태훈은 여느 도예가가 그러하듯 어린나이에 도자에 입문했다. 도공으로서의 삶은 쉽지 않다. 절제와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인내심이 필요한 삶은 혈기왕성한 그의 피를 잠재우기에 부족했을 것이다. 그런 들끓었던 열정을 온전히 도자에 전념하게 해 주었던 것이 결정유약이었다. 열일곱 살의 소년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결정유의 아름다움은 기어이 그것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갖게 한 시발점이었다. 소년은 열정이란 이름의 자산으로 결정유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98년 경주공업고등학교 세라믹과를 졸업한 후, 대구공업대학 도자공예과 학사를 수료하였고 경희대학교 도예학과, 일반대학원 도예학과를 차례로 수료하여 졸업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뒤지지 않았다. 학업에 열중하는 와중에도 동료들보다 더 노력하여 세라믹 기능사 자격증을 수료받고 도자공예산업기사시험을 통해 자격을 인정받았다. 김해도자축제와 현대도예공모전, 이천도자공모전, 그리고 국제다구디자인공모전 등 굵직한 여러 도예대전에서 수상을 하였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꿈 많은 소년이 아닌 도예가가 되어 있었다.
이미지란 새롭게 창조된 시각으로써 대상의 외적분석보다 대상 그 자체로부터 기인한다. 이 세상에는 단순한 언어로 정의내려지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있지만 개인의 경험과 사고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한 대상으로부터 얻어지는 각자의 이미지들을 표본화된 말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하다. 즉, 이미지는 보는 이들에게 개인마다 다른 수많은 생각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2006년, 작가 하태훈이 선보인 전은 이와 같은 맥락으로써 개별적 정신과정에 기반을 두어 외적분석이 아닌 대상으로부터 나온 주관적 이미지로 시작된 작업이었다. 영글은 꽃봉오리와 만개, 낙화의 모습을 담아낸 도자기들은 형태적 상상력과 표면에 맺힌 꽃의 다양한 이미지로 결정유자기의 독특한 발상을 보여주었다. 꽃의 동적이미지에 주목하여 정적인 도자기에 표현한 유기적 곡선과 율동적인 표면의 결정은 당시 그가 집중하였던 피어나는 생동감을 담고 있다. 꽃은 예술가에게 언제나 매력적인 소재였다. 그리고 각기 다른 작가들의 언어로 다시금 훌륭한 작품들로 기록되어지곤 했다. 그는 여타의 예술가와 다름없이 꽃의 환영적인 찰나의 아름다움을 그만의 언어로 해석하여 형태의 주관적 뼈대를 건설하였고 시행착오를 거듭한 실험을 통해 발전한 번조기술로써 주관적 꽃의 이미지를 작품에 담아내었다.
2009년, 두 번째 개인전에서의 그의 작품들은 사람이미지를 구축함으로써 풍부해진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자연의 모습과 더불어 표현한 두 쌍의 부부작품 시리즈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정精과 따뜻함, 관계의 조화, 그리고 인간내면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확장된 이야깃거리들은 그의 도자기가 그저 기술적 표현의 도구가 아닌 삶과 철학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제, 그가 <2010년 Flower bloom 그리고 세 번째 이야기...전>(2010. 5.12- 5.18 서울 인사동 통인화랑)을 우리에게 보여주려 한다.
이번 전시에 그는 부부작품 시리즈와 백자투각작품을 선보인다. 한 쌍으로 묶인 도자작품은 작가가 정해놓은 ‘부부’라는 룰Rule안에서 장식된 표면처리와 형태적인 어울림으로 정겨운 느낌을 자아낸다. 이런 방식은 2006년 시작한 주관적 발상에 기초하여 2009년 시도한 확대된 표현으로 그가 바라는 인간상을 잠재적으로 표출, 결과적으로 보는 이에게 다양한 상상력을 선사한다. 감정을 배제할 수 없는 소재를 선택함으로써 폭넓어진 창조적 시각은 그가 도자기에 부여한 기술보다 어떤 측면으로는 발전적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미술이란 공예적인 면모보다 ‘창조성’에 더 높은 가치를 둔다는 것이 이에 기인한다.
그의 2010년 에서 주목할 점은 세 가지로 정의내릴 수 있다. 첫째, 부부상으로 발전한 작품들은 인간의 정서를 중점으로 두며 대상을 관찰하는 주관적 시각이 돋보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둘째, 도자기를 표현하는 새로운 접근방법으로써 투각을 선택, 인간과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이미지를 설정하여 주제를 확장한다. 셋째, 결정유의 표현은 이전보다 발전을 이룬다. 실험적으로 진행된 청자결정유자기와 이중시유를 거치지 않은 이중결정유자기는 보편화된 결정유자기와 구분되는 표면처리기법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그의 작품은 기존의 결정유자기와 구분되는 현대적인 결정유자기라 할 수 있다. 

좋은 작가는 개인의 내적 감성을 분석하여 그것에 보편적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라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술가는 자신의 감정의 이미지를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그것을 억지로 감춤으로써, 시인 기형도의 표현을 빌면 “추상이나 힘겨운 감상의 망토”를 벗지 못한다. 아직, 그는 자신을 표현하는 데 있어 서툴다. 하지만 아직 많은 세월이 남아있다. 그 수많은 세월 앞에서 10여년을 채운 하태훈은 젊은 도예가이다. 그의 절제된 발상과 미숙한 표현은 그러므로, 기대를 걸어볼 만한 부분이다. 세상에는 1%의 천재와 10%의 수재 나머지의 둔재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두 가지의 색이 동시에 융해된 하태훈의 결정유작업은 천재적인 유약감각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둔재의 노력이 천재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여타의 도공이 그러하듯 밤을 지새우며 불을 지피고, 핏발 선 눈으로 도자의 번조상태를 관찰했던 많은 시간들과 열정이 그의 둔탁한 손을 까다로운 흙을 다룰 수 있는, 복잡하고 예민한 유약연구과정을 가능케 한, 그리고 섬세한 손길로 불을 다스리는 손으로 만들었음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흙과 함께 살아온 10여년의 생활을 그저 즐겁다고만 말하는 그의 얼굴에 만개하듯 수줍은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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