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주 : 의도된 재료와 우연의 요소
김성희 본지기자
작가 임영주는 1998년 국민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대불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8회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가졌으며 무안분청협회, 서남권도자기협회, PAR, 민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무안 문화의 집과 목포생활도자박물관에서 도예강사를 맡고 있으며 전라남도 무안군 ‘토방 우후리雨後里’에서 흙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임영주(40)의 작품은 의도된 재료와 우연의 요소가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필요없는 요소는 과감히 제거하고 기대하지 않은 무언가가 나타날 때까지 오랜 시간 불과 사투한 결과다. 그에게 있어 작업의 완성은 완벽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닌 자신이 찾고 있는 이미지가 나타나길 오랜 시간 기다리는 것이다.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면 지산리. 도예가 임영주가 자신만의 흙작업에 열중하는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흙작업과의 인연
무안에서 도자기 공장을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임영주에게 도자기는 늘 관심 밖의 대상이었다. 도예가가 되겠단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에게 도자기란 그냥 기계로 찍어내는 평범한 그릇에 지나지 않았다. 1998년 국민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그는 아르바이트 겸 돈벌이로 그의 부모를 도와 요장 일을 시작했고 그것을 계기로 도자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는 잠시 경험한 후 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취직 생각은 없었고 환경생태운동이나 농사, 환경사업 등이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공장의 빈창고를 이용해 도예체험장 운영을 시작하셨고 체험장 강사에게 물레를 배우게 된 것이 전부였다.”고 말한다. 이 후 강사가 일을 그만 두면서 그가 비어있는 체험장을 도맡아서 운영하게 됐다. 물론 사업적인 수단으로 만들어진 체험장이라 돈벌이는 쏠쏠했다. 하지만 흙 맛을 본 그가 작업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작업을 찾고 싶었던 그는 체험장을 그만 두고 무안에서 승광요를 운영하는 김문호 도예가를 찾아가 도예를 배우기 시작했고 대불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예 석사를 마친 뒤 본격적인 도예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무안적토의 단점을 이겨낸 신념
2005년, 임영주는 서울 인사갤러리에서 <바위>를 주제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산에 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지금도 암벽등반클럽에서 활동하는 그는 2년 전 네팔 에베레스트 산을 트레킹으로 올랐을 정도로 산을 좋아한다. 암벽등반을 다니면서 첫 전시는 꼭 바위를 소재로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첫 전시에서 선보인 「망월암」이라는 작품은 전시 도록 맨 앞에 넣을 만큼 유난히 아끼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구매한 콜렉터는 작품에서 드러나는 표정에 대해 자신의 감정을 다양하게 얘기했고 실제로 시를 써서 그에게 선물로 전하기도 했다. 임영주는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감상자들은 자신의 언어로 작품을 평가하는 편이어서 좋은 작품을 만드는데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임영주의 작품에 담긴 내러티브narrative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스러움이다. 흙의 물성을 이용해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이끌어 내는 것이 작업의 목표이다. 작품 소재는 가까운 주위에서 찾는다. 바위와 얼굴, 굴뚝, 담장, 꽃담 등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소재를 이용해 그만의 조형성과 색감으로 작품을 완성해 내는데 특히 형태적으로는 바위를 좋아한다. 주로 바위를 매개로한 작품들을 제작해 왔고 그 질감과 형태에 매료돼 지금까지 소재로 쓰고 있다. 그의 작업에 있어 ‘재료’는 매우 중요하다. 그는 “기존의 유약과 흙을 사서 쓰는 것은 작가의 독특한 맛을 살리는데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자신의 주변 지역의 재료를 이용해 지역 색을 담은 흙작업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모든 작업과정에서 쓰이는 재료는 그가 직접 제작해서 사용한다. 흙은 무안적토를 사용한다. 무안적토는 작업실 주변 지역의 붉은 흙으로써 발색은 좋지만 사토질이 많아 거칠고 투박해 세련된 맛이 떨어지고 번조 시 깨지기 쉽다. 그러나 조합토, 산청토, 조형토 등 작업하기 수월한 흙을 뒤로하고 무안지역의 도예가로서 그 지역의 흙을 사용하고 싶어 어려운 방법을 택했다.
도자 재료와 기법의 기준을 넘나드는 시도
2006년 서울 공예갤러리 나눔에서 열린 그의 두 번째 전시는 <쓰임기>를 주제로 나무뚜껑이 덥힌 생활식기를 선보였다. 가죽나무와 느티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먼지를 흡착하는 기능과 쉽게 썩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어 도자기의 뚜껑으로 만들었다. 색감 또한 진하고 맑아서 분청이나 재유와 잘 어울린다. 그는 “당시 기물뚜껑의 재료로 쓸 나무들의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작품을 위해 가격에 집착하기 싫었다.”며 “좋은 나무를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았다.”고 전한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인근지역의 한 뿌리공예 작가의 작업실이었고 그곳에서 직접 나무를 골라내 자신의 작품재료로 사용했다.
세 번째 개인전은 2007년 서울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열렸다. <바위, 생명을 희구希求하다>를 주제로 한 이 전시는 일본 오사카예술대학 도예과 구마노 키요타카 교수와의 귀중한 인연을 맺게 했다. 임영주의 작품에 매료된 구마노 교수는 무안의 작업실을 직접 찾아와 일본에서의 전시를 제의했고 2008년 일본 오사카 갤러리에서 그의 다섯 번째 개인전을 열게 됐다.
그 후 두 번의 개인전을 더 열고 올해 1월 서울의 공예갤러리 나눔에서 여덟 번째 개인전을 가졌다. 이 전시에서 그간 다양한 번조기법을 통해 실험해왔던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 중 하나가 갑발번조다. 보통 백자, 청자 번조 시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갑발을 사용하지만 그는 갑발안에 숯과 소금, 기타 재료 등을 기물과 함께 넣어 번조시켰다. 기물 표면에는 자연스럽게 배인 연으로 다양한 색감이 연출됐다. 그는 “번조과정에서의 다양한 요변은 늘 저에게 행복감을 줍니다. 이런 재미 때문에 도예가가 된 것이 아닐까요.”라며 흙과 불 속에서 유영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현실에 적극개입하고 변화하는 작가의식
다른 전업 도예가들과 마찬가지로 임영주 또한 작가 생활이 풍요롭지는 않다. 일 년에 한번 씩 꾸준히 개인전을 여는 그는 굳이 작품을 팔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번듯한 거래처도 없다. 생활자기도 거의 만들지 않는다. 전시장엔 쉽게 살 만한 물건은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제 아내가 직장을 다니고 있어 그나마 생활비 부담이 덜한 편”이라며 작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아내에게 늘 고마워한다. 그의 고민은 항상 좋은 작품, 스스로 맘에 드는 작품을 만들지 못하는 아쉬움이다. 이 아쉬움은 자책으로 돌아온다. 그는 “도자기를 하는 사람은 도를 닦는 기분으로 자기 수양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 아직 수양이 덜 되어 있는 것 같아요”라고 겸손히 말하며 자기관리 또한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난달 27일 서울 경인미술관에서는 전각서예가 박영도와 임영주가 함께 선보인 도자전각전이 열렸다. 이는 또 다른 도전이다. “당분간 개인전보다 조각, 영상 등 타 예술장르와 꾸준히 교감하면서 새로운 작업을 하고 싶다.”며 “이 기간 동안 재충천과 새로운 공부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예술 또한 변한다. 그리고 작가는 여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행동하고 반응해야 한다. 늘 새로움을 찾아다니며 작업하는 도예가 임영주. 앞으로 펼쳐질 작업들은 그를 더욱 즐겁고 바쁘게 만들 것이다. 도자예술이라는 근간 위에서 시도되는 평범함이 아닌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그의 다음 작품들을 기대해 봐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