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초적인 유기체 형상을 찾아서 -인간중심적 이념의 회복
최병길 철학박사, 원광대학교 교수
도예가 이명순은 복제, 가상현실 등 다양한 현대문화 현상들을 부정적으로 주목하면서 먼 과거로부터 무언가를 가져다가 그 대안을 제시하려고 해왔다. 최근작은 그 두 번째 대안으로서, 그것은 ‘원시주의原始主義, Primitivism’의 표방이었다. 그 사조의 작품들로부터 형태학적 이미지를 차용하여 구축한 도조ceramic sculpture의 세계인 것이다.(이명순 개인전 12.16~12.22 한국공예문화진흥원 전시실)
그가 찾아낸 ‘원시주의’란 원시시대의 예술정신과 표현양식을 이해하고 현대미술에 접목하려는 운동이었다. 특히 19세기 말에 살았던 사람들이 극단적인 문화적 난숙으로 복잡해진 정신생활이나 권태로부터 벗어나려 했는데, 그는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에 걸쳐서도 이와 유사한 문화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목격했다. 19세기 사람들이 원시적 생명을 동경해 온 나머지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나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이 표현했던 원색적 음향을 신선하게 느꼈던 것처럼, 그도 세기말적 문화현상의 치유방안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가 최근작에서 원시주의를 표방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 예술운동의 근본취지를 검토함으로써 자신의 의도와 부합됨을 확인하는 것이었으며, 그러한 원시주의의 이미지를 재현한 작품의 탄생을 가져온 것이다. 말하자면 현대의 최첨단 기계공학과 그 문명의 범람으로 인하여 ‘원본으로부터 복제로’, ‘진짜로부터 가짜로’, ‘고급미술로부터 저급미술로’ 등과 같이 현대인의 취미가 이동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에게는 그러한 전이가 기계문명의 발전으로 빚어진 현상이며, 상대적으로 현대인의 정신, 정서나 감정의 고갈을 가져오는 원인이라고 진단한 것이다. “아무리 기계문명이 발전한다고 해도 그것의 창조자는 엄연히 인간이기에 그가 그 문명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야지 변방에 위치해 있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에 도달한 것이다. 그가 종전에 보여주었던 인체 형태를 변형한 <천사-인체> 시리즈도 그러한 이념을 구현하는 방안의 하나였다.
그렇지만 그의 최근작을 다른 각도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가 차용한 동물이나 새의 형상은 뿔과 날개인데, 그것은 원시시대 부족장이 자신의 위용, 권위나 권력을 나타내려 했던 두부 장식의 일부이다. 대지의 대표적인 온순한 초식동물 중 하나인 양이나 염소의 위엄이나 자태를 뽐내는 뿔의 형태학적 모방에 내재된 의미인 것이다. 말하자면 그가 차용한 동물의 유기적인 형상은 휴머니즘을 우의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거나 인간의 본능적인 출세 욕구나 성취 욕구를 비유적, 표현적으로 조형화 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