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이오와에서 만난 세 명의 도예가(3)
클레어리 일리언 Clary Illian
| 최석진 미국리포터, 도예가
필자는 지난 봄 아이오와주를 방문해서 코넬 컬리지의 덕 핸슨 교수의 도움으로 클레어리 일리언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4, 5년전 우연히 버지니아의 컵크릭 스튜디오Cub Creek Studio에서 그녀의 작품들을 본 후 그 도자기에 매료되어 한참 동안 작은 컵과 주전자들을 손으로 어루만져 보았었는데, 행복하게도 작가를 직접 만나 몇 시간 동안 그녀의 도자기들 속에 푹 빠져볼 수 있었다.
짙은 안개가 낀 이른 오후, 핸슨 교수와 함께 한참 동안 운전해서 이름 없는 작은 도시의 시내로 들어갔다. 설레임과 함께 건물 한쪽 끝 문을 여니, 오랜 시간이 담겨 있는 듯한 조용한 공간이 있었다. 필자는 전시대에 놓여진 하나하나의 도자기와의 만남을 아껴두고 우선 작가와 마주하고 도예가로서의 삶을 듣기로 했다.
일리언은 아아오아 주의 시더 래피즈에서 자라 아이오와 대학University of Iowa을 졸업했다. 대학에서 공부할 당시 영국에서 온 버너드 리치Bernard Leach의 강의와 워크샵에 참가했다. 리치는 20세기 초 도자기가 생활 도구로 사용되던 단계에서 예술의 한 분야로, 또 현대 도예로 정착하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한 도예가이자 문화사가이다. 일리언은 그에게서 커다란 영감을 받았다. 그녀는 1963년 대학을 졸업한 후 영국으로 가서 리치의 문하생이 되었다. 그곳에서 2년 반 동안 낮에는 주로 리치의 도자기 가게에서 판매하는 생활 용기들을 만들고 저녁 시간에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다. 일리언은 가장 표준인 도자기형태 제작방법을 습득한 후, 새로운 디자인으로 변형된 형태를 만드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리치의 수많은 도자기 컬렉션을 보며 세계의 다양한 도자 작품을 만났다. 리치와의 만남으로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66년 일리언은 고향으로 돌아와서 작업실을 열었다. 현재 위치한 곳은 그녀가 세번째로 이사한 곳으로 원래 건축 기자재를 파는 곳이었다. 도예판매점을 열고 처음에는 수제 타일을 생산하다가 머그, 접시, 차 주전자 등 여러가지 도자 생활용기들을 만들었다. 그녀는 선조의 청교도 정신의 작업 윤리에 영향을 받아 일을 하지 않으면 죄의식을 느낀다고 말한다. 40여년을 넘게 이곳에서 꾸준히 그녀의 작업실을 지켜온 것도 그 이유인 듯 싶다.
보통 고화도 점토를 주로 사용하며 가스 번조와 소다 번조를 해왔는데, 최근에는 연료의 소비를 줄이고자 저화도 전기가마 번조를 시작했다. 저화도 점토에 맞추어 테라시질레타와 마욜리카, 영국의 슬립웨어 장식 기법을 새로이 시도하고 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09년 8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