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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5월호 | 작가 리뷰 ]

이흥복
  • 편집부
  • 등록 2009-07-11 13:5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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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HEYUNG BOK

빛으로 완성되는 집합적 상징구조
| 김태완 본지 편집장

조각난 도형의 집합체 그리고 빛의 시간성
흰색 도화지에서 볼 수 있는, ‘선’이 강조된 드로잉의 이미지가 갤러리 벽면으로 옮겨져 있다. 간결한 선과 면으로 구축된 단순명료한 흰색 입방체 유니트들이 집합해 연속적으로 반복, 나열된 모습은 관람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작은 입방체 여러 조각이 일정하게 구분돼 평면화를 시도한 반입체작품으로 연결되지 않은 표면 위를 빛의 그림자가 끊어질 듯 이어가 선의 공간으로 드러난다. 마치 드로잉에서 볼 수 있는 선의 매력이다. 사각 틀 안의 육면체들은 철저히 조각난 도형의 집합체다. 이들의 반복, 순간은 전체의 반영이며 전체는 순간의 집합과 상징이라는 ‘프락탈Practal’적 구조를 상기시킨다.
세상의 모든 것이 양면성을 지니듯 이흥복의 작품들은 양각과 음각의 형태를, 차가움과 온화함의 질감을, 비움과 채움의 양감을, 빛과 그림자의 색채를 동시에 품고 있다. 상반된 음陰과 양陽은 서로 필연적인 관계로 공존함으로써 각각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인지시켜준다. 시시각각 순환하고 변화하는 빛줄기는 작품곳곳으로 흘러들어 각 조형물이 온전한 형체를 갖추게 하는 원동력이 되며, 요철의 깊이와 각도에 따라 긴장과 완화를 반복하는 시각적 효과는 멈추지 않는 역동감을 전한다. 잘 다듬어진 육면체가 품은 반입체적 공간 위, 빛의 시간성과 맞물려 하나의 소실점을 두고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것을 보노라면, 생명의 원천으로 존재하여 지속적인 생동감을 표출하는 ‘빛’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된다. 지난달 서울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열린 이흥복의 두 번째 국내 개인전에서 가진 감흥이다. 작가가 지닌 조형적 사유를 흙 재료로 풀어내기 위해 그 한계를 시도하는 그의 분명한 예술적 표현의식을 읽어낼 수 있는 전시였다.
뉴욕에서의 15년
대구가 고향인 이흥복은 대구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미국 유학길을 택했다. 학부재학 시절 모교의 미국인 영문과 교수 매가카드 박사로부터 우정장학금을 받아 온 것이 초석이 돼 미국행을 선택한 것이다. 1993년 미국으로 건너가 15년간 뉴욕 한복판에서 보낸 작가 생활은 운명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경험이었다. 혼합된 다인종의 생활습관과 경제적인 저력을 바탕으로 거대한 문화를 창출하며 세계 미술계를 주도하는 중심에 서 있었다. 다양한 성격의 상반된 논리들이 통합되어 움직이는 미국의 사회조직은 자유로운 행동을 보장하는 듯하면서 주어진 법칙에서 한치의 어긋남도 용납하지 않은 사회였다. 세계 미술시장의 블랙홀인 뉴욕의 작가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추구하며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가 하는 것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조직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표출해내는가를 고민하는 것은 직·간접적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구축하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었고 자신의 생존과도 직결됐다. 뉴욕 브룩클린Brooklyn에 위치한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대학원에 입학 후 5년의 시간은 현실생활을 버텨내기 위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한국식당을 대상으로 한 참기름 세일즈와 조간신문배달을 하며 열심히 학비를 보탰다. 남들보다 더 많은 고통을 감내하며 학업에 열중한 시간동안 예술정신에 입각한 흙 작업에 대한 기초적인 생각을 정립할 수 있었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창조적인 시각도 찾게 됐다.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의 사고를 하고, 다른 재료를 자유롭게 다루는 이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예술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흙을 주로 다루는 도예가로서 흙이라는 재료의 물성과 번조에 따른 한계에 부딪쳐 자유로운 예술적 표현에 제약을 받는 것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회화와 조각의 연장선상에서 최대한 자유로워지고 싶었고, 자신이 택한 현대도조 작업을 통해 전통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현대도자예술의 내재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도자의 본질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유학 초기, 그는 이질적 환경과 사고에 대한 어려움으로 작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졸업 후 할렘가 인근에 작업실을 구하고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단순한 방법으로 많은 작업량이 필요로 한 판성형 작업에 몰두했다. 판 성형을 기본으로 형태와 선의 크기를 단계적으로 반복하는 작품과 정방향의 흙판을 칼로 오려내 이중적으로 표면처리를 시도한 도자조각이었다. 그렇게 준비해온 작품이 몇몇 그룹전을 통해 소개되기 시작했고, 뉴욕 57번가에 위치한 비리디안 갤러리Viridian Gallary 측의 제안으로 3년간 소속작가로 계약돼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2002년 <시카고 아트페어>에서는 석고틀에 흙물을 부어 성형된 이중 흙판을 칼로 오려내 선을 통한 열림을 강조한 이중투각 작업을 제작해 벽에 거는 형식으로 출품, 현지 콜렉터들의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면서 작업에 대한 접근 인식에 변화를 겪게 된다. 회화와 조각, 판화, 도자 등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예술세계 범주 안에서 통합적으로 인식해 단지 재료로써의 흙을 바라보는 시각이 생긴 것이다.
예술가치 구축에 영향을 준 4인
이흥복의 예술적 사고에 영향을 준 인물은 네 명이 있다. 네 명 모두 미국생활 중에 만난 이들이고 모두가 한국인이다. 첫 번째 인물은 백남준이다. 1996년 대학원 재학시절 특강 강연자였던 백남준이 인간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것은 흰색이라며, 특히 한국인과 흰색에 대한 관계를 대한 시각적 견해로 설명하며 흰색이 주는 매력과 순수함, 무한가능성과 대입 등을 이론화한 것에 감명을 받은 것이다. 두 번째 인물은 1999년 미국 롱아일랜드 교환교수로 미국을 방문한 한길홍 서울산업대 교수와의 만남이었다. 당시 한교수의 제안으로 <EAST & WEST CLAY> 창립전에 참여하면서 동서양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예술정신이 무엇이며, 작업에 임함에 있어 조형적 사유와 표현의식을 순수한 이성적 판단으로 자각할 수 있어야 함을 깨닫게 됐다. 세 번째 인물은 뉴욕 스페이스 월드 갤러리 주최 그룹전에 참가하면서 인연을 맺은 작가 강익중과의 만남이었다. 강익중은 그에게 “다음시대 예술가들이 찾는 물질은 흙이 될 것이며 흙은 21세기 예술의 중심에 설 것이다.”라는 말로 흙작업을 하는 그에게 적지 않은 예술적 영감과 도전을 갖게 했다. 네 번째 인물은 통인화랑의 김완규 대표다. 당시 김대표는 뉴욕통인갤러리 운영을 시작하고, 한국 대표 도예가들의 전시를 선보이기 위해 동분서주한 시기였다. 현지에서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던 이흥복은 김대표에게 작품운송 등의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었고, 김대표 역시 해외에서 어렵게 적응하며 활동하는 한국작가 이흥복에게 조언과 독려로 더 좋은 작품을 창조 할 수 있는 참다운 예술가로 스스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한 인물이었다.

삶의 양면성 그리고 빛과 그림자
오랜 뉴욕에서의 작업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지 올해로 2년째다. 뉴욕 생활 당시 항상 그리워해온 땅과 조국이었지만 멀리서 동경해온 조국과 실제 그 속에서 작가로서 활동하며 겪는 현실은 차이가 많았다. 한국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새삼 느낀 것이다. 예술문화에 대한 외형적이고 비물질적인 것에 의한 잘못된 평가 의식이 너무나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미국생활이 현실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예술가로써 인정받고 작품을 통해 찬사까지 받을 수 있었던 것만큼은 행복했다. 물론 내 고향땅 위에서 발을 딛고 함께 호흡하며 서있는 것만큼 편하고 좋은 것은 없다. 그러나 예술자체를 사랑하는 문화 의식이 높아지지 않는 한 예술가로 이 땅에 산다는 것은 끝없이 밀려오는 허탈감과 소외감, 고독을 이겨내야 하는 인내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고 전한다. 다행이도 이번 개인전에 선보인 작품 중 두점이 (주)안국약품 사옥에 소장 전시되는 성과를 얻게 된 것이 그나마 위안을 준다.
이흥복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삶의 양면성을 깨달았고 그것을 작품에 표현한다. 그가 겪은 시간의 흐름 속에는 어쩔 수 없이 밝을 때가 있고, 또 참으로 어두워서 몸을 숨기고 싶을 때가 있었다. 흔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필연적으로 남겨지는 신의 섭리이다. 또한 흔적은 무엇인가의 비춰짐이 있을 때 그 형상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작은 점을 흰색의 흙 판 위에 찍는 것으로 시작한다. 점에서 가늘고, 단아한 선으로 열림의 조각을 한다. 즐거웠던 일, 씁쓸한 기억, 잊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경험을 흰색의 도판위에 찍고 도려내 점과 선에 담아내는 것이다. 그 속에 빛을 투영시키고 그 빛의 흔적들은 양각, 음각의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흰색의 흙 위에 자신이 살아온 시간의 흔적을 표현하고 그 위에 빛의 위대함이 더해지면서 자신이 서있는 인간세계의 밝고 어두운 곳이 나타난다. 그것이 맨하튼 할렘가 한복판에서 경험한 삶에 대한 극적 대비이든, 밝음과 어두움의 공존이라는 혼동된 마음이든, 마음편한 한국 땅에서 예술가로 사는 비애든 중요치 않다. 단지 고유한 매력을 지닌 흙이라는 재료에 한계를 지우지 않는 작가의 무한한 표현의 가능성이 중요한 것이다.
이흥복의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빛’이다. 현대미술에서 말하는 사라짐의 미학이나 보이지 않는 세계의 표현도 빛을 갖추어야 완성된다. 어떤 물체에 닿았을 때 그 흔적과 함께 존재의미를 부여받은 빛은 순수한 이성적인 판단으로만 이해가 가능하다. 그의 작품 속에 출연하는 빛과 그림자, 단순화된 선과 최소화된 형상들은 세상에 남은 기억과 흔적이다. 그것이 작가 이흥복의 예술적 사유의 실체이자 그의 작품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사진과 표가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5월호를 참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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