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주 본지 기자
도예가 권영길의 낯선 디자인은 우리에게 낯선 경험을 선사한다. 옻칠을 하고, 자개를 넣거나, 금으로 칠한 백자완에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응시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권영길의 색다른 작업을 통해 일상과 사물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발견’일 뿐 대상의 유일성이 아니다.”라는 뒤샹의 전언처럼 도자기의 확고 불변한 아름다움에 천착하는 대신 이제껏 그 재료로 거부되었던 것들을 하나 둘 불러들이고 있다.
도예가 권영길은 삼년 전부터 옻칠다완을 만들었다. 다소 생소한 옻칠과 다완의 만남이지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세련되게 표현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실험성 강한 그의 작업은 보수적인 사람들에게는 낯설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묘한 조합은 뜻밖의 균형미와 세련미에 안착한다. 권영길 작품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다양한 재료를 접목해 형태를 완성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옻, 금, 자개 등은 익숙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도자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점에서 다르게 보이거나 혹은 생소하게 보인다. 익숙한 형태의 대상, 즉 다완이나 다기에 Mixed된 재료로 새로운 이미지를 덧입힘으로써 우리의 무뎌진 감각을 일깨우고 시야를 새롭게 하는 작품들인 것이다. 그의 작품은 전에 보지 못한 미적 심미안에 눈을 뜨게 하고 전통성과 현대의 감성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근간에 작업의 부재료로 사용 중인 재료는 바로 옻칠이다. 그는 오래됐지만 충분히 좋은 것을 새로운 내용으로 바꾸는 것을 좋아한다. 그가 전에 옻을 다뤄보거나 배웠던 것은 아니었다. 옻닭도 못 먹고 옻 근처에만 가도 옻독이 오를 정도로 옻을 많이 타는 체질이다. 옻을 다루는 목공예가에게 다완을 무작정 들고가 옻칠을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마르는 과정에서 옻칠이 기물에서 뚝뚝 떨어졌다. 옻은 보존에 취약한 목재를 보강하는 데 쓰이는, 방충 방부 방습의 효과가 뛰어난 도료다. 그만큼 예민한 재료다. 부드럽고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옻이 균일하게 발리지 않으면 발색도 탁해지고 기면이 부풀거나 거칠어진다.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초칠 중칠 상칠을 해야 비로소 그 자태를 뽐낸다.
도자기에 옻을 완벽하게 칠하는 작업이나 발색, 강도, 디자인 등은 여전히 연구 중이거나 진행 중이다. 아무래도 재료를 다듬는 데에는 많은 정성을 기울이기 마련. 옻나무에서 옻을 정제하는 과정에서 옻독이 올랐다가 가라앉았다를 반복하면서 옻과 친숙해 질 수 있었다. 도자기는 한번 번조하면 단일한 색상으로 일관되지만 옻칠은 시간이 지날수록 옻 본연의 색깔이 드러나며 변한다. 옻칠의 매력은 이것뿐만이 아니지만 차차 알아갈 부분이다.
또한 권영길은 성형이나 장식기법에 있어 전통적인 방법을 우선시하지만 이에 머물지 않기 위해 다기에 자개나 금을 시문하는 등 점진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나전은 원래 나무로 짠 기물에 빛깔이 영롱한 전복 조개껍질을 갈고 문양을 오려 옻칠로 붙이는 기술이지만 그는 도자에 자개를 입혔다. 또한 경일대학교 재학당시 옻칠수업에서 금을 입히는 방법을 배웠다.
이렇게 지단한 작업과정을 거쳐 완성된 무유옻칠금박완, 백자옻칠당초문자개완 등은 많은 다인들의 사랑을 받아 지난 전시회2008.6.16~6.22 대구 대덕문화전당에는 모든 작품이 솔드아웃되었다. 자개를 박은 다완은 오색빛이 영롱하고 검거나 붉게 칠한 옻칠의 그윽한 빛은 천년의 세월을 견딜 수도 있을 것 같다. “당분간은 전통재료인 옻칠을 통해 감동을 줄 수 있는 우리 도자기를 제작해 매년 개인전을 열 계획”이라고 전했다.
도예계 데뷔 27년여 만에 그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사실 그 시작은 미혹하기만 했다. 경주공업고등학교 요업과로 진학했던 당시에는 선배들 사이에서 물레를 다루는 것 외에는 다른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무시하는 정서가 짙게 깔려있었다. 그런 정서 속에서 저학년으로써 물레근처에는 가까이할 수 없었고 고학년 소유물이기도 한 물레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갔다. 고학년이 되어감에 따라 비로소 물레를 다룰 수 있게 되어 그동안의 갈증을 실컷 풀었다.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수상을 계기로 ‘뭔가 직접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쪽을 기웃거리며 애정과 포부를 키워올 수 있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도자기가 그렇게 재미있는 일인지 그때 알았다. 도자가 나에게 꽤 잘 어울리는 옷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1900년도에 경일대학교 산업공예학과를 졸업하고 처음 공방을 연 곳은 대구 지산동. 몇 년 후 이곳 대구용계초등학교 정대분교로 옮겨와 오늘날까지 머물고 있다. 대구와 가창의 경계인 용계교를 지나 바로 우측길로 들어서면 가창댐이 보이는데. 이 가창댐을 지나 여름철 대구 시민들이 더위를 피해 많이 찾는 정대숲을 거치면 대구미술광장이 보인다. 여기에 그의 작업실이 소속되어 있다. 대구미술광장은 1994년 소규모 학교 폐교조치로 방치되었던 청도, 용계초등학교 정대분교를 대구미협회원들이 창작활동을 하는 곳으로 활용하면서 생겨난 곳이다. 야외에 설치된 미술품을 관람할 수 있고 대구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쓰여 이곳을 찾는 발길은 한가로운 평일에도 이어진다. 권영길은 지난 2000년도 레지던스작가 모집에서 치열했던 경쟁률을 뚫고 입주했다. 동양화 작가, 서양화 작가와 함께 작업하기엔 충분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하나둘씩 떠나고 지금은 홀로 남게 되어 그의 아내와 애견 맹순이만이 쓸쓸한 공간에 온기를 채우고 있었다. 이곳은 치장되고 꾸며지기보다는 고유의 성격을 둔 채로 그곳에 흐르는 공기와 풍경에 의해 그리고 이 공간을 찾는 이들에 의해 변화되고 새롭게 읽혀지고 있다.
지금 그의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그의 머릿속에 꿈꾸어 온 것, 꿈꾸고 싶은 것들을 다 꺼내는 일에는 만만찮은 시간이 필요로 해보인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인데 휩쓸리지 않고 가슴 가장 깊은 곳에 품어둔 것을 간직할 줄 아는 도예가 권영길. 아직 탄탄한 실력으로 인정받은 건 아니지만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블루칩 작가와 같다고 그를 정의하고 싶다.
이연주 기자 maigreen9@naver.com
(본 기사는 일부자료가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