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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7월호 | 작가 리뷰 ]

고향 바다의 리듬 『김현정』
  • 편집부
  • 등록 2009-06-15 11:5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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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 정홍기 시인, 민족문화연구회장

2008년 6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김현정 교수의 도예전을 보고, 어린 시절 고향바다에서의 파래, 김, 미역 등이 파도에 넘실거리는 ´생명의 리듬´을 느낄 수가 있었다. 작품 「파란색의 굴Blue Oyster」과 「접어지는 금속의 수집Folding Copper Collection」이 그렇고 특히 오리, 해초, 황새 등으로 구성된 <자연의 환상> 설치는 고향 갯마을의 바다 생태계를 축소해 놓은 느낌을 받았다.

어린 유년기 때 바닷물에 물장구치며 놀던 생명의 율동들이 그 작품 속에 환상의 자연Fantasy of Nature으로 흐르고 있음을 강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김교수는 고향 후배로써 약 40년 만의 만남이었다. 그간의 걸어온 길이 달라 소식을 모르고 있다가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리 오래 묻혀있던 세월도 금방 눈 녹듯이 풀어지는 것이 고향의 정감이요 어린시절 추억담이 아닌가? 무엇보다 경하스러운 일은 수줍음 타던 개구쟁이 성엽이가 미국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여 지금은 저명한 대학교수로써 국제무대에서 예술활동을 하는 늠름한 모습이다. 미국이란 어떤 사회인가? 뜻이 있으면 길은 있되 반드시 땀과 노력이 수반되어야하기 때문에 초기의 온갖 어려움을 이겨낸 결과가 아니겠는가? 세계의 문물이 교류되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전통 도예를 알리고 서양의 과감한 기법을 접목하여 발전적 작품연출을 기대하는 바가 크다. 김교수를 나는 성엽이라 부르기를 좋아한다. 어릴적 부르던 이름이 더욱 다정스럽기 때문이다. 이룰 성成, 잎사귀 엽葉자, 성엽이다. 잎사귀는 뿌리에서 빨아올린 영양분에 햇볕을 받아 광합성 작용을 하여 생명에 필요한 영양소를 만들어 내는 곳이니 성엽은 ‘생명의 이어감’이요 또한 ‘생명의 완성’이다.
도예란 무엇인가? 도자기의 예술이니 흙을 빚어 물레질로 도자기를 만들고 거기에 생명력과 예술혼을 불어 넣어 ‘3차원의 새 생명’이 탄생되나니 성엽이란 이름이 그의 예술 활동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어린 시절 바닷가 갯벌에서 장난치며 놀던 일이 생각난다. 갯벌의 점토는 입자가 작고 균일하며 점성이 뛰어나 도자기 원료로 안성맞춤인데 바닷가에는 이러한 갯벌이 지천에 깔려있다. 이 갯벌을 가지고 물새도 만들고 강아지도 만들어 놀던 일이 많았는데 이러한 추억들이 오늘의 ‘설치도예’로 표현되고 있음을 볼 때 이미 오래전부터 위대한 도예가로 성장할 수 있는 원초적 소양이 쌓여 왔다고 생각되어진다. 유년기의 추억과 강한 인상은 일생동안 지워지지 않으며 일생을 두고 그의 생각과 사상의 자양분이 되고 지배력을 갖는다.
도시의 아이들보다 농촌의 아이들이 훨씬 생각의 소재가 많고 상상력이 풍부하다. 잠자리 잡고 메뚜기 잡던 추억이 있으며 달을 쳐다보는 사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갯마을의 어린 시절은 훨씬 더 볼거리와 상상력이 깊고 많아진다. 농촌에다 어촌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파도치는 물결이 있고 넘실거림이 있으며 갈매기의 날개짓이 있으며 물새들의 합창이 있다. 비 내리고 바람불면 폭풍의 바다로 변하지만 고요한 바다, 달 밝은 밤이면 마음을 유혹하는 환상의 야경이 펼쳐진다. 복잡한 서구 사회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김교수도 물레질하면서 가끔 고향의 아름다운 정경이 떠오를 때가 많을 것이다. 갯마을의 생명의 리듬은 일생을 두고 사색이 되고 영감이 되어 작가의 가슴속까지 파도쳐 올 것이다.
자! 그럼 작가의 고향은 어떤 곳인가? 한번 달려가 보기로 하자. ‘머나먼 남쪽바다, 섬마을의 서쪽 갈대 갯마을’ 이곳이 김현정 교수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얼마나 문학적 서정이 흐르는 곳인가? 행정적 표현으로는 ‘남해군 서면 노구리’이다. 남해의 주봉인 망운산의 여러 갈래 중 한 갈래 산맥인 시루봉이 서쪽으로 힘차게 뻗어 내리다가 한려수도와 맞닿아 옹기종기 동네를 이룬 포구이다. 원래 갈대가 많아 ‘갈금’ 이라고 하였는데 왜정시대 전국지명의 한문표기 때에 갈대 노蘆자와 많다는 뜻의 양의 수 아홉 구九자를 써 ‘노구’라고 하였다. 갈대는 바람 부는 대로 움직이면서도 자기의 생명을 이어가는 강한 생명력을 지녔기 때문에 펄벅여사는 ‘살아있는 갈대Living Reed’란 불후의 문학작품을 남기지 않았는가? 아마 펄벅여사도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 “부드럽게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노자老子의 철리哲理에 탄복했을 것이다.
지금은 이 갈대밭이 논으로 많이 변하고 육지가 갯벌로 바로 이어진다. 시냇물이 갯벌을 지나 바다로 흘러들면 각종 물새들이 먹이를 찾아 모여들고 포구에는 수십만 종의 바다 생물들이 각기 특유의 생존방식대로 살아가되 물때와 자연의 변화에 맞추어 살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경이롭고 인간에게 많은 영감을 던져준다. 해삼, 멍게, 말미잘을 잡고 쏙과 맛을 잡고 꼬막, 불통, 키조개 등 각종 조개류를 캔다. 온갖 해초와 김, 파래, 미역이 파도 속에 너울거리고 갈매기의 날개 짓과 비상, 온갖 물새들의 울음소리가 진동한다. 바다 가운데의 섬 웃물섬, 솔섬, 등대섬에도 굴 따고 조개 캐는 손길이 바쁘고 바다 속에는 멸치, 갈치, 넙치, 전어들이 헤엄쳐 다니고 멀리 바다의 풍어제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이와 같이 바다는 온갖 ‘바다생물들의 향연’이요 ‘바다의 교향곡’이 울려퍼지는 삶의 현장이다. 지금도 바다에 가면 활력을 느끼고 생동감을 느낀다. 고향이 갯마을인 사람들은 항상 부지런하고 끈기가 있으며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며 추진력있게 자기의 목표를 완성해 내는 성향이 짙다. 이것은 바다의 짙은 향기 속에 강한 생명력이 고동쳐 흐르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 필자가 일본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본인은 그 당시 ‘전후일본경제가 급성장한 저력은 무엇인가?’라는데 주력하였는데 사잇 시간에 일본문화를 소개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중 ‘일본의 도자기’에 대하여 적지 않는 분노를 느꼈다. 왜정시대 조선의 도공들을 일본으로 데리고가 한민족의 도예기술을 훔쳐가 자기 것으로 만들어 세계에 내 놓으며 자기 고유상품으로 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도는 도자기 예술에 인간의 예절을 접목시켜 고급 다문화로 발전시켜 놓은데 반해 청자, 백자의 본국인 한국은 도예가 그렇게 발전하지 못한 상태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내가 하는 일에 민족적 사명이 있는지를 알아 자기 하는 일에 ‘민족의 얼’을 불어 넣어야 한다. 도자기 시술을 도난당해 훔쳐간 일본이 세계시장을 누비고 본고장인 한국은 퇴보한 상태로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마침 김교수가 미국의 대학에서 도예학을 강의하고 있어 한국의 도예를 세계에 알리고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어 그 기대가 매우 크다. 도예의 기법상 서양의 짙은 색상을 가미한 어떤 갈래로 발전하든 상관없다.
단 첫째, 한국이 도예의 본국이라는 점과 둘째, 실지失地회복의 꿈을 갖고 ‘민족의 얼’을 작품 속에 불어 넣는 일, 셋째, 고향 앞바다의 ‘생명의 율동과 리듬’을 작품정신으로 하기를 바라며 그러한 목표아래 굳센 바다의 기질로 노력한다면 펄벅에다가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를 보고 불후의 문학작품을 남겼듯이 김현정 교수도 세계적 도예학자가 되고 불후의 명작을 남길 것을 기대하며 한없는 성원을 보내는 바이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08.7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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