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너구리 테이블」
도예가 조영국은 우리의 생활이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믿음을 기초로 하여 작가활동의 출발기로부터 꾸준하게 흙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는 처음부터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라는 커다란 주제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자연과 인간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관찰되는 자연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과 그 속에 내재된 질서와 조화 등을 우리 인간의 생활에 도입하는 방법의 하나로써 도예라는 예술 장르를 선택하고 있다.
어린시절 생활무대였던 지리산 자락의 자연으로부터 느꼈던 경험들, 예를 들면 집 근처의 산에서 보았던 바위와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장엄한 경관과 그 속에서 자연의 섭리와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온갖 동식물들의 모습들이 그의 기억 속에 잠재되어 있다가 오늘날의 작업을 통해 예술적으로 승화된 모티브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조영국은 우리의 생활 전반이 국제화되어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예술 표현형식의 국제적 획일화와 지역적 다양화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감지하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작품 속에 우리나라 전통도예의 원초적 조형원리를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미의식과 시대정신을 불어 넣을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해오고 있다. 그는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조형미를 자연에서 찾고 있으며 자연에서 존재하는 생명체의 강함과 나약함의 양면적 속성과 생명의 우주적 섭리를 동시에 작품 속으로 도입하고자 노력해왔다.
조영국은 특히 동물들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오늘날처럼 우리 생활이 자연과 점점 분리되는 사회에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자연을 관찰하고, 특히 동물들을 관찰하기 위하여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신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데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있다. 그는 또 자연관찰의 간접적인 방법으로 책이나 필름 등을 통해 동식물들을 관찰하여 창작의 영감을 얻어내기도 한다. 작가에 의하면 자신이 이러한 동물이나 식물의 모티브를 묘사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습의 신비함과 함께 그들이 자연에 순응하면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순리적인 생존의 모습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즐겨표현하는 동물의 등뼈로 구성되는 의자의 경우에는 예로부터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사냥으로 희생되거나 제의적 행사에서 인간 대신 희생의 제물로 바쳐졌던 동물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들의 생명과 영혼을 미학적으로 숭고하게 승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그의 작품들이 주제 면에서 이러한 의미를 갖는다면 조형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기법적으로 고도의 난이도를 갖는 흙의 조형과 번조의 과정을 거치면서 작가 특유의 힘과 굳건한 조형적 자신감을 드러낸다. 초기의 동물형 의자 연작은 이번 전시에서처럼 오리나 백조, 또는 독수리와 같은 조류와 물고기, 게와 같은 어류 동물로까지 확대되어 표현되며 형태상으로도 의자에서 테이블이나 순수하게 독립적인 입체조형의 형식으로 확대된다.
자연에 관심을 기울이는 작가의 태도는 자연과 대척점을 이루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비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자연과 인공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보다는 우리의 삶에서 자연의 신비와 조화를 생활과 사고에 투영하고, 그로부터 창작의 영감을 얻고, 자연을 느껴 마침내 인간이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기를 소망하는 지도 모른다.
필자가 조영국과 만난 것은 IMF로 한국사회가 한창 어수선하던 1997년 영국의 런던에서의 일이었다. 당시 영국의 명문 미술학교인 왕립미술학교Royal College of Arts에서 유학하고 있던 작가는 현지에서 전시회를 갖고 싶다며 나를 찾아왔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런던에서 한두달 뒤에 전시를 하기 위하여 공간을 얻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조영국의 작업태도에서 보여주는 진정성과 순리적인 숙명같은 것이 작용했는지 우리는 런던 시내에서 때마침 전시가 취소된 화랑을 하나 얻을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분주하게 작품을 준비하고 도록을 만들고 주위 사람들과 영국의 미술관련 인사들을 초청하여 개막식을 치렀다.
이때 출품된 작품들 역시 조영국이 평소에 관심을 가졌던 동물에 관한 모티브로 일관되었다. 그는 산업혁명을 계기로 도예문화의 발전을 가져왔던 영국의 도예가들이 어떻게 도예를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왔는가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들이 작업해오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문제점과 그로부터 모색되는 해결책을 구하는 태도와 성장과정에서 조영국은 영국 도예와 한국 도예를 비교, 분석하였으며 우리 도예의 미래의 지향점을 모색하였다. 그렇게 전시는 진행되었고, 전시 기간 중에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Victoria & Albert Museum의 큐레이터가 전시장을 방문하여 조영국의 작품을 하나 구입하는 뜻밖의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 박물관에 한국실이 생긴지 얼마 안 되어서 한국 현대미술품을 구입할 필요가 있었던 시기에 그의 작품이 큐레이터의 눈에 띄어 시기적절하게 작품이 구입되었던 것이었다.
영국 유학에서 돌아온 후 조영국은 경기도 여주에서 작업장을 열고 꾸준히 도예 작업에 몰두하여왔다. 그동안 그는 여러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하는 후학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귀국 후 지금까지 여섯 차례의 개인전을 열기도 하였으며 이천 세계도자비엔날레와 여주 국제도자기워크숍 등과 같은 국제적 규모의 행사에 참가하면서 한국 현대도예의 대표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활발히 활동해오고 있다.
오늘날의 한국도예는 전통성과 현대적 감각의 조화를 통해 관람객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생활 속으로 파고드는 예술적 사명감을 띠고 발전해왔다. 또한 우리의 현대공예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전통 깊은 우리 공예의 우수성을 선양하는 길을 여러모로 모색하여 왔다. 이러한 도예계의 흐름 속에서 작가 조영국은 자연과 생명이라는 모티브를 꾸준하게 견지해오면서 동식물 이미지가 가져다주는 다양한 형태미와 생명감, 그들이 보여주는 질서와 조화를 통해 인간 보편의 가치로써의 생명의식과 예술적 영감을 얻어내려고 노력해왔다.
그의 작품이 외국 유수의 박물관 큐레이터의 눈에 띠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조영국의 이러한 작품이 꾸준히 견지해 온 주제의식의 보편적 가치와 예술적 완성도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작가의 생각에 인간은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으며, 자연의 무한한 변화와 그 속에 내재된 질서와 생명감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일에는 시간이나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가 담겨있는 것으로써 그러한 가치가 작가의 작품을 통해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조영국은 이렇게 도예 작품을 통한 인간 사이의 소통과 생활 속의 예술적 영감을 고취하기 위하여 도조陶彫 작품 이외에 생활 도기로 볼 수도 있는 용기들을 제작하기도 하고 회화적인 해학성을 보여주는 도판陶板 그림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작품에서도 작가는 여전히 소나 독수리, 혹은 새나 오리 등의 동물들을 소재로 삼고 있으며 도조 작품에서와는 달리 좀 더 친근한 느낌을 주기 위하여 빠른 선묘 형식의 해학적 표현을 시도하고 있다.
조영국은 자연에서 작품 창작에 필요한 생명과 조화, 질서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자연은 이러한 인간 생활에서의 필수적 덕목이면서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는 가치를 지닌 채로 우주의 변화에 순응해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다양한 특징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따라 작가는 끊임없이 자연의 형상을 탐색하고 모방하면서 그 본질에 다가서려고 노력한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08.7월호를 참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