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은 듯’ 또는 ‘애처롭게’ ‘포기한 듯 하지만 남은 의지를 다해’ ‘소망하는 눈빛으로’ 여인들은 활짝 핀 꽃을 들고 있기도 하고 건네지 못한 시든 꽃을 가슴에 품고 있다. 손맛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질감과 붉은 흙빛의 여인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흙만이 지닌 고유의 따뜻함을 느끼기에 충분케한다. 한애규(55)의 열 아홉번째 개인전 <꽃을 든 사람>이 1월 4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인사동에서 열렸다. 2008 가나아트갤러리 첫 기획전으로 열린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꽃을 든 사람> 연작 50여 점을 통해 삶에 대한 열망이 담긴 꽃송이를 건네본다. <꽃을 든 사람>에는 인생에서의 회의와 절망을 겪으면서도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 담겨있다. 건네지 못해 시들어버린 꽃이지만 끝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는 모습은 삶에 대한 희망을 간직한 채 세상과 이야기하려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과거 작가의 전시에서 사회적 모순에 대해 그저 수동적으로 부드럽게 끌어안는 여성상을 볼 수 있었다면 이번 <꽃을 든 사람>연작은 꽃을 건네는 의지적 움직임을 보여준다. 꽃은 ‘삶에 대한 열망’이며 작가는 이 꽃을 매개체로 삼아 세상과의 소통을 바라는 것이다.
작가 한애규는 서울대 응용미술학과와 동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프랑스 앙굴렘미술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원 졸업 후 1984년 2월에 가진 첫 개인전에서 그릇위주의 작품을 선보인 후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한국에서 우연한 기회로 만난 프랑스 앙굴렘미술학교 교장의 추천을 통해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로 떠나게 된 것이다. 2년간의 유학은 작가 자신을 조각과 순수미술 분야 안에 놓여지게 했다. 평면과 입체작업을 전공하며 이전 작업 형태였던 그릇이라는 용기가 사라지고 오브제와 유약이 등장한다. 프랑스 앙굴렘미술학교에서의 작업은 거의 혼자 이루어졌다. 함께 전공을 공부하는 친구가 재료를 철조와 종이로 정하면서 가마는 거의 작가의 독차지였다. 게다가 흙과 유약을 비롯한 모든 재료는 학교에서 제공되었기에 자유롭고 넉넉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작가는 ‘미술이란, 개인의 자유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교육방식’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또한 프랑스 사회의 튼튼한 복지제도와 세계화를 경험하며 한국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작가가 테라코타를 시작한 것은 1987년의 일이다. 그리고 1990년도에 첫 초대전을 가지며 ‘여성’이라는 주제가 처음 등장하게 된다. ‘여성으로 사는 것’에 대한 물음은 당시 정치적으로나 저항감이 강했던 시대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화두였다. 그 까닭인지 90~96년간 작업에서 투쟁적인 이미지가 계속해서 비춰졌다. 아마 프랑스에서 경험한 여성에 대한 사회복지지원의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94년 작가의 노트를 엿보면 이렇다. “내가 여성에 관심을 갖는 것은 나에 대한 관심과 다름없다. 그리고 모든 것은 불합리하고 모순되고 병적이고 납득할 수 없는 현실의 상황에 대한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모든 제도와 관습, 인습 구조가 생겨나고 전개되어가는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하여 보기도 하고 국가나 사회윤리나 도덕 권위계층 남녀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의 단어 이전의 우리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본래 인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는 거의 습관처럼 어떠한 상황에 접했을 때 ‘태초의 인간들은?’ 하고 그림을 그려보기도 한다. 주체적 생산이라는 위대한 힘이자 지극히 당연한 권리를 제도의 틀에 반납한 지금 우리는 한송이 들꽃보다도 처량하다. 제 자리를 잃은 야성과 본능, 그것이 우리의 ‘딜레마’이다. 우리가 그다지도 쉽게 무기력해지고 허무에 휩싸이며 삶에 지치는 것은 우리가 맨발로 살지 않기 때문이요 벌거벗고 물속에 들어가 물과의 교감을 하지 않기 때문이요 동물을 때려잡지 않기 때문이요 몸짓과 인간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내 안에는 무수한 욕망이 마치 구근처럼 자리잡고 있어 때를 만나면 솟아 오르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있다. 심장은 뛰고 싶어하고 근육은 긴장하고 싶어하며 눈은 빛을 발하고 싶어한다. 그것들을 이제 생명력이라 부르고 싶다.”
한애규의 작업은 어느날 떠오른 영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길을 걷다가도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노트가 없어도 영수증을 비롯한 종이는 작가에게 충분한 스케치북이 된다. 떠오른 주제는 작가의 융통성과 유연함으로 재구성되기도 한다. 때에 따라 작품을 스케치 하지 않고 모델링만으로 진행하기도 하는데 모델링이 작가에게 편한 이유는 곧바로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 모델링이 시작되면 한자리에서 10점 이상 만들어 내는 것이 보통이다. 서 있는 여인들을 앉히기도, 눕히기도 하면서 15점으로 시작해 30점까지 이어진 적도 있어 작가는 ‘작업이 작업을 낳는다’라고 표현한다.
코일링 작업으로 작품을 쌓아 올리고 누워있거나 앉아있는 형상의 덩어리를 조각한 후 속을 파내는데 이 과정만 한달이 걸린다. 보통 2년간 작업이 이루어지면 작가는 자택 아랫층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아침부터 저녁 6~7시까지 거의 매일을 작업한다. 치밀한 계산하에 어떤 틀이나 도구 없이 손으로 흙을 반죽하여 수십, 수백 번 붙이고 쌓아올리는 과정으로 형상을 만들어나가며, 작가의 손과 흙의 촉각적인 접촉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사람은 재료를 그리고 재료는 사람을 포용하며 결국 하나가 된다. 결코 작지 않은 오브제들을 작업하는 것이 몸에 부칠 수도 있지만 이러한 과정을 해내는 데에는 작가의 ‘무언가 해야만 하는’, ‘하지 않으면 못 베기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한애규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는 《자존》이다. 작가는 눈에 보이는 사회적인 모순 중 불평등의 역사를 거꾸로 올라가본다. 잉여 농산물로 시작되었던 ‘불평등의 기원’은 다음 작품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소, 말 재갈, 집, 주춧돌 등 고대사회의 농산물을 이미지화시켜 《소유》로부터 시작된 그것을 표현하고자 한다. 이는 이미 2년 전부터 진행 중인 작업이다. 올해를 3년째 작업 기간으로 맞이하면서 문양 디자인 작업도 이루어질 계획이다.
한애규의 테라코타에는 세상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겨 있다. 작가는 일상을 살아가며 느꼈던 여러가지 사회적 부조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대립적이지 않은 접근방식으로 풀어나간다. 넉넉해 보이는 여인상은 고대 모계사회 어머니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작가는 흙을 통한 조형 언어를 통해 여성만이 지닌 모성으로 모든 문제들을 너그럽게 감싸 안으려한다. 이런 작가만의 문제해결방식은 심도 깊은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난해하거나 어렵지 않고 부드럽고 친근하게 다가오도록 만든다. 여성만이 지닌 가장 위대한 따뜻함으로 눈앞의 바위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 흙 작업으로 표현해 내는 그의 또 다른 삶의 열정을 기대해 본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 2008.3월호를 참조바랍니다.>